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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온화한 ‘원칙주의자’ 강일원 前헌법재판관
이세현 기자
2018-10-01 15:06
"권리 되찾은 당사자의 기쁜 모습이 법관생활 원동력"
"마라톤을 완주한 느낌입니다. 넘어지지 않아 뿌듯하고 나름대로 개인적으로는 한가지 성취를 이룬 것 같습니다."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심판과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탄핵심판까지. 우리 사회와 헌법재판사(史)의 큰 획을 긋는 굵직굵직한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판관(判官)으로서 중심을 잡으며 격동의 시기를 보낸 강일원(59·사법연수원 14기) 헌법재판관은 6년의 임기를 마친 퇴임 소회를 묻는 질문에 후련한 듯 미소를 지었다. 평생 법관으로 봉직한 그는 늘 무거운 책임감 속에 살았다. "이렇게 오래 공직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헌법재판관이 되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죠. 재판관으로 추천되었다고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이제 책임을 내려 놓게 돼 아주 시원하고 또 보람도 느낍니다."
강 재판관은 인터뷰 내내 공직자의 책임 있는 자세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맡았던 사건의 당사자들을 한명한명 떠올리며 슬프고, 아쉽고, 기뻤던 때를 기억했다. "법관으로서, 공직자로서, 어느 정도 국민들이 주셨던 사랑이나 기대에 나름대로는 보답을 했다는 작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을 맨 앞에 두고, 그 사랑에 보답하려 노력했다는 점을 인생 최고의 자부심으로 꼽는 '천생 법조인'을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집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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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뛰어난 엘리트 판사 출신이지만 늘 겸손하고 사람 좋은 미소로 호감을 갖게 만드는 강일원(59·사법연수원 14기·사진) 헌법재판관의 학창시절 별명은 '독일병정'이었다고 한다. 뜻밖이었다.너무 엄격한 '원칙주의자'여서 붙은 별명이란다. "사실 부모님께서는 처음에는 제가 법관이 되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제가 좀 성격이 원칙주의자라고 할까요. 그래서 부모님 보시기에는 저런 아이가 법까지 공부해서 법관이 되면 너무 무섭고 엄한 사람 될 것 같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법 말고 다른 걸 공부하길 원하셔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법대에 갔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의 그런 걱정과 애정 덕분에 다른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의 시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학창시설 별명은 '독일병정'…

법대진학에 많은 고민

 

1985년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임관한 강 재판관은 '30년 법관생활 중 가장 기뻤던 일'을 묻는 질문에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꼽았다. "어려운 사건을 어렵게 재판하고, 옳은 결론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판결문을 밤새 작성한 뒤 선고해 당사자의 권리를 구제하고, 그 당사자들이 기뻐하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옳다는 것이 판명됐을 때가 가장 기뻤습니다. 그 기쁨이 법관생활을 완주하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강 재판관은 재판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상대방을 믿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초임 단독판사 시절에는 기록을 열심히 읽고 준비된 재판을 했습니다. 그래서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할 때 우선 증거와 맞는지를 보고 증거와 다르다면 쉽게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다보니 '만약 저 말이 진실이라면 얼마나 억울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재판을 하니 판결 승복률이 높아졌습니다. 마치 제 마음이 피고인들에게 전달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증거와 피고인의 말이 다르면 실제로 거짓말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세상사에서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일도 분명 발생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믿어주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판단은 증거에 따라 하되, 일단 들어주고, 믿어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강 재판관은 법관으로서 늘 '헌법 원칙'을 가장 정확히 이해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려고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어떤 분들은 헌법재판은 정치적 재판이라는 이야기를 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헌법재판관은 '헌법 정신'에 따라 재판하는 것이지, 추천권자나 임명권자 또는 본인의 성향에 따라 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모든 선·후배 재판관님과 마찬가지로 성향이나 정치적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상대방을 믿어 주는 것

판단은 증거에 따라 하되 일단 들어주고 믿어 줘야


강 재판관은 가장 힘들었던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꼽았다. 그는 그 사건의 주심 재판관이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매우 불행한 사건을 담당하게 되고 더구나 주심까지 맡아 정말 어둡고 슬픈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직자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국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 헌법과 주어진 책무에 따라 일을 처리해내야 합니다. 그래서 부담감보다는 가급적 신속하고 정확한 결론을 도출해 빨리 나라를 안정시키고 국민을 안심시켜야겠다는 사명감이 더 컸습니다."

 

그는 탄핵심판 과정은 힘들었지만 사법작용을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유례없는 기록이 세워져 자부심도 느낀다고 했다. "탄핵 결정이 선고되고 베니스위원회 동료 위원들이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에 대해 찬사를 보내왔습니다. 국정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많은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본인들의 의견을 표명하고, 그런 과정에서의 문제점이 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해결되고, 그와 같은 헌재의 결정을 대통령이 수용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까지 이뤄진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외람되게도 그런 칭찬을 동료 위원들로부터 제가 듣게 돼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대해 자부심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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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재판관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사건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가장 많은 기록을 읽었고 가장 많은 변론을 했기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기록의 양도 방대했고, 평의과정에서 재판관들의 논의와 고민도 많았던 사건입니다."

 

통진당 해산 결정은 2014년 12월 재판관 8대 1의 압도적 다수의견으로 내려졌지만 정치적 논란도 많았다. 이에 대해 강 재판관은 조심스럽게 입장을 밝혔다. "통진당 일부 당원들이 모여 우리 정부에 위해가 되고 북한을 옹호하는 취지의 논의를 했고, 이 부분이 형사재판에서 유죄로 확정됐습니다. 그 부분이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론을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린 부분은 그와 같은 위헌적인 일부 당원 행위를 정당의 책임으로 귀속 시킬 수 있는지 여부와 관련 법률적 판단 문제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8명은 귀속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고, 1명은 그 소수 당원의 행위를 다수 당원이 포함된 정당에 귀속시킬 수 없다는 의견을 낸 것이어서 어느 의견이 반드시 법률적으로 옳고 어느 의견이 틀렸다고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다수 의견은 정당의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책임 있는 그룹에서 그 같은 위헌적인 행위를 했다면 정당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봤습니다. 헌법 정신에 따른 법률적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판관으로 가장 힘들었던 사건은 대통령 탄핵심판

사법 작용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는 유례 없는 기록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과정서도 재판관들 많이 고민

 

강 재판관은 출범 30주년을 맞은 헌법재판소 제도와 절차에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헌재의 많은 규정들이 아주 초기에 만들어진 규정들이라 완전히 정비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헌법소원에서도 사실관계 조사나 증거 조사에 관한 규정 등이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습니다. 단순히 민사소송절차를 준용한다고만 되어 있는데, 어느 범위에서 어떻게 준용할 것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좀 더 명확한 규정 정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헌법재판을 받고자 하는 국민들이 좀더 명확히 절차에 대한 정보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강 재판관은 또 개헌 과정에서 헌재와 법원의 관할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관할을 좀 더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권한쟁의심판같은 경우도 일부는 대법원이, 일부는 헌재가 맡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도대체 어디로 가야하는지, 두 기관의 주장이 다를 때에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개헌 과정에서 분명하게 결론을 내려 불필요한 논란이나 권리구제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강 재판관은 법원의 재판을 헌법재판의 대상으로 삼는 재판소원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신도 밝혔다. "재판소원을 허용하게 되면 재판의 4심제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헌재가 연간 2000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데, 국민 여러분들께 신속한 재판을 해드리지 못한다는 아쉬움과 비판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재판소원 허용으로 4심이 되면 헌재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다만 한정위헌 등 여러가지 문제를 그냥 방치할 수는 없으니, 헌재와 대법원 사이의 문제점을 입법을 통해 해결하고 있는 유럽국가 모델을 참조해 '제3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향후 개헌과정 헌재와 법원 관할문제 분명히 해야

재판소원 허용되면 '재판의 4심제'는 막을 수 없어

법관은 개별사건에서 혼신의 힘 다해야 신뢰 얻어

 

판사 출신인 그는 법원의 현 상황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법원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국민적 불행입니다. 그래서 이 어려움을 신속히 극복하고 하루속히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대법원이나 법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법관 개개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책임은 과거 일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책임입니다. 법원이 불신을 받는 것으로 보이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모든 법관이 개별 재판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 신뢰를 얻어감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강 재판관은 퇴임 후 후학 양성을 꿈꾸고 있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할 때 교수가 됐으면 하는 꿈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법관의 길을 걷게 되면서 가보지 못한 길이 됐습니다. 기회가 되면 학교에서 법학도들과 함께 공부하고 경험을 전수할 수 있으면 합니다."

 

후배 법조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강 재판관은 "자부심을 가지라"고 했다. "저도 유신헌법을 공부했고, 5공화국때 판사를 시작한 사람입니다. 구시대 인물이죠(웃음). 그러나 우리 사회 발전에 힘입어 지금은 여러나라에서 우리 민주주의를 소개해달라는 초청을 받아 많은 자랑을 하고 다닙니다. 정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민주화된 한국사회에서 법을 공부하고 법조인으로 활동하시는 여러분들이 더 큰 자부심을 갖고 더 큰 세계로 진출해 이제는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한 1등 민주주의 나라로 만들어주실 것을 기대하고 성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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