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재판이나 수사 과정에서 판·검사가 법을 왜곡해 당사자 가운데 어느 한 쪽에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든 경우 해당 판·검사를 징역형에 처하는 입법이 추진돼 논란이 일고 있다. 사법정의에 반하는 수사·기소를 하거나 판결을 내린 판·검사에 대해선 확실하게 형사책임을 물어 법원과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법왜곡'이라는 용어 자체가 불분명해 죄형법정주의원칙상 명확성의 원칙에 반할뿐만 아니라 법원·검찰의 판결·결정에 불만을 가진 사건 관계인들의 고소나 고발이 늘어 사법시스템 자체가 위축될 있다는 우려가 있으므로 입법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법왜곡죄'를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과 법왜곡 행위에 대한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기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들은 같은 당 소속이던 고(故) 노회찬 의원이 생전에 발의를 추진했던 법안이다.
심 의원이 대표발의한 형법 개정안은 '제123조의2(법왜곡)'를 신설하는 내용이다. '법관이나 검사가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처리에 있어서 법을 왜곡하여 당사자 일방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든 때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이 골자다.
현행 형법상 공무원 직무범죄에 대한 일반규정인 제122조(직무유기)와 제123조(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다음에 판·검사에게만 적용되는 특별규정을 신설하는 것이다. 판·검사가 저지른 법왜곡 행위의 불법성이 중대하다는 점을 고려해 법정형도 기존 직권남용죄(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보다 높게 규정했다.
심 의원이 대표발의한 형소법 개정안은 법왜곡죄 신설에 맞춰 판·검사의 법왜곡 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이다. 판·검사의 법왜곡 행위는 범죄행위 당시에는 적발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 정치·사회적 상황이 바뀌면 그 혐의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수사를 거쳐 기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현행법상 공소시효를 그대로 적용하면 공소시효가 완성돼 법적 처벌이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심 의원은 "법원과 검찰이 과거 수많은 사건에서 권력을 위해 실체적 진실과 사법정의를 외면한 채 법을 왜곡해 억울한 사법피해자들을 양산해 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전관예우·법조비리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특히 최근 사법농단 의혹 사건으로 국민들의 사법불신은 더욱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법치주의를 훼손한 판·검사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형법 개정안은 독일 형법 규정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독일 형법 제339조는 '판사, 판사 이외의 공무원 또는 중재 재판관이 사법사안을 주재하거나 결정을 내림에 있어 법을 왜곡하여 일방당사자를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만든 때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판사 이외의 공무원'에는 검사도 포함되며, 다른 공직자도 판사처럼 법률사건을 지휘하거나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경우에는 법왜곡죄의 범죄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게 독일 학계의 다수설이다.
"사법정의에 반하는 판·검사의
명백한 법왜곡 형사책임 물어야"
2014년 독일연방법원은 우리나라의 지방법원 지원에 해당하는 구(區)법원 판사가 다수의 도로교통법 위반 사건에서 '조사서류에 속도측정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정식재판과 증거조사 없이 당사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과 관련해 "구법원 판사가 증거판단에 있어 중대한 과오를 범했다"며 유죄판결을 내렸다(2014. 1. 22. 선고 Az. 2 StR 479/13). 권한 없는 구법원 판사가 피고인을 석방한 것과 관련해 "구법원 판사가 고의로 충분한 확인 없이 중대한 절차상 잘못을 범했다"며 유죄판결을 내린 사례도 있다.
독일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배와 1990년 통일 이후 법왜곡죄를 통해 나치 전체주의 체제와 옛 동독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재판권과 검찰권을 왜곡해 국민 인권을 유린한 법조인들을 단죄하기도 했다. 독일 연방법원은 1955년 보이콧 선동을 한 2명에게 사형을 선고한 옛 동독 최고법원 형사부 판사에 대해 "과도한 형량을 선고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독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대만, 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도 법왜곡죄와 비슷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북한도 형법 제244조에 '부당한 판결, 판정죄'를 두고 있다. '재판일군(꾼)이 부당한 판결, 판정을 한 경우에는 1년 이하의 로동단련형에 처한다. 앞항의 행위가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5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법왜곡죄 신설에 대한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법왜곡 의미 불명확…
불만 가진 당사자들의 남고소·고발 우려"
서보학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지금까지 사법부나 검찰이 수많은 재판에서 억울한 사법피해자들을 만들어 냈는데도 정작 판·검사들 중 어느 누구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며 "이번 기회에 법왜곡죄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실로 사실관계를 잘못 판단하거나 법 적용을 잘못하는 사례도 있을 수 있지만, 전후 사정을 알면서도 고의로 피고인 등 일방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법 적용을 한 사례들이 여전히 굉장히 많다"며 "법 적용을 잘못해 남의 인생을 망쳐놓고 '수사나 재판 당시 최선을 다했다'는 이유로 면책된다면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법을 왜곡한 판·검사들이 처벌받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 형법에 법왜곡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형법상 직권남용죄가 있지만 모든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규정이다보니 판·검사들의 법왜곡 행위를 경고·처벌하는 기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 판례 역시 수사과정에서의 불법행위는 인정한 반면 기소나 판결 등 판·검사의 판단이나 결정 그 자체에 대해서는 민사상 불법행위를 인정한 사례가 드물다"고 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부장판사는 법왜곡죄 구성요건과 관련해 "법안의 '법왜곡'이나 '당사자 일방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든 때'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위헌성 시비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검사장은 "사법시스템 자체가 일도양단적인 해결 시스템이다보니 법원·검찰의 선고나 결정에 불만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법왜곡죄가 도입될 경우 '어느 한 쪽 말만 듣고 왜곡된 재판이나 수사를 했다'는 고소·고발이 늘어날 수 있다"며 "판·검사들이 신중하게 기소·재판하는 효과는 있을 수 있겠지만, 신중하게 검토할 점이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법치주의 훼손 판·검사 처벌 근거마련"
심상정 의원 형법·형소법 개정안 대표발의
로펌의 한 변호사는 "법안대로라면 판·검사가 자신이 했던 예전 결정이나 판결때문에 훗날 언제라도 시비거리가 생기면 피의자로 입건돼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셈"이라며 "예컨대 시간이 흘러 정권교체 등이 일어난 이후 '왜 그 전에는 이렇게까지 밝혀내지 못했느냐, 그냥 덮어준 것 아니냐'고 문제를 삼으며 법왜곡죄를 무기로 들이민다면 살아남을 전·현직 판·검사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고의로 직무를 유기하거나 직권을 남용해 위법한 수사나 처분, 판결을 했다면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는데 굳이 이런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느냐"며 "이런 법안까지 나오게 한 현 법조계의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한편 서 교수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법왜곡 행위는, 예컨대 누가 봐도 고문한 증거가 명백한데 이를 무시하고 기소·재판해 유죄가 나오는 등 노골적으로 명백하게 법적용을 편파적으로 하는 경우에 해당될 것"이라며 "법왜곡죄 관련 고소·고발 사건 남발 우려는 기우"라고 말했다.
황정근(57·사법연수원 15기) 법무법인 소백 대표변호사는 법왜곡죄 구성요건의 명확성과 관련해 "'왜곡'이란 법률용어는 이미 많은 법률에서 사용되고 있다"며 "형법상 구성요건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고, 판례 등 법 해석을 통해 어느 정도 구체화 할 수 있어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지는 않는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왜곡죄 관련 고소·고발이 늘겠지만, 무고죄가 있으니 함부로 고소하진 못할 것"이라면서도 "이 같은 범죄를 별도로 입법해야 할 상황까지 이르러 개탄스럽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