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가 디지털·모바일 시대를 맞아 유튜브 동영상 플랫폼을 무대로 양방향 소통을 확대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와 동영상 플랫폼에 익숙한 젊은 변호사들이 다수이지만,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전직 대법관이나 중견급 변호사·로스쿨 교수가 운영하는 채널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법조계 유튜버들은 법 지식과 법조계 이슈를 전하는 다양한 포맷과 콘텐츠를 활발하게 개발하며, 시민들이 법과 사법제도를 친근하게 여기는 통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튜버들은 "디지털 플랫폼은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법조계 전반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는 핵심 도구"라고 입을 모았다.
◇ 청년·여성 법조인 활약…생활법률 조언부터 공부법까지 = 20일 현재 직접 채널을 운영 중인 국내 법조인 유튜버는 30여명이다. 얼굴을 가리거나 익명으로 활동해서 본인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등을 제외한 숫자다. 20여개 법무법인과 법률사무소도 채널을 개설하고 동영상 콘텐츠를 꾸준히 게시하고 있다.
자신을 변호사라고 소개하는 익명 유튜버나 외국변호사·로스쿨생 유튜버도 많다. 법조인 출신이 운영하는 정치 채널, 직접 운영하지는 않고 채널에 패널·공동운영자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을 포함하면 수가 대폭 늘어난다. 법무사와 변리사업계에서도 채널을 개설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사평론 배승희 변호사
29만 독자와 실시간 대화
변호사들이 유튜브를 하는 이유는 크게 △홍보 △취미 △재능기부로 구분된다.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는 시사평론 콘텐츠를 주로 게시하는 배승희(37·사법연수원 41기) 변호사다. 구독자 수가 29만명을 넘는 배 변호사는 시청자와 실시간 대화창을 열어놓고 법률이슈에 답하거나, 논란이 되는 시사이슈를 법적관점에서 알기 쉽게 풀이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교통사고 관련 법적이슈를 전문으로 다루는 한문철(59·17기) 변호사가 26만5000여명의 구독자를 보유하며 뒤를 잇고 있다. 이미 방송국 제작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대중에 이름을 알려온 이들은 유튜브 플랫폼에 선도적으로 진출해 시청자와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청년 변호사들은 변호사의 일상을 소개하는 브이로그(Video+Blog)나 공부비법·성적향상 방법 등을 소개하는 코텐츠 또는 법률이슈를 전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홍보하는 콘텐츠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브이로그가 중심인 김지수(28·변시 7회) 변호사의 '킴변' 채널의 구독자 수는 12만6500여명인데, 자연스러운 진행과 친근하게 다가가는 접근법으로 일반인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윤규(35·42기) 변호사가 운영하는 'Dr.Law' 채널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공부법이 주로 게시되는데, 성적향상 팁(Tip)에 동기부여를 위한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수험생 등이 많이 찾는다.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26만명 독자 보유
7만여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킴킴 변호사' 채널은 김호인(37·변시 1회)·김상균(변시 1회) 변호사가 함께 운영하는데, 시사이슈를 변호사의 시각에서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 인기다. 이들은 최근 유튜버 기획사(MCN) '트레져헌터'와 함께 팬 사인회를 열고 이를 방송하기도 해 화제가 됐다. 같은 로펌 소속 동갑내기인 박성민(34·변시 2회)·손병구(35·44기)·이경민(35·43기) 법무법인 평안 변호사가 팀을 이뤄 운영하는 '로이어 프렌즈'도 큰 인기를 끈다. 그 외 법률을 주로 다루면서 자신의 취미를 살려 빵을 굽고 캠핑을 하거나, 운동 등 건강관리법을 소개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가 등장하고 있다.
◇ 마리텔 섭외 요청도…대법관 출신 老신사의 유튜브 법률강의 "진정한 재능기부" = 유튜브에서 구독자 수와 조회수는 인기도의 잣대일 뿐만 아니라, 광고 등 채널 운영자의 수입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중요한 척도로 여겨진다. 현재 활동 중인 법조계 유튜버들의 구독자 수를 다 합치면 백만 명을 조금 넘는데, 다른 분야에서 인기가 있는 유명 유튜버 한 명이 보유한 구독자에 못 미치는 숫자다. 하지만 법조계에는 인기나 수익에 매몰되기 보다는 양질의 고품격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유튜버들이 많다.
법무법인 바른(대표변호사 박철)에서 고문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박일환(68·5기) 전 대법관이 대표적이다. 대법관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그는 지난해 12월 말 자신의 호(號)를 딴 '차산선생법률상식'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채널 운영을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3만2000여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유튜버가 됐다. 20일 현재 38개 영상의 누적 조회수는 24만뷰를 넘는다.
박일환 前대법관의
‘차산선생 법률상식’도 큰 인기
박 전 대법관의 채널은 △방송 연기자의 권익 보호 △진실을 밝히기 위한 비밀 녹음 정당한가? △농담으로 한 '회사 그만둘래' 발언 후 퇴직 발령? △강도한 돈으로 갚은 빚 △보이스피싱 등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만한 법률상식을 담고 있다. 그는 "안녕하십니까, 박일환입니다"라고 간단히 자신을 소개한 뒤 각종 법률지식을 중심으로 최신 이슈를 풀어내는데, 영상의 길이가 2~3분 내로 짧은 것도 특징이다.
법리와 판례에 통달한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채널은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 영상 아래에는 "법조계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는 취지의 댓글이 많이 달린다. 그는 지난달 서울 강남구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유튜브 크리에이터와의 대화' 행사에 초청받아 강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인기 예능 '마이리틀텔레비전' 등 TV 프로그램 제작진으로부터 섭외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박 전 대법관은 "법률지식 수요가 늘고 법에 대한 이해도 높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판결과 법조계의 단면만 보고 논쟁을 벌인다"며 "판결 취지 등을 제대로 설명함으로써 국민의 정확한 인식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익법센터 ‘어필’은
공익활동 저변 확대에도 기여
◇ 공익단체·로스쿨 교수도 유튜버로…법조계 저변확대 = 상대적으로 이른 2017년 2월부터 일찍이 유튜브 채널 운영을 시작한 공익법센터 어필은 지금까지 법률·인권 관련 수백여개의 영상을 게시하며 공익활동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어필은 난민·구금된 이주자·인신매매 피해자 등 인권침해 피해자를 돕는 비영리 공익변호사단체인데, '에필로그', '변호사 브이로그' 등 공익적 목적을 수행하면서 재미도 곁들인 다양한 자체 포맷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얼굴이 나오지 않는 난민의 손에 네일아트(손발톱 화장)를 해주며 인생스토리 등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난민 보호 활동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알리는 '네일쌀롱'은 방송계 관계자들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일(38·39기) 변호사는 "법조계와 인권단체는 사안을 주장하고 설파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수용자에게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며 "정당하고 선량하며 옳은 목소리를 담은 법조계 콘텐츠가 보다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도 채널을 개설하고 약 20개 영상을 게시하며 공익단체 유튜버 대열에 합류했다.
자신의 채널에 교수·변호사 등 다양한 초대손님을 불러 대화를 나누는 정연덕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일반인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귀한 경험으로 여겨진다"며 "법은 기득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깝고 친숙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