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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김두식 세종 대표변호사 “끈끈하고 단단한 원-펌 구현”
홍수정 기자
2020-05-04 09:21
“한국로펌, 보이지 않는 룰 지키는 문화 함께 만들어야”
'법무법인 세종'을 이끌고 있는 김두식(63·사법연수원 12기·사진) 대표변호사의 집은 북한산 자락에 있다. 그는 직접 설계에 참여한 집에 거주하며, 일주일에 서너번씩의 등산을 통해 체력을 관리한다. 삶의 터전을 꾸리는 정성과 꼼꼼한 자기관리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의 이런 능력은 일을 할 때나 로펌을 운영할 때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김 대표는 국내 최고의 국제중재 전문가로 평가 받는다. 후배들은 그를 두고 '열정적이고 완벽한 실무가'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 그에게 법조인으로서의 소명을 묻자 '세종의 도약'을 강조했다. "적어도 일에서 만큼은 여태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나의 소명이 담겨있습니다. 경영대표로서 제가 맡은 로펌도 최고의 수준으로 키워나갈 것입니다." 세종의 경영대표를 두번째 맡고 있는 그는 '끈끈하고도 단단한 원펌(One-Firm)'을 구현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를 지난 달 21일 광화문 디타워 세종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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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63·사법연수원 12기·사진)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는 충북 보은 출신이다. 1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나 어린 시절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초가집이 있는 작은 시골에서 1960년대 유년기를 보냈다. "동네 아이들과 함께 가시나무를 베어 집을 만들기도 하고, 개울에서 물장구도 치며 놀았습니다. 어미 오리를 따르는 새끼들처럼 동네 형들을 쫄래쫄래 따라 먼 길을 걸어 등교하기도 했죠. 소박하지만 동화같은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세종합동법률사무소와 인연

 

초등학교 시절 서울에 올라온 그는 어머니와 두 명의 누나, 한 명의 여동생과 함께 생활했다. 학창시절 가족과 함께 살던 셋방에서 공부하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라 온 가족이 함께 셋방살이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기생충' 같은 영화에서 보이는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아요. 당시 과외할 형편은 안 됐지만 공부는 잘했습니다. 반지하 방의 어두운 전등불 아래에서 책을 보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 때는 이과 진학을 고민했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문과를 선택했다. 그렇게 법조인까지 이어진 길이 더 없이 잘 맞는 것을 보면 '운명'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새내기 변호사로서

‘국제변호사’ 새로운 길 도전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책도, 사건도 아닌 어머니라고 했다. "어머니는 강인한 분이었습니다. 홀로 네 아이를 키우는 생활력 강한 여인이었죠. 저 역시 일을 한 번 시작하면 뿌리를 뽑을 정도로 끈질긴 면이 있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곤 하죠."

 

김 대표는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뒤 1980년 23세의 나이로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뒤 선·후배들과 어울리며 인생 처음으로 자유와 독립감도 맛보았다. 


‘미국투자조합 해설’ 발간하며

한국어 용어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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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법조인으로서 새출발을 기다리는 김 대표에게 신영무(76·사시 9회) 변호사가 찾아왔고, 이 때 인연이 법률사무소 합류로 이어졌다. 법무법인 세종의 전신인 '세종합동법률사무소'다. "집에 있는데 신 변호사님으로부터 '지금 당장 만나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급히 나간 자리에서 신 변호사님은 '함께 사무실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죠. 1주일을 고민한 끝에 따라 나섰습니다."


김 대표가 당시 결심을 굳힌 데는 '국제사법의 대가'로 불렸던 백충현 교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대학교 4학년 때 백 교수님이 수업 중에 한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국제사법이라는 학문이 있다. 판·검사만이 법조인의 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국제화 시대를 배경으로 활약할 국제변호사에도 도전해 보라'는 취지였죠. 미래를 고민하던 그 1주일 동안 자꾸만 교수님의 말이 떠오르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신 변호사님의 손을 잡았죠."


이후 김 대표는 국제중재 사건에서 우리 정부를 대리하는 등 국제중재와 국제통상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가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1980년대는 국내 법조계에는 '국제통상'의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국제화의 기조 속에서 국제법률업무도 태동하기 시작했다. 


첫 국제중재 사건은

82년 ‘한전-유니언오일’ 분쟁

 

교과서도, 선례도 없던 시절 청년변호사였던 김 대표는 새로 개척하는 마음으로 업무를 해나갔다. 그렇게 간 길이 새로운 선례로 남기도 했다. "스물 다섯살에 변호사가 되었는데, 국제중재 분야에는 참고할 만한 교과서도 마땅치 않은 상태였습니다. 1988년 '벤처캐피탈의 조성 및 운영을 위한 미국투자사업조합 해설'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리미티드 파트너쉽(Limited Partnership)과 제너럴 파트너(General Partner)에 맞는 한국어 용어가 없어 고민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결국 '유한책임조합', '업무집행조합원'으로 직접 번역을 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용어가 아직까지도 법조계에서 통용되는 것을 보면 감회가 새롭죠."


중재과정 ‘영어소통’ 고생 후

시카고 로스쿨 유학

 

그는 국제중재 변호사로서 처음 맡았던 '한국전력-유니언오일 사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1982년 한국전력과 유니언오일 사이의 중재사건에서 한전 측을 대리했습니다. 유니언오일이 대주주로 있는 발전소에서 한전이 전기를 사 대가를 지급했는데, 전기요금에 대한 분쟁이 터진 것이죠. 국제중재가 서울에서 이뤄졌는데, 한국 사람들끼리 영어로 중재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재미있었죠. 이 과정에서 외국의 법대 교수와 소통하며 영어가 부쩍 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국제중재 변호사로서 영어를 익혀야 하고, 전기요금의 체계 등 사안에 관한 사항들을 철저히 파악해야 된다는 것을 절감했죠."

 

김 대표는 1986년 미국 시카고대 로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녹슨 고가도로와 다운타운, 슬럼가를 직접 눈으로 보며 미국 사회를 맨 눈으로 목격했다. 또 영미법과 대륙법으로 구분하는 법체계도 큰 줄기에서 유사점을 가진다는 점을 배웠다.


영어는

결국 업무과정에서 부딪치며

배우고 터득

 

김 대표는 세종에서 누구보다 완벽한 업무 영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 유학 시절이 도움이 됐는지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많은 변호사들이 영어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업무 영어는 결국 업무과정에서 부딪치며 배워가는 것입니다. 컨퍼런스 콜 등 업무 중에 치열하게 터득한 것들이 실력으로 쌓이는 것이죠."


그는 중재사건 중 두 가지 사건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하나는 2002~2003년 맡았던 정부와 WTO(World Trade Tower, 세계무역기구) 간 보조금 관련 분쟁사건입니다. 우리 정부가 국내 조선사들에게 4조 원가량 지원을 한 것을 두고, WTO는 이것이 협정에 어긋나는 보조금 지급이라며 시정을 요구했습니다. 정부를 대리해 승소로 이끌며 우리나라 조선 산업 보호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다른 사건은 2018~2019년 맡았던 대창의 황동봉 사건입니다. 황동봉을 생산하는 '대창'이라는 업체에 미국 고객사가 제품 하자를 이유로 손해를 입었다며 배상을 요구했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객사를 상대로 오래 고생한 대창 측은 승소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도맡아 처음부터 끝까지 파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동료 변호사들과 역할 분담을 하고 사기를 북돋우며 해나가다보니 어느 순간 한 줄기 빛이 보였습니다. 상대 측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고, 방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결과는 완승이었습니다. 원고 청구는 모두 기각됐고 중재 비용 및 변호사 비용까지 지급하라는 중재재판소 판정이 나왔습니다. 지친 고객을 다독이고, 어려운 기술 개념을 소화해가며 승소한 사건이라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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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국제중재 전문가에게 필요한 역량으로 '경험'과 '끈기'를 꼽았다. "중재는 (사건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문입니다. 중재의 토대가 되는 다양한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야 하기 때문에, 풍부한 경험은 전문가가 되는데 가장 필수적이 역량이죠. 또 통상 2년 정도 걸리는 중재 사건에서 무수한 문서를 파악하고 변론을 준비해 나가는 끈기도 필수적입니다." 

 

그에게는 또 하나의 중요한 타이틀이 있다. '경영대표를 두 번 맡은 변호사'가 그것이다. 김 대표는 2006년 8월 세종 파트너 변호사들의 추대를 받아 경영대표에 선출됐다. 신영무 대표변호사의 다음 주자로 세종의 세대교체를 이끌 새 인물로 낙점된 것이다. 그의 나이 49세 때다. 그리고 2013년까지 세종을 이끌었다.


국제중재 전문가로서

필요한 역량은 경험과 끈기

 

그는 이 기간 중 2012년 서울 회현동 스테이트타워로 사옥 이전을 진행하며 파트너들의 의견을 수렴하던 과정이 크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개별 파트너들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동시에 충분한 토의를 통해 총의를 하나로 수렴해가는 과정이 녹록치는 않았다. 그러나 노력 끝에 성취한 결과라 더욱 보람되게 다가왔다.

 

그리고 2019년 세종의 경영대표로 다시 선출됐다. 그는 경영대표 선출 당시 세종의 구성원들에게 △'원펌(One-Firm)'을 만들 것과 △'또 한 번의 도약'을 약속했다. 대형로펌 중에서도 특히 민주적이라 평가받는 세종의 파트너십을 존중하면서도, 협업과 상생의 '원펌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약속하며 그 일환으로 △폭넓은 인재 영입 △오피스의 디지털화 △내부조직 개편 등에도 나섰다. 


2006년 이어 2019년

두 번째 경영대표로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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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들이 고질적으로 가지는 순혈주의에 구애받지 않고 경력 변호사, 외국 변호사까지 적극 영입에 나섰습니다. 결국 로펌의 도약은 인재에서 출발하니까요. 또 올 6월을 목표로 원격 클라우드 시스템 마련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세종을 유한법무법인 체제로 전환하고, 스태프 보강을 통해 백 오피스(Back Office)를 강화하는 등 내부 개편도 거듭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의 복귀와 함께 세종은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액 2000억대를 돌파하는 쾌거를 거뒀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성장에 박차를 가해 일대 도약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세종을 향해 제기되는 '세대교체' 필요성을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경영대표 업무를 다시 맡으면서부터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유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후임자를 물색하는 동시에 차세대 주자가 경영에 집중할 수 있게 시스템 개편도 미리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수행하는 모든 작업들은 세종의 젊은 후임자를 위한 실천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꿈은

항공모함 같은 로펌 만들고 싶어 

 

김 대표에게 한국 로펌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내실'과 '정도'를 강조했다. "한국 로펌들은 어느 정도 양적 성장을 이룬 상태입니다. 이제 구성원의 행복을 고심하며 내실있는 조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또 '페어플레이'를 기억했으면 합니다. 컨플릭트, 리크루팅, 평판 등 문제에서 로펌의 윤리를 되새기며, 보이지 않는 룰을 지키는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법조인으로서의 꿈을 물었더니 그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항공모함 같은 로펌을 만들고 싶습니다. 최고의 프랙티스(Practice)를 수행하며 영속성 있는 로펌, 민주적 토대 위에 탄탄한 파트너십을 갖춘 로펌이 그것입니다. 그렇게 단단한 세종을 만들고 물러날 수 있다면 은퇴 후에도 늘 흐뭇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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