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적 분쟁해결제도(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ADR)가 주목 받는 이유는 대립하는 상대방의 이익(interest)에 주목하고 합의를 통해 종국적 분쟁해결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정부처나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행정형 ADR의 체계와 구조, 효력 등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중구난방'으로 운영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많다. 이때문에 ADR 관련 기본법을 제정하는 등 조정인의 중립성·독립성, 조정결과의 공정성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변호사들, 조정분야서 활약 = 법조인의 행정형 ADR 참여는 크게 조정위원과 조사관·심사관이라는 서로 다른 층위에서 이뤄진다. 조정위원으로는 실무경험이 풍부한 외부인을 위촉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정의 준사법성을 강화하기 위해 방송분쟁조정위원회나 환경분쟁조정위원회처럼 조정인단 구성 때 일정 비율 이상 법조인의 참여를 의무화하는 경우가 많다.
2000년대 이후
행정기관마다 조정위원회 설치
실무진급인 조사관·심사관은 기관에 따라 업무 편제가 조금씩 다르다. 이들은 주로 신청인·피신청인과의 면담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조정업무에 필요한 쟁점을 검토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최근에는 각 기관마다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를 조사관·심사관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늘면서 그 역할과 비중이 확대되는 추세다. 변호사 출신 조사관은 분쟁처리 기준이 되는 법률·약관 등을 해석하고, 조정이 원만하게 성립될 수 있도록 당사자 의견을 조율하는 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정 전문 기관에 근무하는 한 변호사는 "비(非)법조인 조정위원은 분쟁분야 실무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이를 법리적으로 풀어야 할 때 종종 어려움을 겪는다"며 "이 경우 변호사 자격이 있는 조정관(조사관)이 위원을 보좌하면서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고 했다.
체계·구조 등
명확한 기준없이 ‘중구난방’ 운영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들은 소속기관, 해당부처와 직접 관련된 법령과 세칙을 검토하거나, 주요사건 결정문을 작성할 때 자문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도 많다. 또 신청인, 민원인에 대한 법률상담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 이처럼 '전천후'로 활약할 수 있기 때문에, ADR기관들은 변호사 출신 조사관 비율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재석(57·군법8회) 대한법률구조공단 상임조정위원은 "조정은 다양한 갈등을 법원까지 가지 않고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원만하게 해소시켜 사회갈등지수를 완화하고 신뢰사회를 구축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조정기관 사무국, 분쟁조정팀 등에 변호사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새로운 변호사 수요를 창출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조정단’ 구성에
일정 비율 변호사 참여 의무화
◇ 체계 확립, 중립성 확보 등은 '과제' =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짜임새 있는 체계와 절차를 확립하는 일이다. 2000년대 이후 행정기관들이 너도나도 조정기구를 설치하면서 수많은 조정위원회가 우후죽순 등장했다.
건설·주택 분야만 봐도 △건설분쟁조정위원회 △건축분쟁조정위원회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 △공동주택관리분쟁조정위원회 △임대주택분쟁조정위원회 △집합건물분쟁 조정위원회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등 7곳이 넘는다. 각 기관별로 근거법률과 업무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민원인들은 세세한 분쟁 분야를 일일히 확인하고 조정 신청을 해야 한다. ADR기구의 난립이 오히려 국민들의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조정인의 중립성·독립성 등
제고 방안 모색
힘있는 행정부처나 공공기관 등 처분청이 직접 관련 분쟁해결 역할까지 도맡을 경우 당사자에게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도마에 오른다. 조정결과에 불응할 경우 행정기관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 때문에 피신청인 등이 울며 겨자먹기로 조정에 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해당 ADR이 '재판상 화해'의 효력을 갖는 경우에는 조정결과에 당사자들이 완전히 구속되고, 준재심 절차를 통하지 않으면 결과를 번복할 수도 없기 때문에 피해가 커질 수 있다.
따라서 ADR기구의 독립성을 강화해 △조정·중재인의 중립성을 확보하고 △절차적 공정성과 신중성을 높이는 한편 △신청인의 재판청구권 의사 포기 등의 요건이 갖춰진 경우에만 재판상 화해의 효력을 인정하는 등 전반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절차와 효력 규율하는
기본법 제정은 과제로
헌법재판소도 2009년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 등 위헌확인 사건에서 이와 같은 요건을 적용해 보상금심의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했다(2006헌마1322).
궁극적으로는 행정형 ADR의 절차와 효력을 규율하는 기본법을 제정해 개선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그동안 학계와 실무계를 중심으로 행정형 ADR을 통할하는 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다.
2006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공공기관에 의한 분쟁해결절차에 관한 법률안'을 제안했던 김유환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는 "아직 우리 사회는 조정과 법적 심판에 대한 개념적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ADR을 운영하는 사례가 많다"며 "행정형 ADR을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조정의 개념, 전문적인 조정인 교육, 조정 방법론 등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기본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