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허위보도 등으로 피해를 준 언론사에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입법이 추진돼 논란이 일고 있다. '아니면 말고 식'의 허위보도나 가짜뉴스는 정신적·물질적 피해 뿐만 아니라 언론에 대한 국민 신뢰를 떨어뜨리는 만큼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거나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지난 9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로 인한 인격권 침해가 명백한 경우 법원이 언론사에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이다. 악의적 보도는 '허위사실을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왜곡보도 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현행 언론중재법상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언론사에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청구할 수 있다. 범죄혐의가 있다거나 형사조치를 받았다는 내용의 언론보도 이후 형사절차에서 무죄 판결 등을 받은 경우에는 추후보도를 청구할 수 있다. 특히 고의·과실로 인한 위법한 보도로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정신적 고통을 받은 때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피해자와 언론사 간의 분쟁이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중재를 신청하거나 법원에 소송을 낼 수 있다.
‘아니면 말고’식 허위보도에
정신적 피해 등 심각
그러나 현행 제도만으로는 가짜뉴스나 허위보도로 인한 피해를 막기 어렵다는 게 정 의원의 주장이다.
정 의원은 "언론중재위의 언론판결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09~2018년 언론 관련 민사 1심판결 중 원고승소율은 49.31%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상소심의 원심판결 유지비율도 88.37%로 거의 뒤집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원고승소율은 39.74%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몇몇 언론의 허위보도와 가짜뉴스는 피해자에게 물질적 손해를 발생시킬 뿐 아니라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킨다"며 "기사에 대한 책임 의식을 높이고 긴장감을 주는 제도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페널티로
언론이 자정할 수 있도록 해야
법조계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기자 출신으로 한국언론법학회장을 지낸 문재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경제적 페널티를 통해 언론이 자정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할 것"이라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지금도 잘못된 언론보도에 대한 손해배상제도를 규정하고 있지만, 명예훼손 등에 대한 손해배상액이 얼마되지 않다보니 고의적이거나 현저히 경솔한 기사·보도를 막을 정도의 불이익은 되지 못한다는 게 문 교수의 설명이다.
악의를 제3자가 판단하는 순간
언론의 자유 침해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도 "인터넷 언론사를 포함해 언론매체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 예전처럼 언론사를 믿고 자체적인 통제에 맡기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장 교수는 "'악의적'이라는 기준이 객관화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악의적이라는 기준과 그에 대한 요건을 누구나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표현을 다듬어 오·남용 소지를 없애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부장판사 출신인 황정근(59·사법연수원 15기) 법무법인 소백 대표변호사는 "악의를 제3자가 판단하는 순간 언론의 자유는 침해된다"며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언론의 자유는 가급적 제한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며 "언론사가 징벌적 손해배상을 두려워하게 되면 보도기능이 위축될 뿐만 아니라 심각한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도기능 위축될 뿐 아니라
심각한 자기검열 우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42·36기)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도 "허위라는 개념은 모호할 뿐만 아니라 기준에 따라 애매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자칫 법을 잘못 적용하면 언론 위축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며 "허위성 판단을 정부가 하게 될 텐데, 정부의 여론시장 왜곡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어서 적절치 않은 입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악의성이나 인격권 침해 여부를 느슨하게 판단하거나 폭넓게 적용한다면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고, 반대로 엄격히 적용한다면 지금과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에 굳이 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며 "불필요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입법 시도"라고 강조했다.
다만 양 변호사는 현행 언론중재 제도를 손볼 필요는 있다고 했다. SNS 발달 등에 따라 허위정보 유통 속도가 굉장히 빠른데도, 현행 제도 하에서는 허위보도 여부에 대한 판단이나 피해자·이해관계인의 반론보도가 빨리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언론중재 제도는 디지털 미디어가 활성화되기 이전의 제도라 적절한 분쟁해결이 어렵다"며 "정정보도는 신중하게 하는 대신, 반론보도는 손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