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어느 일꾼이 작업장에서 물건을 빼돌린다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감독관은 그 일꾼이 퇴근할 때마다 그의 수레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수레는 텅 비어 있었고 그 일꾼은 매번 유유히 작업장을 빠져나갔다. 감독관은 뒤늦게야 깨닫게 된다. 실은 그 일꾼이 훔쳤던 것은 바로 수레 그 자체였던 것이다.
때로는 형식 그 자체가 답인 경우가 있다. 이 글의 글감인 세무조사, 특히 재조사의 경우는 어떤가. 국세기본법에 규정된 예외적 재조사 허용과 관련하여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예외사유에 관한 개념론적인 담론보다 오히려 예외사유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자료 그 자체이다. 그것이 재조사의 원칙적 금지의 본질적인 면을 더 잘 드러낸다. 재조사 금지는 납세의무의 존부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이미 대법원이 재조사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에 관한 법리를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예외적 재조사 허용사유에 관한 실체적 문제에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자료 그 자체의 문제를 별도로 분리해내지 못한다면 판례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요원하다.
2. 종전 세무조사의 자료와 재조사의 개시
이미 오래전부터 대법원은 재조사의 예외적 허용사유에 대한 사안에서 '자료' 그 자체가 갖추어야 할 요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었다. 대법원 2011. 1. 27. 선고 2010두6083 판결은 "구 국세기본법(2006년 12월 30일 법률 제813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1조의3(현행 제81조의4) 제2항에서 재조사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조세탈루의 혐의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자료가 있는 경우'라 함은 조세의 탈루사실에 대한 개연성이 객관성과 합리성 있는 자료에 의하여 상당한 정도로 인정되는 경우로 한정되어야 하며(대법원 2010. 12. 23. 선고 2008두10461 판결 참조) 이러한 자료에는 종전 세무조사에서 이미 조사된 자료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하였다. 종전 세무조사에서 얻은 자료로는 재조사를 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 대법원 판결의 의의는 재조사의 예외적 허용사유에 관한 '자료' 자체의 범위를 한정했다는 데에 있다. 그것도 종전 세무조사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서 말이다. 이처럼 재조사의 개시 당시에 과세관청이 확보한 자료에 관한 쟁점은 예외적 재조사 허용사유에의 사안의 포섭 쟁점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3. 2개 이상의 과세기간과 관련하여 잘못이 있는 경우와 이러한 사정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자료
국세기본법 제81조의4에는 위에서 살펴본 '조세탈루의 혐의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자료가 있는 경우(제1호)' 외에 '2개 이상의 과세기간과 관련하여 잘못이 있는 경우(제3호)'도 규정되어 있다. 대법원 2017. 4. 27. 선고 2014두6562 판결은 "'2개 이상의 사업연도와 관련하여 잘못이 있는 경우'란 하나의 원인으로 인하여 2개 이상의 사업연도에 걸쳐 과세표준 및 세액의 산정에 관한 오류 또는 누락이 발생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따라서 다른 사업연도에 발견된 것과 같은 종류의 잘못이 해당 사업연도에도 단순히 되풀이되는 때에는 이러한 재조사의 예외적인 허용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나아가 "과세관청이 하나의 원인으로 인하여 2개 이상의 사업연도에 걸쳐 과세표준 및 세액의 산정에 관한 오류 또는 누락이 발생한 경우임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자료에 의하여 재조사를 개시한 경우에 비로소 구 국세기본법(2013년 1월 1일 법률 제1160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1조의4 제2항 제3호에 따른 적법한 재조사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이 2014두6562 판결에 대한 거의 모든 평석이 주로 위 두 부분의 인용 중 앞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오히려 뒷부분, 즉 위 조항(제3호)의 경우임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자료에 의하여 재조사를 개시한 경우에 비로소 적법한 재조사에 해당한다고 한 부분이 재조사 금지의 본질적인 면을 드러낸 중요한 법리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법리가 자칫 놓치기 쉬운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2014두6562 판결의 파기환송심은 뒷부분 법리에는 주목하지 못하고 판단을 내렸고 이에 대해 원고가 다시 상고하였는데 대법원에서 다시 파기환송을 하였다. 대법원이 다시 파기환송을 한 취지는 "원심으로서는 앞서 본 법리에 따라 재조사에 해당하는 제2차 세무조사가 00사업연도에 관하여는 그 개시 당시에 00사업연도에 관하여는 조사범위확대 당시에 각각 재조사의 예외적인 허용사유인 '하나의 원인으로 인하여 2개 이상의 사업연도에 걸쳐 과세표준 및 세액의 산정에 관한 오류 또는 누락이 발생한 경우'임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자료가 있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심리·판단하였어야 했다"는 것이었다(대법원 2018. 7. 12. 선고 2017두534 판결).
4. 세무조사의 범위 확대와 재조사의 개시
앞서 본 위 제3호(2개 이상의 과세기간과 관련하여 잘못이 있는 경우)는 국세기본법 제81조의9에 규정된 조사범위확대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와 상당히 유사하다. 조사범위확대는 구체적인 세금탈루 혐의가 여러 과세기간 또는 다른 세목까지 관련되는 것으로 확인되는 경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조사범위확대는 한 개의 세무조사 진행 도중에 이루어지지만 조사범위확대 전의 세무조사와 그 후의 세무조사가 개념상으로는 별개의 세무조사라는 점이 흥미롭다. 위 2017두534 판결이 사업연도에 따라 조사범위확대 당시를 기준으로 삼아 자료를 논한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만약 조사범위확대 사유에 관한 자료가 조사범위확대 전의 세무조사에서 획득된 것이 아니라 이미 과세관청 내부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라면 어떨까. 만약 이러한 경우에도 조사범위확대를 허용한다면 과세관청의 자의로 인한 조사권 남용의 우려가 너무 커져 버린다. 과세관청은 언제든 재조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조사범위확대를 활용할 수도 있게 된다. 법령이나 판례의 태도가 재조사 개시에 대하여 과세관청 외부에서 자료가 확보된 경우를 주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 자료에는 당초의 세무조사에서 확보된 자료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임은 앞서 본 바와 같다.
5. 각종 과세자료의 처리를 위한 재조사와 과세관청 외의 기관이 제공한 자료
구 국세기본법(2013년 1월 1일 법률 제1160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1조의4 제2항 제5호, 구 국세기본법 시행령(2016년 2월 5일 대통령령 제2694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63조의2 제2호 전단에 의하면 '각종 과세자료의 처리를 위한 재조사'는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그런데 대법원은 "여기에서 말하는 각종 과세자료란 세무조사권을 남용하거나 자의적으로 행사할 우려가 없는 과세관청 외의 기관이 그 직무상 목적을 위하여 작성하거나 취득하여 과세관청에 제공한 자료로서 국세의 부과·징수와 납세의 관리에 필요한 자료를 의미하고 이러한 자료에는 과세관청이 종전 세무조사에서 작성하거나 취득한 과세자료는 포함되지 않는다(대법원 2015. 5. 28. 선고 2014두43257 판결 등 참조)"고 해석하였다(대법원 2018. 6. 19. 선고 2016두1240 판결).
참고로 위 제2호는 위 대법원 판결 취지를 반영하여 2019년 2월 '과세관청 외의 기관이 직무상 목적을 위해 작성하거나 취득해 과세관청에 제공한 자료의 처리를 위해 조사하는 경우'로 개정되었다.
6. 나가며
아마도 세무조사의 절차적 적법성이 문제되는 가장 흔한 경우는 재조사일 것이다. 재조사에 대한 우려는 과세관청에게도 큰 숙제이다. 재조사를 접하는 납세자는 영업의 자유의 심각한 침해를 당하게 된다. 세무공무원이 자의로 재조사를 개시하지는 않는다. 과세관청을 단일한 하나의 주체로 생각하는 순진함에서 벗어나면 왜 재조사 이슈가 반복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과세관청 내부에서도 각 부서들 간에 견제의 원리가 적용된다. 감사 기능도 그러한 원리에 터를 잡고 있다. 물론 재조사를 받는 납세자의 입장에서는 재조사의 시발점이 어디였는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기실 알 수도 없다. 답은 대법원이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 재조사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사정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 자료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최성훈 변호사(법무법인 은율 · 전 중부지방국세청 송무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