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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자타공인 최고 조세 전문가… ‘미스터 퍼펙트’ 백제흠 변호사
왕성민 기자
2020-09-07 11:53
“전문자격사 선택은 고객이… 법으로 제한은 문제”

부드러운 눈매와 환한 미소를 가진 백제흠(55·사법연수원 20기·사진) 변호사의 첫 인상은 소탈했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행정고시와 사법시험에 모두 합격한 수재로, 한국 최고의 조세 전문 변호사 반열에 자리매김한 그였지만 인터뷰 내내 겸손하고 따뜻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절로 떠올랐다. 잘나가던 판사였던 그는 1990년대 조세법의 불모지와 같았던 국내 상황과 마주했다. 그리고 조세 분야의 높은 잠재력을 간파한 백 변호사는 2001년 법원에 사직서를 내고 홀연히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오직 "조세법을 제대로 연구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자칫 패착(敗着)이 될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고 과감하게 승부수를 띄웠고,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조세 전문가가 됐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을 좌우명으로, 조세법 '외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백 변호사를 만나 삶의 철학과 인생역정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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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흠(55·사법연수원 20기·사진) 변호사에게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물었더니 "대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는데…" 라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3년간 투병생활을 하시다 제가 사법시험 2차 시험을 치르기 며칠 전 결국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암 투병으로 

가세 기울어져 절박하게 공부

 

백 변호사는 전북 이리(익산)의 한 작은 마을에서 농약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4형제 중 장남이었다. 방죽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잠자리와 물고기를 잡는데 열중하던 시골 소년은 남성초등학교 6학년 때 가족과 떨어져 홀로 서울에 유학을 왔다. 해방 이후 최대 폭발사건으로 꼽히는 '이리역 폭발사고(1977)'가 났던 해다.

 

"종로구에 있는 혜화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는데, 명륜동에 있던 고모댁에 잠시 머물다가 서대문구 숙부댁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다보니 만화가게를 전전하며 성적이 많이 떨어졌어요. 이를 걱정한 부모님이 서둘러 돈의동에 전셋집을 구해 올라오시면서 다행히 마음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경신중학교를 졸업한 백 변호사는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중동고에 입학했다. 지금은 강남으로 이전했지만 당시에는 종로구 수송동에 교사(校舍)가 있었다. 그는 주말마다 정독 도서관을 다니며 공부했는데, 학교 선배들이 돌아다니면서 후배들의 복장 상태를 점검하고, 때론 기합을 주기도 했다.

  

대학 4학년 때 行試 

이듬해 사법시험 잇따라 합격

 

서울대 법대에 84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김소영(55·19기) 전 법원행정처장, 김상환(54·20기) 대법관, 이은애(54·19기) 헌법재판관 등과 같은 반에 속했다. 이 때는 신군부의 철권 통치가 극에 달하던 시기로, 백 변호사는 여름방학 때 전남 구례에 있는 원좌마을로 농촌봉사활동을 떠나 선배·동기들과 암울한 시국 상황을 토로하기도 했다. 3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고시 공부에 뛰어들었는데, 그는 뜻밖에도 사법시험이 아닌 행정고시 합격을 목표로 삼았다.

 

"공무원 생활을 하신 외삼촌(박동희 전 관세청 차장)의 영향으로 공직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 고(故) 박세일 교수님이 지도교수로 계셨던 법경제학회에 가입하면서 큰 영향을 받았어요. 박 교수님은 법대생들에게 '사법시험 일변도로 가지마라, 행정부로 가서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설파하셨습니다. 80년대 초중반 학번 사이에서는 한때 행정고시 열풍이 불었는데 선배이신 오윤 한양대 로스쿨 교수,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차관 등 많은 법대생들이 행정고시를 선택했습니다."

 

집안 부채로 수년 간 訟事 끝

 법조계로 진로 결정

 

아버지의 암투병으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절박하게 공부에 매달렸다. 그 결과 4학년 때 행시의 꽃으로 불리는 재경직에 합격했으며, 이듬해 치른 제30회 사법시험에서도 당당하게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양과(兩科)에 합격했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부친이 아들의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눈을 감은 데다, 수억 원의 집안 빚도 그의 몫으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의 사업 상대방이 갑작스레 민·형사소송을 제기하며 돈을 요구했다. 결국 승소하긴 했지만 수년간 이어진 송사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법관생활 7년 접고 

조세법 공부하러 美 ‘자비 유학’


"사법연수원과 군법무관 시절, 프라이드 승용차를 타고 호남고속도로를 수십 차례 오가며 증인을 섭외하고 소송서면을 작성하는 등 직접 재판에 대응했습니다. 집안 빚이 적지 않은데다 동생들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어서 마음에 여유가 없었어요. 유품 더미 속에서 관련된 문서를 찾아가며 힘겹게 소송을 치렀는데, 7~8년이 지나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군법무관 복무를 마치자 그는 판사와 경제부처 사무관 사이에서 진로를 선택해야 했다. 백 변호사는 젊은 날 꿈꾸던 행정 관료의 길을 포기하고 법조계 진출을 결심한다.

 

2014년 로펌서

 ‘가장 스카우트 하고 싶은 변호사’로

 

"행정고시를 준비하면서 회계학·경제학을 배운 인연으로 대학원에서 세법을 전공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조세법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는데, 조세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법원이 더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1994년 인천지법 판사로 임용된 그는 이후 서울지법 동부지원, 창원지법 통영지원을 거쳐 2001년 서울지법 판사로 발령을 받는다. 이 시기 그는 남은 인생을 좌우하게 될 '터닝 포인트'를 맞는다. 과감하게 법복을 벗고, 조세법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학비와 생활비는 퇴직금과 전세 보증금을 빼 마련했다.


작년 행정법원 세금관련 재판서 

수임사건 모두 승소

 

"엄청난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내린 선택이었습니다. 법원에서 보내주는 유학 프로그램도 아닌 자비 유학을 택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세법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곳이 드물었고, 전문가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잘 배워서 돌아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사표를 내고 하버드 로스쿨에 개설된 '국제조세과정(International Tax Program)'에 입학했습니다. 승부수를 띄운 셈이지요."

 

미국은 세법이 가장 발달한 나라 중 하나다. 조세법 강좌가 별로 없었던 국내 대학원과 달리 뉴욕대 로스쿨만 해도 당시 개설된 세법 강좌가 40여개에 달했다. 하지만 백 변호사는 미국에서 뜻하지 않은 복병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언어 장벽'이었다.

 

“변호사·세무사 각자 잘할 수 있는

 영역 조금씩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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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하게 유학을 결정하다 보니, 영어 준비가 덜 되어 있었습니다. 말하기는 고사하고 듣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수업시간에 고역을 치렀지요. 미국 로스쿨에서는 알파벳 순서대로 호명해 질문하는 관행이 있는데, 제 성이 'Baik'으로 기재되어 있다 보니 유난히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권과 토플시험 신청을 아내가 대신했는데, 왜 'Paik'으로 하지 않았는지 원망 아닌 원망을 하기도 했습니다(웃음)."

 

하버드 로스쿨 국제조세과정을 마친 뒤 그는 뉴욕대(NYU) 로스쿨에서 조세법 석사학위(LL.M.)를 취득하고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까지 딴 후 2004년 귀국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선택이 옳았음이 증명됐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조세법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백 변호사는 △1조6000억원 규모의 서울은행-하나은행 역합병 과세 적부심 사건 △4000억원 규모의 국민은행 대손충당금 환급 사건 △700억원 규모의 엔화 스와프 예금 과세 환급소송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맡아 맹활약하며 조세법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구축했다. 그 결과 2014년 한 언론사에서 7개 로펌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스카웃하고 싶은 변호사 1위'를 차지했다. 또 승소율이 워낙 높아 고객들 사이에서는 '미스터 퍼펙트'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에서 선고된 세금 재판 결과에서 백 변호사는 수임한 4건의 사건에서 전부 승소해 100% 승소율을 자랑하기도 했다.

 

“변호사는 법학과 세무지식의 

입체적 서비스가 장점”

 

조세 전문가인 백 변호사는 올 초 진통을 겪은 '세무사법 개정안' 논란에 대해서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변호사든 세무사든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조금씩 다릅니다. 사안에 맞게 고객이 전문 자격사를 선택하면 될 문제인데, 법으로 업무 자체를 못하게 만들어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조세 이슈에서는 세법의 해석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매우 큽니다. '제너럴리스트'인 변호사는 오히려 법학과 세무 지식을 입체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변협 변호사연수원장 등 

사회활동의 보폭도 넓혀

 

지난 2016년 백 변호사는 세법 쟁점을 집대성한 '세법의 논점'을 발간했다. 현재는 한국지방세학회장, 한국세법학회 부회장 등으로 활약하면서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연수원장도 맡는 등 다방면에서 사회적인 보폭을 넓혀 가는 중이다. 그에게 변호사로서 가진 삶의 철학을 물었더니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으로 어디라도 자신이 본받을 만한 것이 있다는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변호사는 다른 사람의 사건을 처리하면서 인생을 배워 나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고객의 내면을 이해하려는 과정과 함께 지근거리에서 벌어지는 실제 사건들을 간접 경험함으로써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를 견지하면, 많은 변호사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풍성한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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