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는 매년 사법부가 달성한 주요 운영성과와 각종 현황, 통계자료를 정리한 주요 기록물로 '사법연감'을 편찬한다. 사법연감은 사법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물론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구현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된다. 내부적으로는 사법행정의 미래를 설계하는 기초자료로, 외부적으로는 법조계와 학계는 물론 일반 국민이 사법부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유용한 자료다."
사법부가 해마다 사법연감을 발간하며 직접 소개하는 자료의 존재 이유들이다. 하지만 사법연감의 가치를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매년 수천건씩 소송을 남발하는 A씨 관련 사건이 사법연감 민사소송 통계에 그대로 포함돼 통계 자체가 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통계로는 유의미한 분석을 할 수 없다.
법원행정처가 지난 5일 발표한 '2020 사법연감'을 살펴보면, 지난해 전국 고등법원 항소심 민사본안소송 접수 건수는 1만9427건, 처리건수는 1만6073건으로 82.7%의 사건 처리율을 기록했다. 이는 2018년 110.6%와 비교할 때 27.9%p나 떨어진 수치다. 그런데 여기서 A씨 사건을 제외하면 2018년 처리율은 103.9%, 지난해 처리율은 98.8%로 사건 처리율 차이가 5.1%p로 줄어든다. A씨가 고법 항소심에 2018년 828건, 지난해 7129건의 소송을 남발한 것이 그대로 사법연감에 반영돼 통계가 왜곡됐기 때문이다.
상고심 파기율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민사본안소송 상고심 파기율은 무려 11.2%로, 2017년 4.8%와 비교하면 2.3배나 늘었다. 하지만 A씨 사건을 제외하면 지난해 상고심 파기율은 5.2%에 불과하다. 실질적인 상고심 파기율은 2017년에 비해 0.4%p 높아진 셈이다.
사법연감 통계 왜곡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사법연감에는 '파기자판에는 소송남용사건의 재심청구기각 종국이 포함됨'이라는 주석 한 줄이 달려있을 뿐이다.
통계자료가 빛을 발하는 것은 그 자료를 통해 유의미한 분석이 이뤄지고, 이 분석을 토대로 문제점에 대한 대책이나 건설적인 청사진이 마련될 때다. 지금의 사법연감이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내년에는 자료로서 유의미한 통계가 담긴 사법연감을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