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이란, 쉽게 말하자면 '정성(精誠)스럽고 참되어 거짓이 없음'을 말한다."
한국 철학계의 거목 고(故) 김태길 서울대 교수의 '인간의 존엄성과 성실'이라는 글의 한 구절이다. 이 말을 인생의 길잡이로 삼아 문학소년에서 법학도로, 판사에서 법학자로, 성실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는 형사법학자가 있다. 바로 이상원(60·사법연수원 21기·사진) 서울대 로스쿨 교수다. 올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 등이 통과되면서 우리 형사사법체계는 이른바 '대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다. 형사 실무와 이론에 모두 해박한 형사법학자가 바라보는 우리 형사사법의 미래는 어떨까. '공판중심주의 강화'를 골자로 한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 당시 법원 실무자로 참여했던 이 교수를 지난달 21일 서울대 로스쿨 연구실에서 만나 들어봤다.
이상원(60·사법연수원 21기·사진)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유년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서울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인천 출신이지만, 글짓기 대회에서 곧잘 상을 탄 덕분에 난생 처음 서울 나들이도 해봤다. 문학소년을 꿈꾸던 이 교수는 어떤 이유로 법학의 길을 선택했을까.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에서 전공하고 싶은 것은 국문학이었습니다. 문법을 배웠는데 국문법 체계를 영문법보다 더 훌륭하게 해보자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법을 만나게 됐습니다. 체계를 잡는 것에 관심이 많다보니 나중에는 문법이 아닌 사회의 법체계를 잡으려고 법학과를 택했습니다. 어린시절 백일장에서 상을 받다가 나중에는 사회의 법을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서울대 법대 진학과 동시에 엄혹한 근현대사의 격동을 마주한다.
형사사법권은
가장 강력한 인권침해 수단
"5·18 때가 대학교 1학년때였습니다. 몇 달간 대학이 셧다운 됐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주어지는 교육에 따라갔었는데, 국가가 옳지 않다는 것이 많이 충격이었습니다. 학교도 안나가다보니 법 공부보다 고민하고 찾아봤던 책이 심리학, 철학책이었습니다. 학교 대신 국립도서관, 남산도서관을 찾았죠. 그러면서 인간, 사회와 인생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당시 경험은 훗날 '형사법' 학자로서의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이 교수는 1989년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2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그는 법관의 길을 택했다.
부당한 침해가
발생 않도록 하는 수단이 필수적
그러한 장치가 완비될수록
국민을 위한 제도
"판사, 검사, 변호사 중 제 성격에 맞는 게 판사였습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지'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판사가 직업적으로 제일 좋은 게,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갔을 때 유권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습니다. 자기의 양심과 다른 일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판사는 자기의 양심에 맞춰 양심대로 사는 게 바람직한 직업입니다. 자기 양심대로 일을 할 때 가장 훌륭한 판사가 되고 양심과 나의 업무가 일치할수록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좌우명은 '순리보우(順理補佑)'다. 고교시절 서울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고(故) 김태길 교수의 '인간의 존엄성과 성실'을 읽었는데 무척 와닿았다고 한다. 그래서 '진리를 따르고 당위를 세우며 이웃을 사랑하자'라는 '순리보우'를 늘 마음애 새긴다.
15년 짧지 않은 판사 생활을 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
"계(契) 모임과 관련된 사건이었습니다. 계주의 상황이 딱했습니다. 유사한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계주가 져야하는 사건이었습니다. 판사로서는 판례대로 계주를 지게하면 편한 사건이었지만 정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적으로 대법원 판례가 틀렸다고 볼 수 없지만 현명한 판단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결국에는 조정으로 끝났는데, 아직도 하염없이 울던 계주가 떠오릅니다."
그는 오페라 아리아 등 노래를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법원에 있을 때 모 대법관님을 따라 성악 모임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음대 교수님을 만나게 됐고 노래를 배우게 됐죠. 서울대 법대 부교수로 이직한 첫 해인 2008년, 박왕자씨 사건이 있기 전 금강산에 간 적이 있는데, 신임 교수는 노래를 불러야한다는 말에 금강산에서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법복을 벗고 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 중에서도 '형사법'을 택했다.
"형사법이 재밌었습니다. 저는 철학, 심리학에 관심이 있었는데 형법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제가 근본적인 고민을 좋아했던거 같고, 법률적인 이론을 만드는 데 흥미가 많았는데 판사 일을 하면 사건 처리에 몰두해야하니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갤러그 게임을 아시나요? 계속해서 내려오는 적들처럼 계속해서 사건이 내려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교수로서의 즐거움도 새롭게 알게됐다.
"처음에는 법학공부하고 나름대로 이론을 만드는 데 관심이 컸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직접 가르쳐보니까, 젊은 학생들과 생활하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천하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에 즐거움이 있다는 공자님 말씀이 있듯이, 학교에 와서 보니까 그부분도 엄청나게 좋은 점입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지키지만
다수의 결정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야
그래서 법에 의한 지배,
법치주의가 필요
그에게 학문으로서 법학의 위기에 대해 물었다.
"(로스쿨) 교육과정 자체가 다소 변호사시험 위주로 돌아가는 면이 없다고 할 수 없는데, 로스쿨 제도 내에서도 학문과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법은 현실학문이기 때문에 이론만 추구해도 법학을 만들 수 있지만 현실의 법이 돌아가는 것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이론을 추구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스쿨 시대를 맞아 실무가로서의 경험을 쌓고 학문의 길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충분히 있어, 학문 후속세대도 키울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로스쿨 제도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법대가 많아서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로스쿨 학생들을 중심으로만 법을 공부하니까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이전보다 줄었습니다. 이렇게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의 저변이 줄어드는 건 우려스럽습니다. 나아가 법의 근본적인 정신, 정의를 추구하는 건 조금 뒷편으로 가게 되고 법을 출세와 돈벌이 도구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기 인생 커리어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비율이 많아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조금 걱정이 되고 대비책이 필요합니다."
이 교수는 교수생활을 하는 또다른 기쁨은 외국에 우리 법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법을 외국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우리나라는 삼성이나 K-POP 같은 것을 수출하는데, 한국법학도 수출하면 좋지 않을까요. 특히 외국인들과 교류할 때 한국에 관심이 많은 아시아 각국과 교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 각국은 형사법 발전 단계에서 우리보다는 조금 발전이 덜 된 부분이 있어서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제6대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으로 활동했고 현재는 서울대 인권센터장을 맡고 있다. 형사법학자로서 검찰개혁에 대한 그의 지론은 단호했다.
"검찰은 개혁돼야 합니다. 그러나 그 개혁은 국민을 위한 개혁이어야 합니다. 제도개혁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초래되는 실질적 이해득실을 살펴보면, 각 주장의 진짜 이유, 실질적 이유를 발견할 수 있고, 이로써 개선인지, 개악인지가 나타납니다. 이번 개혁은 경찰수사의 독립, 검찰 인지수사의 축소, 공수처 설치가 핵심입니다. 형사사법권은 가장 강력한 인권침해수단입니다. 그러므로 부당한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수단이 필수적이고 그러한 장치가 완비될수록 선진적 제도이고, 국민을 위한 제도입니다. 이번 개혁의 전후에 국민의 삶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을까요? 검찰 수사에 대한 수사외적 통제가 증강된 것 외에는 수사에 대한 인권보장 장치가 오히려 풀리게 되었고, 수사의 총량은 늘어났습니다. 국민 인권 차원에서는 오히려 후퇴한 것입니다."
그는 판사 시절인 2007년 참여정부 때 이뤄진 형사소송법 개정과정에 법원 측 실무자로 참여했다.
"2007년에는 수사권에 대한 법원의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핵심은 '공판중심주의'였습니다. 당시에는 검·경에서 유죄로 판단하면 법원(재판과정)은 통과의례가 될 가능성이 높았는데, 심리의 실질을 법원으로 가져와서 수사기관이 유죄심증을 갖고 있어도 법원에서 다시 리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인권보장의 방어판을 더 마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듀 프로세스(due process, 적법절차)' 모델이 강화된 게 바로 2007년이었습니다."
법학은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정당한 결론을 추구
이 교수는 현재의 개혁은 당시보다 오히려 후퇴했다고 꼬집었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이번 개혁은 수십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기본권과 심지어 목숨을 대가로 얻어낸 한국 형사사법제도의 발전을 완전히 되돌리는 변경입니다. 제도가 어떻든 운용하는 사람이 선하면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제도는 최악의 운용자가 그것을 운용해도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이번 개혁은 국민들로 하여금 마음을 졸이면서 운용자의 선함을 하염없이 기도해야 하는 벌판으로 내몰았습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항상 '길항(拮抗) 관계'에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지키지만 정보의 제한과 오도 등으로 다수의 결정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인류의 지혜가 쌓인 것이 법입니다. 법에 의한 지배, 법치주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사회가 쌓은 지혜의 집적체가 법이죠. 법학자들은 현재의 정치적 의사가 결정됐을 때 지혜에 비춰 옳은 것인가에 대해 검증을 해 볼 임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수결과 상관없이 인류 지혜에 비춰서요."
내가 생각하는 게
편견이 아닌지 계속 점검하고
옳은 것에 대해서는 굴하지 않고
추구할 용기 필요
그는 다음 달 환갑을 맞고,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면서 법학의 길로 들어선 지 벌써 40년이 됐지만, 그의 관심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있다.
"대학 때부터 하고 싶었던 것은 가장 완벽한 법이론의 구성입니다. 그것이 저의 필생의 목표입니다. 법학이 사변적으로 흘렀는데 과학적 방법에 의한 법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지금 과학법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법과 과학이 만나는 곳에서 발생하는 법적인 문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증거에 관한 증거능력, 기술적인 이해처럼 증거법 등 인공지능(AI)이나 과학이 발달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형사법적으로 과학의 도움을 받아하는 수사, 연구하는 학문, 그래서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학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법률가들도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사회 발전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려서 사회문제가 발생한 뒤에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갈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가 워낙 빨리 바뀌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후에 연구를 시작하면 이미 컨트롤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동차 사고가 나면 보험제도를 만드는 것처럼 사회가 조금씩 준비를 해서 문제를 해결해가면 되는데, 요즘 AI 같은 문제들은 해결할 시기를 놓쳐버릴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는 것에 대한 선제적 예견을 하고 미리 연구를 하는 것이 법률가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과거를 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때, 그리고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미리미리 연구하는 게 법률가의 몫입니다."
이 교수에게는 두 반려자가 있다.
그의 부인은 동기 중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한 여미숙(54·21기) 한양대 로스쿨 교수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두 사람은 판사부부에서 교수부부가 된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커플이다. "결혼할 때에는 하늘에 별도 따다 줄 것처럼 얘기했는데 지금 와서 나이가 들다보니까 아내와 가족에게 소홀히 한 것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항상 고맙다는 말밖에는…."
나머지는 형사법이다. "법학은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정당한 결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법은 학설들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게 한쪽 편견이 아닌지 계속 점검해야 합니다. 무엇이 사실인지 진리와 옳은 것에 대해 명예나 돈이나 권력에 굴하지 않고 추구해나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에게 형사법은 평생을 함께 할 친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