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촌 이내 혈족의 혼인을 금지하고, 이를 혼인 무효사유로 규정한 민법 제809조 등의 위헌 여부를 둘러싸고 헌법재판소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헌재는 12일 서울 재동 청사 대심판정에서 A씨가 "민법 제809조 1항 등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2018헌바115)에 대한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민법은 제809조 1항에서 '8촌 이내의 혈족(친양자의 입양 전의 혈족을 포함한다)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고 규정하면서 제815조 2호에서 이를 위반한 근친혼을 '혼인 무효사유'로 정하고 있다.
A씨는 2016년 5월 B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그런데 B씨는 석달여 후인 같은 해 8월 "A씨와 나는 6촌 사이"라며 혼인무효확인소송을 냈다. 법원은 "A씨와 B씨의 혼인신고는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신고이므로 민법에 따라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에 반발한 A씨는 항소를 하면서 "민법 제809조 1항과 제815조 2호는 위헌"이라며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했지만 기각되자 2018년 헌법소원을 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이들 조항이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해 혼인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근친혼을 금지하고 있는 '8촌 이내 혈족'의 범위가 입법목적이나 외국 입법례에 비해 지나치게 넓은지 △오늘날의 친족관념이나 가족개념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어서 혼인의 자유, 특히 혼인 상대방을 자유롭게 선택할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인지 등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금지 범위' 지나치게 광범위해 과잉금지원칙 위배
친족관념·가족개념 크게 변해 법익의 균형성 위반
A씨 측은 "모든 국민은 헌법에 따라 혼인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으므로 이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과잉금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며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는 3촌 이상 방계혈족 사이의 혼인을 허용하고 있고,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은 4촌 이상 방계혈족 사이의 혼인을 허용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우리 민법의 근친혼 금지 범위는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근친혼 금지는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확립된 것으로 우리나라 전통의 가족제도나 사회질서라고 보기 어렵다"며 "1997년 동성동본금혼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과 2005년 민법 개정을 통해 동성동본금혼제도가 근친혼 금지 제도로 전환된 이래 친족관념이 변화했고, 혼인 및 가족에 대한 인식도 급격히 변화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행 민법은 이같은 사정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전학적 관점에서도 6촌 내지 8촌인 혈족 사이의 혼인의 경우 그 자녀에게 유전질환이 발현된 가능성이 비근친혼 자녀의 경우와 거의 차이가 없다"며 "민법 제809조 1항 등은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에 위반된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혈족중심의 공동체 의식이 우리사회 기초
유전질환 취약성 등 방지… 목적의 정당성 인정돼
이에 대해 법무부는 해당 조항들이 합헌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법무부는 "관련 조항들은 근친혼 부부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유전질환 및 생물학적 취약성을 방지하고, 우리 민족의 혼인풍속 및 친족 관념에 기초한 전통을 이어받으며 공동체 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또 "민법 제777조는 '8촌 이내의 혈족'을 친족으로 규정하고 있고, 핵가족화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혈족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의식은 우리 사회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며 "고령가구나 2세대 이상의 가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나 가족구성을 고려하더라도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 금지는 침해의 최소성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8촌 이내의 혈족과 혼인할 자유가 우리 사회의 혼인 및 가족에 관한 질서를 유지하려는 공익보다 우월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법익균형성에 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개변론에는 참고인으로 현소혜(46·사법연수원 35기)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와 서종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등이 참석해 의견을 냈다.
A씨 측 참고인으로 나선 현 교수는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간의 혼인 금지는 혼인과 가족생활의 제도적 보장을 위한 본질적 요소라고 할 수 있으나, 그 외 3촌 이상 방계혈족 사이의 혼인 금지는 시대적·사회적 산물로 혼인과 가족생활의 제도적 보장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 조항이 오로지 유전학적 목적에서 근친혼을 금지한 것이라면 △근친혼과 유전질환의 발병률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는 점 △유전질환의 발생은 혼인 당사자가 스스로 감당하여야 할 문제이지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 △혼인 금지를 통해 출산을 통제한다는 사고나 유전질환을 가진 자녀의 출산이 사회적 위험이나 손실이라는 인식은 인간의 존엄이나 생명윤리에 반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목적의 정당성 자체가 부정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5촌 이상 방계혈족 간에는 더 이상 생활공동체라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정을 고려한다면 근친혼 금지의 범위를 4촌 이내의 방계혈족으로 축소함이 타당하다"며 "만약 이것이 시기상조라면 개별가족의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해 법원이 혼인금지를 면제해 주는 방식으로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법무부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서 교수는 "이들 조항을 입법할 당시 유전학적 목적은 적극 고려되지 않았고, 혼인을 금지한다고 해서 출산까지 막을 수 없으므로 유전학적 이유는 근친혼을 금지하는 부수적인 이유에 불과하다"며 "친족 간 어느 정도 친소관계가 있어야 혼인이 꺼려질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국가마다 경험적·관습적·감정적 인식이 다르므로 근친혼 금지 범위를 정하는 것은 입법재량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독일 등은 민법에 친족의 범위를 명시적으로 규율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 민법은 '8촌 이내의 혈족'을 친족으로 규정함으로써 근친이라는 점을 법률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민법 제777조 1호와의 정합성을 고려해 근친혼 금지의 범위를 8촌 이내의 혈족으로 정한 것은 입법재량의 범위를 초과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헌재 직권지정 참고인으로 나선 전 교수는 "가족 개념에 변화가 있다해도 여전히 문중·당내를 기반으로 한 제례·상례가 유지되는 한, '8촌이 곧 근친'이란 관념은 오늘날에도 보편타당한 관념"이라면서도 "다만 혼례문화는 제례·상례와 달리 자기중심적 친족관계의 경향을 강하게 반영하는 점도 고려하면, 그에 한해 '8촌이 곧 근친'이란 관념이 오늘날 보편타당하다고 단정키는 어렵다"고 말했다.
헌재는 이날 공개변론에서 다뤄진 내용 등을 토대로 최종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