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인 지난 1일 형법 제269조 1항 자기낙태죄와 낙태시술을 한 의료진을 처벌하는 같은 법 제270조 1항 의사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잃었다.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이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지난해 12월 31일까지 개선입법 시한을 줬지만 국회가 대체 입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 이후 1년 8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있었지만 결국 입법공백 상태가 발생했고, 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낙태에 관한 법적 기준이 없는 상황이라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 병원이 진료와 시술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질 우려도 있다.
여성계 등이 주장하는 낙태 전면 허용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여성 건강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시술이 이뤄지거나 안전한 의약품을 구매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혼란을 우려해 조속한 입법 개선을 주문해왔지만 정치권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헌재가 2년 2개월이나 심사 숙고한 끝에 결론을 내리면서 20개월의 개선 시한을 부여하는 한편, 최소한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전(결정가능기간)까지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우선한다는 입법 방향까지 제시했지만 정부와 국회는 늑장만 부렸다.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개선시한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지난해 10월 7일에야 비로소 낙태 허용 시점을 3단계로 구분해 임신 14주까지는 전면 허용하는 내용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낙태죄 개정을 위한 국회 공청회는 정기국회 종료를 불과 하루 앞둔 지난달 8일 졸속으로 개최됐다. 이 때는 여당이 공청회를 명분 삼아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어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려 한다는 꼼수 논란까지 벌어졌다.
이번 입법공백 사태에 대한 책임은 국회와 정부에 있다. 특히 범여권 비례정당을 포함해 전체 300석 가운데 183석이라는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거대 여당의 책임이 무겁다. 이들은 지난해 말 수적 우위를 앞세워 이른바 공정경제 3법 등 자신들이 추진하는 개혁입법을 일방통행식으로 강행처리했다. 하지만 여성과 태아의 인권 및 생명권과 직결된 낙태죄 개선 입법은 등한시해 법치주의 공백을 불렀다. 지금이라도 국회는 개선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