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너도나도 다 법원을 떠나버리면 '평생법관제'는 어떻게 실현하나요."
올 2월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고위법관은 물론 중견 법관들의 '사직 러시(rush)'가 이어지고 있다는 본보 보도(2021년 1월 18일자 1면 참고)를 본 한 부장판사의 말이다.
정기인사를 앞두고 이런저런 이유로 판사들이 법원을 떠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어서 새삼스러울 것은 아니지만, 올해 유난히 우려의 목소리가 큰 이유가 뭘까.
그 이유는 바로 재판 경력이 수십년에 달하는 고위·중견 법관들의 사직 행렬이 '엑소더스(Exodus)'를 방불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파악된 법원장, 고법부장 등 고위법관 사직자가 20여명에 달한다. 대부분이 판사 경력만 30여년을 넘나드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이다.
사법부의 허리를 맡고 있는 고법판사와 지법부장판사 등 중견 법관들도 대거 법복을 벗는다. 이들 중견 법관들은 취업제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상당수가 대형로펌으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보인다. 영입경쟁으로 대형로펌들이 잰걸음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 판사는 "판사 경력이 대형로펌으로 가기 위한 이력이나 스펙으로 변질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까지 하다"고 했다.
사법부는 경륜과 전문성을 갖춘 법관들로 하여금 재판업무를 담당하게 함으로써 사법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한편 전관예우의 폐해도 근절하겠다며 '법조일원화 정책'과 함께 '평생법관제'를 사법제도 개혁을 위한 중추적인 제도로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를 실현할 '좋은 판사'를 계속 보유하지 못한다면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은 구현할 수 없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대기업에서 대졸 신입사원을 실무에 투입시키기까지 1인당 80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된다고 한다. 경력 20~30년의 베테랑 법관 배출에 드는 사회적 비용과 이들의 사회적 효용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사직은 법원 뿐만 아니라 국가적·국민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기업들도 인재를 뺏기지 않기 위해 각종 복지책을 만드는 등 사활을 건다. 말뿐인 평생법관제가 아닌 진짜 평생법관제를 위한 전제조건과 보완책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