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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부티크 로펌’ 대표 주자… 김범수 케이엘파트너스 대표
홍수정 기자
2021-03-08 13:10
“로펌 성장의 비결은 전문영역에서 고객의 신뢰”
"전문성을 기반으로 최고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부티크 펌들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그 발전가능성과 함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국제중재 전문가 1세대'로서 활발하게 활동해 온 김범수(58·사법연수원 17기·사진) 케이엘파트너스(KL Partners) 대표변호사의 말이다. 조곤조곤한 말투와 달리 그의 행보는 늘 뜨거운 열정과 과감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해 20대 중반에 판사로 임관하며 승승장구하다, 1990년대 우연히 오른 미국 유학길에서 지적 충격을 받고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는 변호사'가 되리라 결심했다. 이후 미국에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학을 이어갔고, 2000년 한국에 돌아와 대형로펌에 입사해 국제중재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그러다 2015년에는 국제중재 분야에서 흔치 않게 부티크 로펌을 설립, 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면서 승부사 기질도 보였다. 그는 부티크 펌을 이끄는 대표주자로서 새로운 2막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케이엘파트너스 사무실에서 김 대표변호사를 만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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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58·사법연수원 17기·사진) 케이엘파트너스(KL Partners) 대표변호사는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누나와 쌍둥이 형을 둔 막내다. 법대를 졸업한 가족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법학에 흥미를 느끼며 성장했다. 아버지인 고(故) 김종철씨는 감사원 감사위원을 역임했고, 외숙부인 유경종씨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에서 공정거래국장으로 일했다. 김 대표는 쌍둥이 형인 김연수 서울대학교 병원장이 의료인의 길을 걸은 것과 달리 어린 시절부터 법조인의 길을 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유치할 수 있지만, 학창 시절 부모님께 '법조인이 되어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사회의 규준(規準)을 연구해 분쟁과 갈등을 해결해내는 법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대학 4년 때 사시 합격

20대 중반 판사의 길로 들어서 

 

그의 성장에는 경기고 1학년 시절 담임이었던 김항원 선생님의 역할이 있었다. 선생님은 늘 '인간으로서 올바로 사는 것'을 강조했고 진심으로 제자들을 대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 Society)'를 볼 때마다 은사를 떠올렸다.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김 대표는 4학년 때인 1985년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8년 제17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부산지법 판사로 임관한 뒤 의정부지원, 서울가정법원 등을 거치며 판사 생활을 했다.

 

소위 '소년등과' 후 20대에 판사로 임명돼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경험을 하게 된다. 1996년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University of Florida College of Law)에 법관 해외장기연수 차 유학길에 올랐다.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어 미국에 도착한 그곳에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96년 연수 간 美플로리드대학서 

새로운 문화에 충격

 

"판사로서 우리나라를 대표해 유학을 간다는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좌절해야 했죠. 영어 구사력이 부족하니 존중을 받기 어려웠고, 들어보지도 못한 과목과 과정들을 접하며 우물 안 개구리라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 제목처럼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도전을 감행해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이때 김 대표는 글로벌 무대를 배경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는 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다음 날 곧바로 법원행정처에 사표를 제출했다. 집안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국가에 법관 해외장기연수 비용을 반환하는 등 녹록치 않은 과정이었지만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귀국 후 사표내고 다시 미국으로

美변호사자격 취득


판사 사직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99년 휴스턴대 법학센터(University of Houston Law Center)에서 지적재산권법 석사를 취득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추천과 격려를 보내준 멘토 교수님, 송상현(80·고시 16회)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장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일체의 지원 없이 홀로 공부하며, 생계를 위해 파트타임(part-time) 아르바이트도 병행했다. 한국계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총무과 직원으로 일했는데, 이때 인연으로 뉴욕주 변호사자격을 취득한 뒤 사내변호사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서 당시 한국변호사로서 흔치 않게 미국 현지 회사의 사내변호사로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다.


2000년 돌아와 ‘세종’에 합류

국제중재 분야 활약

 

2000년 귀국한 그에게 국내 최고 로펌들이 합류를 제안했다. 전관 출신이라 주로 송무업무를 제안받았지만 그는 자문업무에 도전하고 싶었다. 당시 법무법인 세종의 신영무(77·사시 9회)·김두식(64·12기) 변호사가 손을 내밀어주었고, 그 해 세종에 합류했다. 

 

 김 대표는 윤병철(59·16기) 김앤장 변호사, 김갑유(59·17기) 피터앤킴 대표변호사, 임성우(55·18기) 광장 변호사와 더불어 국제중재 분야의 토대를 닦은 1세대로 꼽힌다.

 

15년 뒤 케이엘파너스 설립

부티크로펌으로 출발

 

그는 변호사 초기에 수행한 'WTO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EC(유럽연합위원회, European Commission)가 1990년대 후반 한국 조선사들의 구조조정 작업에 우리 정부가 관여했고 이는 WTO(세계무역기구) 협정에서 금지하고 있는 불법보조금 지급에 해당한다며 시정을 요구해 2002~2005년 진행된 국제분쟁 사건이다.

 

"김두식 변호사님과 함께 한국 최초로 메인카운슬(main-cousel, 주요 변호인단) 역할을 맡았습니다. 국제공법을 처음 접했고, 늘 꿈꾸던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어 감개무량했죠. 사건을 진행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 레만호수 옆 고성에 있는 WTO 법정에서 출석했어요. 벚꽃이 피는 4월이었죠. 하늘은 파랗고, 잔디는 초록색인데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광경을 법정의 창문으로 내다보던 순간이 아직도 머릿속에 스냅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제 인생의 변곡점이었죠."


1심에서 패소한 사건 

2심서 승소 이끌며 성공 확신

 

그는 세종에 합류한 지 10여년 만에 경영위원으로서 로펌 매니지먼트에도 참여했다. 그러면서 로펌 운영에 다양한 방향이 있다는 점을 피부로 느꼈다.

 
"세종은 자랑스럽게 몸담았던 친정입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경영철학을 공유하는 동료들과 부티크 로펌을 이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2015년 케이엘파트너스를 설립하게 되었죠. 이성훈(50·29기), 이은녕(50·33기) 변호사가 뜻을 함께했습니다."

 

판사·사내변호사·로펌변호사·설립자 등 

모두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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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중소형 로펌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가운데, 케이엘파트너스는 여러 건의 국제투자협정 상의 투자자분쟁을 수행하며 국제중재 분야의 대표적인 부티크 펌으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개소 직후에는 대형로펌이 1심을 진행해 패소한 독일 고객 사건을 맡아 2심에서 승소를 이끌어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케이엘파트너스가 국내 법률시장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동안 수행한 사건 중에는 '여의도 파크원(Parc1) 개발 사업' 관련 자문 사건이 규모와 복잡성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대형로펌들도 다수 관여한 대규모 사업인데 고객이 저희 법인을 신뢰해 중요한 의사 결정 및 진행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현재의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냈고, 개발사업 현장을 지날 때마다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는 "고객이 '로펌 수임에 관한 책임' 등을 고려해 로펌의 전문성이 아닌 규모를 보고 주요 사건을 대형로펌 위주로 맡길 때, 혹은 함께 할 도전적인 젊은 변호사를 찾기가 쉽지 않을 때 어려움도 느꼈다"고 고백했다.

 

중소형 로펌으로서

 새로운 모델 제시하는 게 소망


 어려움 속에서도 로펌을 성장시킨 비결은 '전문 영역에서의 신뢰'를 꼽았다.

 
"저희는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래서 맡은 사건에 집중하는 한편, 다른 펌이 수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의뢰인에게 선명하게 전달하고 주선했습니다. 그 덕에 의뢰인들에게 더 강한 신뢰를 쌓을 수 있었죠."

 

시대변화에 선제적 대응

최대만족 선사위해 노력

 

김 대표는 부인인 정교화(49·28기) 변호사와 함께 법조인 부부로도 유명하다. 서울행정법원 판사 등을 지낸 정 변호사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합류해 국제중재 분야에서 활약하다 현재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판사, 사내변호사, 대형로펌 변호사, 부티크 로펌 설립자 등을 거치며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는 김 대표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중소형 로펌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수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소형 로펌들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법인이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새 모델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런 발전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혀 소비자의 후생 증진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시대 변화에 선진적으로 대응하고,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만족을 선사하기 위해 우리 구성원들은 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조력해 함께 걸어가는 것이 제게 주어진 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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