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료분쟁조정법의 제정
근래에 의료분쟁이 증가하고 그 분쟁해결에 소요되는 기간이 장기화됨에 따라 분쟁당사자인 환자와 의료인이 지출하는 직접비용뿐 아니라 분쟁해결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도 급증하고 있고, 의료사고 위험으로 인하여 의료인은 방어진료나 과잉진료를 하고, 응급의료를 회피하며, 사고빈도가 높은 진료과목을 전공하는 것을 기피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사고를 해결하는 구조에 문제가 있고, 수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함에도 의료사고의 합리적 해결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의료분쟁을 신속·공정하고 효율적으로 해결하여 의료사고로 인하여 피해와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 법적·제도적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인 환자 입장에서 법 제정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따라 2011년 4월 7일 의료사고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조정법'이라고만 한다)이 제정되어 2012년 4월 8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2. 의료분쟁조정법의 주요 내용
가. 감정부의 직권조사 및 환자 측 과실입증책임 부담의 사실상 감면
소송에 의하는 경우에는 원고인 환자가 의사의 과실유무 및 인과관계에 관하여 입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입증을 위한 자료조사나 자문을 구하는 등 입증활동을 위하여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그러나 조정이나 중재를 신청하게 되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조정중재원'이라고만 함)에 설치된 의료사고감정부가 의료사고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의사의 과실유무를 밝히게 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용을 환자가 따로 부담하지 않아도 되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정부가 이 모든 것을 수행하게 되기 때문에 간편하다는 특징이 있다.
나. 최대 120일 이내의 조정결정으로 신속·저렴한 분쟁해결
의료분쟁에 관하여 당사자가 조정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하면 조정중재원은 90일 이내에 조정결정을 하도록 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30일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하여 최대 120일 이내에 조정결정을 하도록 하여(법 제33조 제1항, 제2항), 1심에만 평균 2년 6개월의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의료소송 절차에 비하여 매우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무과실보상제도의 도입
의료분쟁조정법은 보건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분만에 따른 의료사고에 대하여 보상하도록 하여(법 제46조) 분만사고의 경우에는 무과실보상제도를 두고 있다.
라. 손해배상금의 대불제도
의료분쟁조정법은 조정결정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인의 경제적 사정이 충분치 아니하여 손해배상금을 제대로 지급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의료분쟁조정의 의미를 살릴 수 없으므로, 그와 같은 경우에 환자 측에서 미지급금에 대하여 조정중재원에 대불을 청구하면 심사를 거쳐 조정중재원이 대불해 주고, 후에 그 대불금을 구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법 제47조).
마. 피해자 의사 존중한 형사상 특례 인정
의료분쟁조정법은 의료사고로 인하여 환자의 신체에 상해가 발생한 경우에 의료인과 환자 사이에 조정이 성립한 경우, 조정절차 중 합의로 조정조서가 작성된 경우 또는 화해중재판정서가 작성된 경우에는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상죄(형법 제268조)에 한하여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되(법 제51조), 업무상 과실치상죄 중 중상해(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하거나 장애 또는 불치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된 경우)의 경우는 형사특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법 제51조 제1항 단서).
바. 수탁감정실시
중재원은 중재원 본연의 업무인 조정감정 이외에도 다른 기관에서 의뢰한 의료사고에 대한 감정 업무인 수탁감정 업무도 수행한다(법 제25조 제3항). 수탁감정의 경우에는 해당 전문 세부분야별로 다수의 의료인 자문위원에게 자문을 촉탁한 다음(복잡한 사건의 경우에는 복수의 진료과목별 의료인 위원들의 의견을 수렴) 그 감정결과를 수렴하여 수탁감정서 초안을 작성한 후, 의료인인 상임위원 9인이 수탁감정회의를 하여 수탁감정서를 확정하고 조정중재원장 명의로 수탁감정서를 의뢰기관에 발송한다.
사. 간이조정 및 자동개시제도의 도입
의료분쟁조정법은 2016년 5월 29일 개정에서 (1) 법 제33조의2 제1항에서 ① 사건의 사실관계 및 과실유무 등에 대하여 신청인과 피신청인 간에 큰 이견이 없는 경우 ② 과실의 유무가 명백하거나 사건의 사실관계 및 쟁점이 간단한 경우 ③ 의료분쟁에 대한 조정신청 금액이 500만 원 이하인 경우를 간이조정 대상 사건으로 규정하여 '조정부'의 장이 단독으로 의료사고의 감정을 생략하거나 1명의 감정위원이 감정하도록 하는 간이조정제도를 도입하였고 (2) 조정신청의 대상인 의료사고가 사망 또는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등에 해당하는 사안에 대하여는 의료분쟁조정의 활성화 및 실효성 제고를 위하여 분쟁조정 신청 시 피신청인의 분쟁조정 참여를 의무화하여 피신청인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조정절차를 개시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3. 의료분쟁조정법 중 개선되어야 할 부분
가. 수탁감정 감정부 구성 및 절차에 대한 명확한 법률 규정 필요
법률 규정에서는 의료인 2명, 법조인 2명, 소비자단체 1명으로 감정부를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수탁감정의 경우에 법조인이나 소비자단체의 구성원이 전혀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의료전문가인 의료인 위원들만이 전문적인 의견을 개진하여 수탁감정서를 작성하고 있어서 법률 위반이라는 지적도 있고, 수탁감정 업무처리에 대한 아무런 근거 규정이 없다는 문제점도 있다. 따라서 수탁감정을 위한 감정부 구성 및 감정절차에 대하여 법률, 시행령 등에 구체적으로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나. 수탁감정의 비실명화 개선 필요
실무상 수탁감정의 회신은 비실명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비실명화 된 수탁감정 회신은 감정 내용에 자신감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감정내용의 문제점에 대한 토론이나 반박을 회피하는 인상까지 줘서 그 감정서 내용 전체의 신뢰도를 없애 버리는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 그 결과 수탁감정이 대학병원의 감정보다 훨씬 많은 전문 인력이 투입되어 객관성·신빙성·전문성이 훨씬 우월하다고 볼 소지가 큼에도 불구하고, 의료과실과 인과관계를 판단하기 위한 결정적인 자료로는 대학병원의 진료기록 감정 촉탁 결과를 계속 이용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에는 수탁감정을 거친 다음 다시 진료기록 감정촉탁 절차를 거치는 바람에 소송이 오히려 더 장기화되고 있다.
특히나 독일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조정을 위한 감정의 경우 익명으로 이루어졌지만, 익명 감정에 의한 조정절차는 매우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에 따라 감정인의 신원에 대한 공개가 점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수탁감정 회신을 실명화할 필요성이 있다.
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조정과의 관계 정리 필요성
현재로는 의료분쟁에 관한 조정을 한국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와 조정중재원 2곳에서 동시에 실시하고 있는데, 조정중재원의 경우에 감정부에서 직권으로 사실관계를 조사할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 점, 소비자보호원의 경우에 의료과실이나 인과관계 등을 밝힐 수 있는 제대로 된 전문 인력이 많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여 보면 최소한 2~3년 내에 법률을 정비하여 의료분쟁에 관한 조정은 조정중재원이 전담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나아가 의료분쟁조정법 제27조 제3항 제2호에서 이미 해당 분쟁조정사항에 대하여 소비자기본법 제60조에 따른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이 신청된 경우를 조정신청 각하 사유로 규정한 부분은 삭제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라. 형사처벌 특례 대상의 조정 필요
(1) 중상해의 경우에도 형사처벌 특례를 인정할 필요성
의료분쟁조정법의 형사소추 특권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형사소추 특권을 그 근간으로 하여 도입된 제도인데,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서는 중상해의 경우에도 합의가 성립된 경우에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의료분쟁조정중재법에서는 합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상해의 경우에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2) 중재원을 통하지 않은 합의 시에도 형사처벌 특례를 인정할 필요성 있음
의료분쟁조정중재법상 형사상 특례는 매우 특이하게 의료분쟁조정절차 제도 안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에만 형사처벌 특례를 인정하고, 조정중재원을 이용하지 않고 당사자 간에 자발적으로 합의하거나 법원 조정을 통해서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에는 형사처벌 특례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와 같이 조정중재원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와 그 밖의 경우를 달리 다루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도 반할 가능성이 크고, 매우 비합리적이므로 이 부분은 개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영호 지원장 (수원지법 평택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