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이 규정하는 경제질서에 관하여, "우리 헌법은 전문 및 제119조 이하의 경제에 관한 장에서(중략) 우리 헌법의 경제질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복지·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헌재 2001. 6. 28. 선고 2001헌마132)", "헌법 제119조 제2항에 규정된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의 이념은 경제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하기 위하여 추구할 수 있는 국가목표로서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국가행위를 정당화하는 헌법규범(헌재 2003. 11. 27. 선고 2001헌바35 ; 2004. 10. 28. 선고 99헌바91)"이라고 판시하면서 우리 헌법상의 경제질서가 소위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이며 '자유'시장경제질서가 아닌 '사회적'시장경제질서를 규정하는 헌법'규범'로서 '경제민주화' 조항을 들고 있다.
2. 헌법상 경제조항의 외국 입법례
OECD 주요 국가들 헌법은 재산권보장(미국·프랑스·독일·스위스·일본), 직업의 자유(프랑스·스위스·일본) 등 자유권적 기본권만 규정할 뿐 우리 헌법처럼 세부적인 경제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참고로 중국헌법은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계급이 영도하고 노농연맹을 기반으로 하는 인민민주독재의 사회주의국가이고(1조), 국가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시행하며(15조), 기업의 사회주의공유제(6조), 토지의 국가소유(10조) 등을 규정하고 있다.
3. 경제헌법상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관념
필자는 2006년 9월 11일 법률신문 연구논단의 기고문 "경제헌법상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관념에 대하여"에서 우리 법학계와 헌법재판소결정에서 논의되어 온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관념에는 미제스(L.v.Mises), 하이예크(F.Hayek), 밀턴 프리드먼(M.Friedman)의 자유주의적 경제이론에서부터 케인즈(J.M.Keynes)적 경제이론이 혼재되어 있다는 사실과 독일에서 오이켄(W.Eucken)의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Ordnung)정책(시장중심주의, 정부개입의 보충성)'이 '계몽된 사회적 시장경제, 과정정책(시장개입주의, 정부개입의 편의성)'으로 변질됨으로써 시장경제에 대한 정치원리의 개입(이것이 한국헌법에서는 소위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나타난다)을 낳았고, 그 결과 형성된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 한번 경로가 정해지면 그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이미 형성된 기득권 때문에 경로를 변경하기 어려워지는 현상)이 동태적 성장잠재력을 훼손시켰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4. 오이켄의 질서자유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구성하는 제원칙들
또한 필자는 2007년 1월 8일 법률신문 연구논단의 기고문 "오이켄의 질서자유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의 본질"에서 오이켄(W.Eucken)이 제시한 '경쟁질서의 제원칙들'로서 구성적 원칙들(완전경쟁가격체계의 원칙, 개방적 시장의 원칙, 자기책임의 원칙, 경제정책일관성의 원칙 등)과 규제적 원칙들(시장의 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독점규제의 원칙, 외부효과 수정의 원칙, 공정한 소득재분배의 원칙 등)을 소개하였다.
구성적 원칙들 중 ① 완전경쟁 가격체계의 원칙이란 사회적 시장경제내에서 '경쟁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기능을 훼손하지 말아야 하고 정부개입이 시장기능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보충성의 원칙)을 말하며 이러한 경쟁질서를 형성하는 것이 경제헌법 차원에서의 기본원칙이라는 것이다. ② 개방적 시장의 원칙이란 국내외 경쟁자들에 대한 시장의 진입장벽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의미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법앞에서의 기회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③ 자기책임의 원칙이란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개인의 사회적 책임이 준수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의미하며 특히 자유방임적 시장경제가 아닌 사회적 시장경제에서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서의 신뢰(trust)가 자본주의체제의 유지 발전에 근본적인 동력으로 작동한다(프랜시스 후쿠야마(F.Fukuyama)). ④ 경제정책 일관성의 원칙이란 경제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어야만 시장에서의 신뢰, 예측가능성에 기초한 경제적 법적 기반이 조성될 수 있고 정부의 편의적 시장개입과 정책의 비일관성이 시장에서 신뢰를 상실하는 경우 어떠한 경제정책도 의도한 효과를 달성할 수 없다는 '정책무력성 명제'를 의미한다.
필자는 14년 전 위의 기고문에서 노무현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편의적인 부동산규제정책)과 시장에 대한 무지와 오만, 나아가 정책의 비일관성에 따른 시장의 신뢰상실은 필연코 정부의 실패와 부동산시장의 폭등으로 귀결된다고 지적한바 있는데, 14년이 지난 현재 문재인정부 역시 동일한 과오를 반복하고 있음을 보면서 정부의 반시장적이고 정치적인 시장개입에 대해서는 오이켄의 경쟁질서의 제원칙들(정부개입의 보충성원칙)에 비추어 위헌이라는 규범적 평가가 따라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5. 미제스, 하이에크, 밀턴프리드먼의 자유주의 경제철학
이러한 오이켄의 '질서'자유주의는 미제스, 하이에크, 밀턴프리드먼의 자유주의 경제철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오스트리아학파의 거두 미제스(L.v.Mises)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경제전반에 걸쳐서 연쇄적 파급효과를 가져와 결국 사회주의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고 미제스의 탁월한 제자인 하이예크(F.Hayek)는 질서(오이켄의 '질서')를 외부의 힘으로 창조된 인공적 질서(계획경제)와 스스로 형성된 자생적 질서(시장경제)로 구분하면서 "자생적 질서를 인공적 질서로 전환시키려는 모든 정치적 기도(정부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시장간섭)는 결국 노예의 길로 가는 이데올로기이며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이 세상은 결국 지옥으로 간다"고 통찰했다(노예로의 길, The Road to Serfdom).
그러나 하이에크가 자유'방임'주의의 폐해까지 옹호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유'방임'원리에 대한 아둔한 고집만큼 자유주의의 명분에 해를 입힌 것은 없다"고 역설하면서 정부는 시장실패를 치유해야 함을, 마르크스(K.Marx)가 외친 자본주의에서의 인간소외(Entfremdung)에 천착해야 함을 강조했는데 이는 오이켄의 규제적 원칙들(시장의 실패에 대한 보충적 정부개입)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아담 스미스도 인간의 이기심에 기초한 '보이지 않는 손(국부론)'만 강조한 것이 아니다. 그는 '도덕감정론'에서 타인의 슬픔을 자기 것처럼 느끼는 공감(sympathy)과 자신을 객관화하여 자신을 판단하는 공정한 관객(the impartial spectator, 양심)이 있으며 이러한 공감과 양심이 사회를 이루는 근본원리임을 역설했다.
6. '경제민주화'의 남용, 시장주의적 철학의 빈곤과 정부의 실패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에서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세계를 해석해 오기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라고 설파했고 모든 진보적 정부들과 현재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들은 마르크스의 변혁적 정치사상에서 연유한 것이다.
하이에크도 이렇게 말했다. "자유주의자가 사회주의자들의 성공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이상주의자가 될 수 있는 용기다. 그것을 통해 지식인과 대중의 지지를 얻고 비현실적이라고 여겨졌던 일을 현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Intellectuals and Socialism, 지식인과 사회주의).
문재인정부의 각종 경제정책과 사회정책들(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비정규직의 인위적인 정규직화, 23번의 부동산규제 등)이 정치적인 차원에서 의도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차원에서 정부의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1846년 무정부주의자 프루동이 '빈곤의 철학(philosophie de la misere)'을 발표하자 1847년 마르크스는 과학적 자본주의분석에 입각하여 '철학의 빈곤(la misere de la philosophie)'을 통해 프루동을 비판한 바 있다.
21세기 한국에서 문재인정부의 정책실패와 정부실패는 바로 '시장주의적 철학의 빈곤'에 근본원인이 있으며 경제의 정치화를 의미하는 경제민주화의 남용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경제적 선택에서 "공짜 점심은 없는 것(밀턴 프리드먼)"이며 잘못된 선택의 대가는 치명적이다.
이병철 변호사 (법무법인 세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