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25일 국내 최대 규모 지방변호사회인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해 재임 4개월째를 넘어가고 있는 김정욱(42·변호사시험 2회·사진) 회장의 말이다. 법조 역사상 첫 로스쿨·변호사시험 출신 변호사단체장으로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는 취임 후 100여일의 기간 동안 △법률플랫폼 엄정 대응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와 집단소송제 도입 △정부 법무담당관제 추진 △서울변회 단체채팅방 및 지식공유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공약 이행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주고 있다. "안으로는 회원 변호사들을 섬기고, 밖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서울변회를 만들겠다"는 선거 때의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김 회장을 지난달 17일 서초동 변호사회관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대학진학 후 4~5개 동아리 활동
다양한 사람과 교류
"어렸을 때부터 전형적인 '모범생'으로 불리지는 않았어요. 잘 놀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그룹 안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편이었습니다. 과천고-성균관대 동문회 회원이 300여명이던 시절 회장을 맡기도 했죠.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그 안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성장한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 시스템경영공학(산업공학)을 전공한 김 회장은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곧바로 기업 연구소에 취업했다.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액체렌즈 등 기술개발에 참여했고 30개가량 출원신청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발암물질에 상당기간 노출돼 20대 후반의 나이에 모발이 하얗게 샜고, 건강에도 이상 징후가 여럿 생겼다.
산업공학 석사 취득 후
기업연구소 생활로 건강 악화
"세계 최초인 기술을 개발하고, 출원하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소에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는 사이 발암물질에 장기간 노출돼 있었고, 건강이 악화되다보니 '이러다 10년 안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그러던 중 뜻 깊은 일을 하자는 생각이 깊어졌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변호사로서의 꿈을 가지게 됐습니다."
김 회장은 2013년 변호사로 개업한 이후 대한변호사협회의 신규변호사 진출현황조사TF 위원으로 활동했고, 이를 계기로 변협 사무차장으로 일하게 됐다. 이때 김 회장은 사법연수원과 로스쿨 출신으로 나뉜 법조계의 문제를 풀 해법 마련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뜻 깊은 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변호사의 길 선택
"당시 (로스쿨과 사법연수원을 통해) 한해 총 2500명 정도가 변호사로 배출됐는데, (로스쿨과 관련해) 소위 '돈스쿨'이나 '음서제' 등의 사실과 다른 루머가 여과없이 언론을 통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법조단체가 이러한 악의적인 주장에 앞장서기도 했죠. 변호사시장의 입지가 약화되고 있을 때에는 하나로 뭉쳐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둘로 갈라져 입지 약화가 가속화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로스쿨 제도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로스쿨을 직접 다녀본 입장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은 바로 잡고,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김 회장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을 설득해 한국법조인협회 창립에 나섰다. 로스쿨 출신 변협 대의원들을 설득해 2015년 3월 '법조화합위원회'를 구성했고, 당시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용기를 내 초대 회장을 맡아 조직을 이끌었다.
"4년 6개월 동안 무급으로 한법협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일주일의 반은 개업변호사로서의 업무를, 나머지는 한법협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한동안 생계가 힘들 정도였는데 두 가지 모두 점점 안정을 찾더라고요. 특히 한법협은 청년변호사단체였기 때문에 다른 법조단체보다도 빠른 내부 피드백이 가능했고, 활동력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문제라고 느끼는 사안이 있으면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고, 유의미한 결과들로 쌓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한법협은 2015년 9월 창립 이후 △법조시장 선진화 및 보편적 법률서비스 향상 △법조시장내 차별 제거 및 법조화합 도모 △바람직한 법조인력 양성 제도 정착 등을 핵심 정책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대국민 법률서비스 향상과 공익활동 활성화 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김 회장은 사법시험 존치와 관련한 주장에 맞서 바람직한 법조인력 양성 제도 정착을 주도해왔다는 점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2013년 ‘신규 변호사 진출현황 조사’
TF 위원 활동
"사법시험 존치 주장과 싸우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청년변호사가 로스쿨 제도의 정착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모두 만류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근거 없는 이야기는 바로 잡고, 적어도 제가 아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죠. 가장 먼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에 찾아가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알렸고, 로스쿨 제도의 현황과 중요성 등을 나타낼 수 있는 자료들을 요청했습니다. 그 자료를 토대로 직접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을 찾아가 설득했고, 공청회에 패널로 참석해 수없이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새롭게 알려지면서 법사위에서는 사법시험 존폐 문제를 결론짓지 못했고, 법사위 산하에 자문위원회를 발족해 그곳에서의 결과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당시 변호사 위원은 4명이 배정됐는데, 변협에서 2명, 한법협에서 2명이 배정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반년간 자문위 회의에서 그동안 왜곡돼 알려진 루머와 자료를 두고 논쟁해 결국 법사위에서 사법시험을 폐지하게 됐습니다."
연수원·로스쿨 출신으로 나뉜
법조계 해법마련 절감
그는 초대 회장부터 오랜 기간 활동해온 한법협에 대해 '법조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단체'라고 평가했다. 단순 청년변호사단체에서 시작해 법률플랫폼 이슈와 무상구조범위에 관한 문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촉구 등의 논의들이 한법협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법협은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두루 담아 직접적으로 표출했고, 그 뜻을 법조계 전반에 반영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선배들이 후배를 이끌어주고 정보를 교류하는 법조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매년 변호사시험 때마다 시험장에 배포할 물품을 구입하고, 밤늦게 회원들이 모여 포장한 뒤 새벽 시험장에 나가 응원물품을 배포했습니다. 자신이 수험생일 때 응원물품을 받아 힘을 얻었다며 자발적으로 후원해오는 회원들이 늘어가기도 했었죠. 이 밖에도 다양한 법조계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어, 힘들 때도 있었지만 매 순간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로스쿨 출신 설득 한국법조인협회 창립
초대회장에
그는 제49대 대한변협 부협회장과 대법원 사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제95대 서울변회 부회장, 직역수호변호사단 상임대표 등 다양한 법조단체 회무 경험을 거쳐 서울변회 회장 선거에 도전했다. 올 1월 치뤄진 제96대 회장 선거에서 그는 총 1만1929표 가운데 4343표(36.4%)를 얻어 당선을 확정짓고 새 회장으로 취임했다. 2009년 문을 연 로스쿨이 2012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10년 만에 전국 최대 규모 변호사회 수장을 내 화제가 됐다. 회장 당선에도 로스쿨 출신 등 청년변호사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큰 도움이 됐다. 또 직역수호 기치를 내걸고 적극적인 대응을 약속한 점이 주효하기도 했다.
로스쿨 졸업생 배출 10년만에
서울변회장 당선 ‘화제’
김 회장은 "당선 직후 수많은 (법조기관 등에 대한) 예방과 정해진 일정에 묻혀 중점 공약들을 놓쳐선 안 된다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약속한 공약 중 직역수호와 직역확대, 그리고 회원 복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생각대로 취임 직후 직역수호센터를 만들어 법률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을 상대로 변호사법 위반 가능성을 경고하는 등 직역수호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서울변회는 지난달 전 회원을 대상으로 법률플랫폼 가입자에 대한 탈퇴 조치과 관련해 설문조사를 진행해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또 변협 집행부 상임이사회에서 변호사 소개 온라인 플랫폼 등 비(非)변호사가 변호사 소개 및 판결 예측 서비스 등과 관련된 광고를 할 때 회원(변호사)들이 여기에 참여·협조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변호사업무광고규정 개정안'이 통과된 데 따라, 서울변회의 '변호사업무광고기준에관한규정'을 전부 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혁신이 촉진되기 위해선 공정하고 경쟁적인 환경이 조성돼야 합니다. 과거와는 달리 법률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이 계속 추가·변경되고 있으며, 각종 비용을 인상하면서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커지고 있습니다. 저는 3~4년 전부터 법률플랫폼 이슈가 사회적으로 불거질 거라 생각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특히 법조계는 공공성·공익성·전문성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특정 자본에 종속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거대 자본에 지분을 넘기게 된다면 그 플랫폼과 변호사업계는 물론, 더 넓게는 법조계 전체가 자본의 논리대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플랫폼의 확대를 더욱 엄격하게 해석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률플랫폼 잦은 모델변경
변호사법 위반 소지 커져
김 회장은 임기 동안 회원복지 증진과 함께 국민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나갈 예정이다. 법무부가 추진 중인 형사공공변호인제도를 저지하고, 법률구조공단과 정부법무공단 등 공단에 경유의무 이행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확대와 집단소송제의 도입에도 노력할 계획이다.
"모든 구조사업은 한정된 자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법무부안대로 비선별적 지원을 전제로 형사공공변호인 제도가 시행될 경우, 국민의 세금이 과도하게 낭비되고 변호사들은 정당한 보수를 지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국선변호업무를 수행하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잘못된 정책이 추진될 때는 국민의 입장에서 목소리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이 같은 제도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할 예정입니다. 여기에다 각 지방자치단체에 변호사들의 처우를 확대해 국민에게 높은 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변호사 배상책임보험 지원과 로이어스 카드 제휴 업체 확대 등 회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서도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겠습니다."
회원의 복지 증진과 함께
국민에 도움 주는 정책 추진
김 회장은 "다른 회원들보다 똑똑하고 유능해서 대표 자리에 오를 수 있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거쳐온 대표 자리에서도 초심으로 간직해온 것처럼 회원들의 수많은 요구사항을 잘 조율하고, 용기가 필요한 때에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더의 자질로는 다양한 구성원의 중간에서 '허브' 역할을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리더를 맡을 때마다 그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회원을 떠받들고 모시는 집행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