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6일 대륙의 찬 공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포근하고, 북경이 공기 안 좋다는 말은 거짓말같이 눈부시게 파란 겨울날, 어학연수를 위해 북경의 수도공항에 내리면서 나의 중국 15년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국 변호사들의 중국 도전기는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진 직후부터 시작된다. 중국의 대학으로 유학을 간 분들이 등장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한국의 로펌들이 상해, 북경에 앞다투어 대표처를 설립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더해 중국 로펌에 코리아 데스크가 생기고 한국 변호사 또는 미국 변호사 자격을 가진 한국인들이 중국법 서비스를 제공한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에는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 시행 이후에 외자 유치를 위해 제정한 이른바 3자기업법을 중심으로 한국 기업들이 대거 중국에 진출한다. 중국은 2007년에는 기업소득세법과 파산법을, 2008년에는 노동계약법과 반독점법을 시행한다. 이러한 법률들의 제정과 시행은 중국이 계획경제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질서로 전환되는 과정을 대변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 변호사들의 중국법 자문 수요도 늘어나게 된다.
2019년 말부터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한 기업경영 악화에 따른 노동자 해고에 관한 노동법상의 문제, 코로나19로 인한 봉쇄가 풀리면서 업무에 복귀한 노동자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지에 관한 안전생산법 상의 이슈, 코로나19가 불가항력 사유에 해당되는지에 관한 계약법상의 논의 등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법률적 이슈들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이와 동시에 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 시대가 전개되고 전자상거래 플랫폼, 인플루언서, 이른바 중국의 왕홍들의 라이브 방송을 통한 중국 내수 시장의 공략이 한국 기업의 주요 전략이 되면서 전자상거래법,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각종 법규, 네트워크 안전법, 플랫폼 경제와 관련한 반독점법 등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내년이면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는다. 그럼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국법은 어떤 분야가 있을까.
첫째, ESG의 중국적 적용이다. 환경, 사회적 책임, 기업의 건전한 지배구조를 일컫는 ESG는 중국에서는 아직은 논의가 활발하지는 않다. 서방의 잣대를 중국이 수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나 그렇다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고, 중국은 중국적 특색, 중국의 국가 상황, 즉 국정(國情)에 부합하는 나름의 ESG 체계를 구축해 갈 가능성이 있다. ESG의 중국적인 적용과 해석은 공산당이 영도하는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 법률체계가 서방의 법률체계와 교신하는 접점이 될 것이고 그러한 접점에 서 있는 법률들에 연구와 자문의 제공이 필요하다.
우선 환경은 2021년부터 시행 중인 중국 민법전 제9조는 "민사주체가 민사활동에 종사할 때에는 자원의 절약, 생태환경의 보호에 유리하게 해야 한다"라고 규정하여 법률행위의 녹색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2020년 9월 시진핑 주석은 제75차 유엔 총회 연설에서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최초로 제시하였고, 2021년 5월 14일 중국 생태환경부는 탄소배출권 거래, 등기관리와 결산에 관한 일련의 규칙들을 반포하였다. 기업에 대한 환경 관련 규제는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이다.
다음은 사회적 책임 영역이다. 2021년 2월 25일 중국 북경에서 열린 전국 빈곤탈출 표창대회에서 시 주석은 중국 전국의 빈곤탈출이 전면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선언한다. 빈곤탈출에 대한 기여는 최근 몇 년 동안 중국기업들의 CSR수준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다. 빈곤탈출은 민생과 맞닿아 있고 내수시장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 중국 내수 시장의 공략은 결국 생산과 소비 측면에서 중국 국민과의 접촉면을 확대해 간다는 말인데, 관련하여 안전생산법, 식품안전법, 소비자보호법, 광고법 등 민생법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인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은 기업 내부의 공산당 조직의 사회공헌활동을 통한 공산당의 사회적 책임(Communist party Social Responsibility)을 통해 구현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절박한 필요에 부합하고, 공산당의 역할을 활용하는 사회적 책임의 설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중국 공산당의 기업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참여에 대한 대응이다. 중국 회사법 제19조는 회사에 중국 공산당의 정관 규정에 따라 공산당 조직을 설립하고 당의 활동을 전개하며, 이때 회사는 당조직의 활동에 대해 필요한 여건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21년 7월 1일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이었다. 현재 중국은 코로나19 극복의 들뜬 분위기를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라는 역사적 축제를 통해 최고조로 표출시키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생래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공산당' 문화와 중국에서의 기업활동을 어떻게 슬기롭게 조화시킬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법규를 연구하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인공지능(AI)등 4차 산업 관련 법률의 이해다. 2017년 7월 5일 중국의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 바이두의 AI 개발자 대회가 있는 날, 바이두의 창립자이자 CEO인 이언홍(李彦宏) 회장이 어느 차량의 조수석에 앉아 북경의 5환 거리를 활보한다. 당시 이를 규제할 아무런 법령이 없는 상황에서 이 회장은 중국의 자율주행차 시장의 서막을 알린다. 이러한 무모한 용기는 중국이 자율주행자동차의 기술 수준과는 무관하게 이를 가장 먼저 실용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을 낳게 했다. 2021년 5월 25일 북경시 고급 자율주행 시험지구에서는 무인 배송차량 분야의 선두 기업에 대해 무인 배송차량 코드를 발급, 최초로 무인 배송차량에 대한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했다. "사회의 요구가 있으면 정부는 응답한다(社會有需求,政府有回應)", "선발전, 후규제(先發展,后治理)"라는 중국적 특색의 규제의 샌드박스 구호들이 오늘과 같이 빠른 시간 안에 중국의 유니콘들을 키워 냈다. 이제는 이러한 영역의 법률에도 한국 변호사들이 관심을 가지고 우리 것을 중국에 입히고 중국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셋째, 소송을 통한 분쟁해결 시장의 확대 가능성이다. 기존에 양국 간의 상사 분쟁에 관한 해결은 중재에 의존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양국 간에 판결에 대한 승인·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의 지방법원의 결정이기는 하나 2019년 3월 중국 산동성 청도 법원은 한국의 수원지방법원의 판결문을 승인·집행하였다. 그 후 2019년 7월 대구고등법원은 중국 북경시 조양구 법원의 판결을 승인·집행한 데 이어, 2020년 4월 상해시 제1중급법원은 서울 남부지방법원의 판결을 승인·집행하였는데 특히 상해시 제1중급법원은 한국과 중국 사이에 호혜관계가 존재한다고 판단하였다. 아울러 2021년 3월에 한국 대법원은 중국기업이 중국에 소재한 한국기업이 100% 출자한 자회사와의 물품공급계약상의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자 그 모회사인 한국기업을 상대로 한국에서 제기한 소송에서 해당 사안과 한국 간의 실질적인 관련성을 인정하여 하급심 판결을 뒤집고 한국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을 인정하였다. 이렇듯 양국 법원의 양국 간의 분쟁해결에 대한 적극적인 방향의 전환은 향후 소송을 통한 분쟁 해결의 가능성을 높여 주고 있다. 분쟁해결 영역에 대해 한중 양국 변호사들의 활동이 기대된다.
넷째, 중국을 매개로 한 북한 비즈니스와 이를 위한 북한법의 연구다. 남북 간의 거래는 직접적인 통로 외에도 중국을 통한 간접적인 투자와 교역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2019년 북한 변호사들도 중국에 와서 자신들의 외상투자법제와 경제특구를 설명하는 세미나를 하기도 했다. 한국 변호사들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전초기지로 중국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중국과 북한은 각각의 나라에서 한 판결을 서로 승인하고 집행하기로 조약을 체결한 바 있는데 북한 기업과 거래를 하려는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조약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북한에 대한 투자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여지도 있어 보인다. 북한법 연구에 특화된 중국대학과의 교류 확대를 통해 북한법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도 가능하다.
한중 관계의 굴곡과 원근, 중국 경제의 눈부신 성장에 따라 중국업무에 종사하는 한국 변호사들도 변화와 도전의 파도를 헤쳐왔다. 15년을 중국에 살다가 이제는 한국에서 중국을 바라보니 중국의 무겁고 깊은 변화를 우리가 보고 듣고 싶은 대로 해석하여 중국의 현실과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 간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져 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상을 본다. 반중정서, 혐중증이라는 말도 들린다. 학교 다닐 때 시험 전에 매번 선생님한테 듣던 말이 있다. 문제를 잘 봐야 한다. 그래야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중국이라는 문제를 이제 더 꼼꼼하고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우리가 듣고 싶은 중국의 이야기만 들을 것이 아니고 중국이 말하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허욱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