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해외연수 선발자가 아니었던 판사를 곧장 올해 출국하는 해외연수 대상자로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통상 법관은 그 해에 해외연수 대상으로 선발되면 다음해에 유학을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법원은 차세대 전자소송시스템 구축 등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그렇게 결정했다고 해명했지만, 일선 법관들 사이에서는 "이례적인 특혜"라며 "납득이 안 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달 해외연수를 위한 법관 출국대상자 명단에 A판사가 갑자기 등장했다.
올해 출국대상자는 2020년 해외연수 대상 법관으로 선발된 사람과 2019년 선발된 사람 중 코로나19로 지난해 출국하지 못했던 사람들인데, A판사는 그 해 연수 선발자 명단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등장한 A판사의 이름에 판사들 사이에서는 '대체 어떻게 선발된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특혜성 선발', '해외연수 선발 과정에서의 공정성이 무너진 것'이라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통상 법관은 해외연수 신청 후선발되면 다음해 연수
사적으로 입학허가 받은 판사에게 연수결정은 이례적
법원행정처 "차세대 전자소송시스템 구축 위해 결정"
선발과정 해명에도 "특혜성" "공정성 훼손" 질책 쏟아져
논란이 일자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9일 오전 11시 50분께 안희길 인사총괄심의관 명의의 글을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올려 A판사의 국외연수 허용이 차세대 전자소송시스템 구축 등을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법원행정처 측은 글에서 "연구과정(종전 방문과정)으로 선발된 법관 중 1명이 올해 출국하게 되었다"며 "해당 법관은 컴퓨터 과학과 통계학의 연계분야로서 판결문을 포함한 데이터 과학을 연구하는 (미국) 하버드대학교 응용계산과학원에 개인적으로 입학허가신청을 해 어드미션(입학 허가, admission)을 받은 후 교육파견 가능성을 문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연수선발위원회는 논의를 거친 끝에 차세대 전자소송시스템 구축사업에서 추진 중인 판결문 등 각종 소송자료에 대한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이 완료된 후 재판사무시스템 내 지능형 서비스 확대를 위한 체계적인 데이터 분석의 활용가능성, 해당 부분의 연구 성과, 전문성 등을 고려하여 올해 일반 해외연수를 지원하는 해당 법관이 통상적인 절차와 기준에 따라 심사에서 선발되는 것을 조건으로 올해에 위 기관으로 교육파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이후 위원회에서 진행된 일반 해외연수 법관 선발 심사에서 해당 법관은 연구과정으로 선발되었고 연구과정 선발에 따라 지원되는 학비를 넘어서는 학비는 해당 법관이 개인적으로 부담하게 된다"고 했다.
또 "해당 법관의 연구가 단기간 내에 혁신적인 시스템 구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이후의 시스템 발전을 위해 유용할 것으로 기대되는 점을 해외연수선발위원회에서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안 심의관은 글에서 "이러한 사정이 미리 공지되지 않아 많은 법관들이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인사를 포함한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형평의 중요성, 해외연수가 가지는 의미를 고려해 가급적 예외적인 사례가 생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과 이번 사례로 제기된 우려를 참조해 향후 해외연수선발위원회가 운영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 부장판사는 "연수대상 법관으로 뽑히지도 않았는데 먼저 (외국)대학에 연수 승인을 받고 이걸 허가해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하는 사례는 물론 이런 방식으로 국외연수를 허락해주는 사례도 보지 못했다"면서 "대법원이 왜 전례도 없는 이런 선발을 해서 논란을 일으키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수대상 법관으로 선발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유학가고 싶은 대학에서 먼저 어드미션 받은 다음 국외연수 보내달라고 요구하면 다 보내줄 것이냐"고 했다.
또 다른 판사는 "차세대 전자소송시스템 구축 사업의 성패가 해당 판사의 국외연수 여부에 달려있는 것도 아닐텐데, 국외연수 대상자 선발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이렇게 일사천리로 특혜성 편의를 봐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