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콘텐츠를 공급·향유하고 나아가 문화예술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과 지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를 잘 설명하는 것이 법률가로서 해야 할 일이고,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변호사는 서울예술고와 서울대 음대, 독일 베를린 국립 예술대를 졸업한 예술인이지만, 독일 유학 시절 진로 고민 끝에 연주가의 길을 계속 가는 대신 로스쿨 진학을 결심했다.
"유럽과 미국의 세계적인 음대에서 공부를 마친 훌륭한 음악가들은 넘쳐났지만, 한국에서 티켓을 팔고 공연을 하기는 쉽지 않다는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그러다 여러 분야의 전공과 경험을 지닌 법률가를 양성하는 로스쿨 제도를 알게 돼 문화예술 분야 전문 변호사의 꿈을 꾸게 됐습니다."
그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소속 변호사를 거쳐 현재 휘명에서 일하고 있다. 음악 창작가의 저작권 침해 사건 소송 대리, 악보 저작권과 음원 유통 계약 관련 자문,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자문 등 다양한 사건을 담당했다.
獨 유학시절 진로 고민 끝
연주가 접고 로스쿨로
최근 모 시립무용단 비상임 안무가였던 A씨를 대리해 언론사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청구소송에서 승소한 사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이 사건에서는 저작권법 제9조 '업무상 저작물' 규정이 문제가 됐다. A씨는 시립무용단으로부터 근로계약서 작성은 물론 4대보험 가입도 보장받지 못하고 안무 창작과 공연 기획, 대본 작성 업무를 도맡아 수행했다.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프리랜서였던 A씨의 안무는 법적으로 사용자 측이 원칙적으로 저작권을 갖는 '업무상 저작물'이라고 볼 수 없는데도 언론사 등이 이를 문제 삼았던 것이다.
"안무의 저작권은 A씨에게 있기 때문에, A씨가 이 안무로 외부 무용제에 출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의원이 '저작권 침해'라며 문제를 삼고, 기자가 이를 '작품 도용'으로 보도한 것입니다. 지자체와 시의원, 언론사 모두 저작권법상 '업무상 저작물'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계약 때 저작권에 관해 협의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습니다. 이런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예술분야 전반에 계약서 작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돼야 합니다. 더불어 예비 예술인 등을 대상으로 한 저작권 교육도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김 변호사는 연주자와 연기자 등 무대예술가들이 자신의 실연(實演)에 대해 갖는 '저작인접권'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저작인접권은 실연자가 본인의 실연을 녹음, 녹화, 사진 촬영하고 복제·전송할 권리를 가리킨다.
"과거 공연은 주로 일회성이었기 때문에 연주자, 연기자 등 실연자들이 실연에 대한 저작인접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공연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공연이 영상콘텐츠로 제작되며 복제, 배포, 전송과 관련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술인들의 저작권 침해 등
소송대리·자문도
김 변호사는 2018년부터는 한국저작권위원회 음악저작물 감정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법원이나 수사기관이 저작권 침해 여부에 대해 한국저작권위원회에 감정을 촉탁할 경우 감정인이 음악 전문가들의 견해를 재판부나 검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법률 언어로 설명한다.
"음악저작물 감정은 음악을 전공한 법률가로서 가장 보람된 일입니다. 음악 전문가들은 수사나 재판의 절차 및 기존 판례에 따른 판단 기준 등 법적인 절차와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재판부나 수사기관은 음악전문가들의 감정 결과를 해석하기 어려워합니다. 양쪽 모두 알고 있는 제가 통역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변호사는 예술인 출신 법률가들을 위한 실무경험 기회가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강연과 기고 활동도 계속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바야흐로 '콘텐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문화예술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변호사들이 할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 출신 법률가들이 일할 수 있는 적합한 자리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문화예술계에 법률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이기 때문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계와 더불어 저희 같은 법조인들이 함께 고민하고 바꿔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