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5.]
1. 서론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은 10년의 소멸시효 기간의 적용을 받는바(민법 제165조 제1항) 채권자는 이행청구 등을 통하여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다시 소멸시효를 중단시킬 필요성이 존재합니다. 이에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소송에 관한 비교적 최근의 대법원 판례들을 중심으로 그 소송의 형식 및 법원의 심리에 대하여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2.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후소의 이익과 청구의 형식
확정판결에는 기판력이 있어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전소의 상대방을 상대로 다시 전소와 동일한 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 후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합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예외적으로 확정판결에 의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 경과가 임박한 경우에는 그 시효중단을 위한 소의 이익을 인정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8다22008 전원합의체판결 등 참조).
그리고 이와 같이 시효중단을 위한 후소를 제기하는 경우, 후소의 형태로 항상 전소와 동일한 이행청구만을 요구할 것은 아니고 시효를 중단시키기 위한 조치로서의 ‘재판상의 청구’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만 확인을 구하는 형태의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도 허용합니다(대법원 2018. 10. 18. 선고 2015다232316 전원합의체판결 참조).
다시 말해 확정판결에 의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 경과가 임박한 경우 확정판결의 기판력에도 불구하고 시효중단을 위한 소의 이익을 인정하며 그 형태로는 이행청구는 물론 새로운 방식의 확인청구도 가능한 것입니다.
3.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소송에 대한 법원의 심리
대법원이 인정하는 이러한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청구는 그 형태는 일반적인 확인청구 내지 이행청구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청구는 이미 같은 채권에 대해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채권자에게 소멸시효 중단이라는 현실적인 필요를 이유로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소송인바, 후소 법원은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의 적용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전소의 승소 확정판결이 있는 경우 후소 법원은 그 기판력이 미치는지를 직권으로 조사하여 기판력을 근거로 동일한 내용의 판결을 해야 하는바 청구원인을 다시 심리하지 않고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음을 이유로 각하 판결을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이러한 방식의 소송에 대하여 대법원 2019. 1. 17. 선고 2018다24349 판결은 기판력의 적용을 받는 보통의 경우와는 다소 다른 방식의 심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소 판결의 기판력은 전소의 변론 종결 시를 기준으로 발생하므로,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소송에서 피고가 전소의 변론 종결 후에 발생한 변제, 상계, 면제, 소멸시효 완성 등과 같은 채권 소멸 사유를 들어 항변한다면 법원은 이를 심리하고, 항변이 인정되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피고가 주장할 수 있는 이러한 채권 소멸 사유들은 집행 단계에서 청구이의의 소를 통해 다투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로 하여금 원고가 제기한 소송에서 항변하는 것을 허용하고 법원이 같은 절차에서 이를 심리할 수 있다면 소송 경제에 기여할 뿐더러, 추후 피고의 청구이의의 소에 대한 제소 책임, 원고의 그에 대한 응소 부담을 덜게 되어 원·피고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관점에 기반을 두고 위와 같이 설시하였습니다.
위 판례에 관하여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후소가 전소 판결이 확정된 후 10년이 지나 제기되었던 사안으로, 문제된 채권이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으로서도 소멸시효 기간이 도과한 것이 명백하였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후소가 전소 판결이 확정된 후 10년이 지나 제기되었다 하더라도 곧바로 소의 이익이 없다고 하여 소를 각하해서는 아니 되고, 채무자인 피고의 항변에 따라 원고의 채권이 소멸시효 완성으로 소멸하였는지에 관한 본안판단을 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즉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이 있다면 이를 심리하여야 하고, 심리 결과 채권이 시효로 소멸하였음이 인정되면 각하 판결이 아닌 청구기각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사안에서는 소 각하 판결을 한 원심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원심의 사실 인정이 정당한 이상 청구기각 판결을 할 것이 분명함을 이유로 불이익 변경금지의 원칙상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4. 결론
동일한 당사자가 동일한 소송물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이는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반하는 것이 원칙이나,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 중단의 필요성이 있는바 이를 이유로 한 청구가 가능합니다. 이때 법원은 전소 변론 종결 후 발생한 채권 소멸 사유를 피고가 항변하는 경우 이를 다시 본안으로 심리할 수 있으며, 항변이 인정된다면 청구기각 판결을 선고하게 됩니다. 확정판결의 기판력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피고로 하여금 청구이의의 소 외에 다른 항변의 방법을 제한한다면 소송 경제 및 원·피고 쌍방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 것입니다.
채원협 변호사(whchae@lawlog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