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 자격이 있는 변호사의 핵심 세무대리 업무를 금지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이 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 변호사업계는 국민의 세무대리서비스 선택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위헌·졸속 입법이라고 규탄하면서 위헌소송 등 강력한 법적투쟁 방침을 밝히는 등 직역수호를 위한 전면전을 선포했다.
국회는 11일 본회의를 열고 재석의원 208명 중 찬성 169명, 반대 5명, 기권 34명으로 세무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개정안에 반대하는 유상범·전주혜 국민의힘 의원 등이 퇴장한 채 여당 의원들 주도로 법안을 가결한 지 이틀 만이다.
개정안은 2003년 12월 31일부터 2017년 12월 31일까지 사이에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받은 변호사 1만 8100여 명의 세무대리업무 허용 범위에서 장부작성(기장) 대행과 성실신고확인 업무를 제외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장대행과 성실신고확인 업무는 세무대리업무의 핵심이고 수요자인 고객과 연결되는 첫 지점이기 때문에 변호사들이 이를 못하도록 막는 것은 사실상 세무대리업무를 전면 금지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개정안은 또 세무조정 업무 등도 세무사회에서 1개월 이상 실무교육을 받아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개정 내용은 공포 즉시 시행된다.
예전에는 모든 변호사가 세무업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3년 12월 세무사법이 개정되면서 2004~2017년까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1만 8100여 명은 세무사 자격을 취득한 상태에서 세무사 등록을 하지 못해 세무대리 업무를 수행하는 데 제한을 받았다.
위헌 결정된
‘변호사의 세무대리업무 금지’ 등 그대로
그러다 2018년 4월 헌재의 결정(2015헌가19)으로 이들이 세무대리 업무와 세무조정 업무 등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헌재는 "세무사법이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부여하면서도 (세무소송 등) 변호사의 직무로서 행하는 경우 이외에는 세무대리업무를 일체 수행할 수 없게 하는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면서 변호사의 세무사 등록과 관련한 세무사법 제6조 1항 등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개선입법시한을 2019년 12월 31일까지로 못박았다.
그러나 개정입법이 지연되며, 2020년 1월 1일부터 변호사의 세무사 등록이 전면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입법 공백 상태가 발생했다. 결국 지난해부터 한시적으로 세무사 자격을 가진 변호사들은 국세청으로 임시 관리번호를 부여받아 세무대리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변호사업계
“헌재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위헌 입법”
앞서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이번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과 비슷한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거쳐 법사위에 넘겨졌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당시 법사위는 개정안은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이 부분에 대한 관계 부처·기관 간 이견도 조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류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21대 국회가 들어선 이후 지난 7월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를 통과해 다시 법사위로 넘어왔다. 법사위 논의과정에서 개정안이 변호사의 기장대행 업무와 성실신고확인 업무 제한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두 가지 업무가 세무업무의 핵심이므로 사실상 헌재 결정을 형해화한다는 비판이 다시 제기돼 3개월 넘게 법사위 전체회의에 계류됐지만, 지난 9일 여당 의원들 주도로 가결되면서 본회의에 상정됐다.
변호사업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는 11일 개정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규탄 성명을 내고 "국회가 자격사 업무의 세분화와 전문화라는 실체없는 명분을 내세워 세무사회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수용했다"며 "헌재 결정 취지를 뒤엎고 입법재량의 범위를 현저히 일탈해 위헌성 높은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어 "현재 세무사로 등록하고 '장부작성 및 성실신고 확인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많은 변호사들의 업무가 갑작스레 중단되는 등 법적 안정성의 근간을 크게 훼손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주축으로 한 국회의 무책임한 입법 행위를 다시 한 번 강력히 규탄한다"며 "(개정안에 대한) 위헌소송과 집행정지 신청 등을 제기해 위헌적 세무사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명명백백하게 따지는 등 법적 투쟁에 돌입할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다"고 강조했다.
변협·서울회·한법협 등
변호사 단체 잇따라 강력 규탄
대한변협은 곧바로 개정안의 위헌성을 따지는 헌법소원에 참여할 변호사 청구인단 모집에 착수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정욱)와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회장 이임성), 전임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의장 석왕기), 대한변협 세무변호사회(회장 박병철)·노무변호사회(회장 주완)·이민출입국변호사회(회장 이재원)·채권추심변호사회(회장 황규표)·특허변호사회(회장 차상진), 한국법조인협회(협회장 김기원) 등 주요 변호사단체들도 10~12일 잇따라 규탄 성명을 발표해 국회의 '무책임·위헌·졸속입법'을 비판하고 전면 투쟁을 예고했다.
이들은 이번 개정안이 세무사회 입장만 수용한 직역이기주의의 발로일 뿐만 아니라 세무대리서비스에 대한 국민 선택권을 침해하고 로스쿨 제도 도입 취지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위헌적 입법이라며 그 피해가 국민들에게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재명·강한 기자jman·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