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인회생·파산 신청 대리권을 법무사에게 부여하는 개정 법무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업무 영역 확대 및 업무 효율 제고를 위한 법무사업계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개정법이 이전까지 법무사들이 해오던 업무를 재차 확인하는 것에 불과해 아직 큰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반응도 나오지만, 법무사의 업무 범위에 채무자회생법상 개인파산·회생사건 신청 대리를 추가하는 내용이 명확히 추가돼 상징적 의미와 함께 이 분야에 대한 법무사업계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도 많은 상황이다. 본보는 창간 71주년을 맞아 법무사업계의 개인회생·파산 사건 업무 현황과 대응 방안 등을 점검해봤다.
◇ "개인회생·파산 사건 개척 확대" = 법무사들은 지금까지 개인회생 1호 사건을 담당하고, 개인회생제도와 개인파산·면책제도에서 각각 회생위원과 파산관재인으로 참여하는 등 개인회생·파산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법무사 업계가 관련 업무를 개척하기 시작한 건 1997년 외환위기(IMF) 이후 개인회생·파산 사건이 늘면서부터다.
2004년 시행된 개인회생제도는 일정 소득이 있지만 과다한 채무로 지급불능상태에 있는 채무자에 대해 법원이 채권자의 법률관계를 조정해 채무자의 재기와 채권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제도다. 개인회생업무를 처리하는 회생위원에는 법원사무관, 변호사, 법무사 등이 선임될 수 있다.
개인파산·면책제도는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으로 채무를 변제할 수 없을 때 스스로 파산신청을 하도록 한 제도이며, 파산관재인은 채무자의 파산재단을 관리·환가·배당하는 파산절차를 담당한다.
‘개인회생 사건 포괄수임’
법무사 유죄판결에 반발
대한법무사협회(협회장 이남철)에 따르면 개인회생 '1호' 사건은 2004년 이근재·서선진(서울중앙회) 법무사가 담당했다.
이 법무사는 "주식투자를 했던 회사가 IMF로 도산하며 주식을 잃은 의뢰인이었다"며 "당시 비슷한 피해를 본 채무자들이 회생 방도가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노숙자가 되는 등 사회 문제가 커지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IMF 이후 기업 회생을 위한 구조조정과 도산 절차는 활성화됐지만 개인회생을 위한 제도는 없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됐고, 법무사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어 서민들을 상대로 한 개인회생 사건을 활발히 처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한 법무사가 개인회생 사건을 포괄수임했다는 이유로 기소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법무사업계는 크게 반발했다.
2018년 11월 이 사건 항소심 재판을 맡은 수원지법 형사2부(재판장 이오영 부장판사)는 "개인회생 등 사건 제반업무 일체를 포괄처리해 사실상 사건 처리를 주도한 것은 변호사법에서 금지하는 '대리'에 해당한다"며 법무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판결 직후 법무사업계는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 '개인회생 포괄수임 유죄 판결 규탄 1인 릴레이 시위'를 이어갔다. 개인회생 사건을 법무사가 대리하도록 하는 법무사법 개정안의 법 통과를 촉구하는 데에도 불을 지폈다.
결국 지난해 1월 국회 본회의에서 법무사의 업무 범위에 채무자회생법상 개인파산·회생사건 신청 대리를 추가하는 내용의 법무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같은 해 7월부터 법무사들은 개인회생·파산 사건 신청대리권을 명확하게 갖게 됐다.
◇ "전체 수치 큰 변동 없지만… 실질적·상징적 변화" = 현재까지 수치 상 눈에 띄는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대법원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개인파산 사건은 지난 5년간 △2016년 5만288건 △2017년 4만4246건 △2018년 4만3402건 △2019년 4만5642건 △2020년 5만379건을 기록했다.
개인회생 사건도 △2016년 9만400건 △2017년 8만1592건 △2018년 9만1219건 △2019년 9만2587건 △2020년 8만6553건을 기록해 비슷한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는 10월까지 개인파산 사건은 4만777건, 개인회생 사건은 6만6566건으로 지난해 10월까지의 개인파산, 개인회생 사건 4만1257건 및 7만2021건과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1인 릴레이 시위로
‘사건대리 법제화’ 이끌었지만
개인회생·파산 분야 진출 확대 등은
과제로 남아
법무사법 개정 전에도 법무사, 변호사 등 전문가에 의해 수행되던 업무의 양상이 이어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법무사들은 업무 처리 과정에서의 변화를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개인회생·파산 분야 전문가인 서선진 법무사는 "법무사법 개정 이후 하나의 신청을 위해 여러 개의 행위마다 따로 위임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지는 등 업무의 편의가 높아졌다"며 "또 대리인의 지위에서 법원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도 뜻 깊으므로 실질적·상징적 의미에서 변화가 일어났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영나 법무사협회 대변인은 "법무사의 개인회생·파산 대리권이 법제화됨으로써 국민들의 불편이 해소되고 회생·파산제도에서 법무사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가능해져 회생·파산 제도 발전의 중요한 축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평가했다.
◇ "파산관재인·회생위원 문호 개방… 접견 절차 개선해야" = 법무사들은 신청 대리권을 법제화한 것을 넘어 개인회생·파산 사건 분야에 대한 법무사들의 진출을 확대하고 업무 효율을 제고하기 위한 과제가 남아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파산관재인 및 회생위원'의 문호를 법무사에게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회생법원에 따르면 현재 회생법원의 전임회생위원 10명 중 2명이 법무사이며 개인파산관재인 중 법무사는 없다.
한 법무사는 "개인회생·파산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쌓아가는 법무사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파산관재인 및 회생위원의 문호는 좁다"며 "법원과 법무사업계 모두에서 법무사의 진출 확대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또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상의 접촉차단시설 없는 장소에서의 접견을 개인회생·파산 신청 대리인에게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형집행법 제41조 2항에 따르면 미결수용자가 변호인과 접견하는 경우, 수용자가 소송사건의 대리인인 변호사와 접견하는 경우 등에는 접촉차단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장소에서 접견할 수 있다.
법무사업계는 개인회생·파산 사건의 특성상 신청인이 교정시설에 수용된 경우가 종종 있는데도 관련 법이 미비해 접촉차단시설이 설치된 장소에서만 접견해야 해 상담 과정이 충실하지 않게 이뤄질 위험이 있는 만큼 관련 법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무사의 업무 영역을 '법인회생파산' 신청대리 업무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보다 많은 교육프로그램 통해
전문가도 양성해야
한 법무사는 "법무사가 개인회생·파산 사건 신청대리를 할 수 있다면 법인회생·파산 업무에 대한 가능성도 열려있다"며 "법무사업계도 보다 많은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업무 확장에 대비하는 다양한 전문가를 양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사협회는 개인회생·파산 영역에 대한 법무사들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각계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지난 10월 협회는 한국채무자회생법학회와 업무협약을 맺는 등 앞으로 증가할 파산·회생 사건에 대응에 앞장서고 있다"며 "파산·회생 분야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회원들에게 교육 참여를 독려하는 등 법무사들의 역할 강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홍수정·남가언·홍윤지 기자 soojung·ganiii·hy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