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저는 어떠한 생산적인 행위도 하지 않으며 사고를 멈춘 채 시간을 보내는, 소위 ‘멍때림’을 통해 영혼의 자유를 누리곤 합니다. 어느 정신과 선생님께서 기고글을 통해 멍때림을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모든 종류의 행위’로 멋지게 정의하시면서 ‘경치 구경하며 올라가다 정상까지 가기 싫어지면 도로 내려오는 등산’ 같은 예시를 구체적으로 들어주신 덕에 그 이후로는 저도 주위에 당당히 ‘나 멍때린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굳이 멍때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행에서 누린 행복에 비해 남긴 사진이 적다는 변명을 미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2017년 법무관 복무 만료를 앞두고 입사 예정인 회사 대표님들 및 (대표님들보다 더 중요한) 아내님께 양해를 구하고는 30년지기 친구 하나와 일본 중부공항으로 가는 비행기편과 나고야 등 중부지방 몇몇 도시의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여행지 선택에 다른 고려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오랜 친구끼리 함께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해외여행인 만큼 마음껏 멍때릴 수 있는 곳으로 가되 너무 멀리 가지 말자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다른 어떤 곳보다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여행의 주된 체류지는 나고야였습니다. 제가 상식이 짧아 나고야를 그저 공업도시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내려서 방문한 첫 동네에 이르러 오만함을 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렌트카를 타고 요금 정산소를 몇 군데 거치고 나니 한적한 국도에서나 보일 법한 이름 모를 꽃들과 아기자기한 도로 표지석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는 90년대 힙합 명곡을 틀어놓고 행선지 없이 도로를 달리며 풍광을 감상하기 시작했는데, 너무나 충실히 멍때린 덕에 사진은 찍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길가에서 찍은 꽃 사진 하나와 밤늦게 조우한 숙소 인근 소박한 철도역(이름이 무려 ‘富貴’였습니다) 사진이 전부이지만 지금 다시 보아도 그 때 누린 자유로움이 재생되는 듯합니다. 들이쉴수록 폐가 건강해지는 것만 같은 청량한 공기, 목을 꺾지 않아도 한 눈에 들어오는 오밀조밀한 집들, 통일호나 비둘기호를 탈 때의 추억이 떠오르는 한적한 철도역, 여러모로 사고를 멈추기에 완벽한 조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고야에서 먹은 음식은 모두 맛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놀랐던 것은 에비후라이(새우튀김)였는데요, 밤에 지나가다 들른 료칸에서는 과장 조금 보태서 작은 가지나 오이 수준의 굵고 탱탱한 새우가 나와서 오늘 원없이 먹어보자 싶은 마음에 온 밤 에비후라이를 먹느라 사케를 몇 병이나 비웠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시간에 충실하느라 그 에비후라이를 사진에 담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그 또한 멍때림의 일부인지라 후회는 없고, 다시 나고야에 간다면 왠지 인연처럼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남게 되어 오히려 다행스럽기까지 합니다. 얼마나 감동했던지 다음날 도로가 식당에 들러 점심으로 또 에비후라이를 먹었는데 그 때 사진은 다행히 남아 있습니다. 휴게소에서는 상대적으로 겸손한 사이즈의 새우가 나왔지만 그 역시 제가 이제껏 먹어 본 웬만한 식당 음식에 비해서는 크고 맛있었습니다.
나고야 시내를 둘러보다 우연히 찾아갔던 나고야 성도 기억에 남습니다. 소싯적 대항해시대2 게임을 할 때 나가사키항이나 사카이항에서 보았던 모양의 건축물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더운 여름날 창작물에서 나오는 닌자 복장으로 봉을 휘두르며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분들의 모습도 좋은 구경거리였습니다. 성 안에는 층마다 나고야의 전통 문화를 소개하는 코너들이 있었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나고야 시내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었습니다. 고풍스러운 처마 끝 하늘이 나고야의 번잡한 시내와 만나는 장면이 이질적이고 신기해서 한 시간 가까이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두고 그 하늘을 바라보며 멍때렸던 것 같습니다.
나고야에 다녀온 이후 5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대체로 즐거웠습니다. 다니던 회사는 규모가 커졌고, 저는 여전히 틈틈이 시간 내어 열심히 멍때리고 있으며, 아내는 이전보다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이 글을 정리하며 제게 일어나는 일들을 좋고 즐거운 것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게 된 이유를 돌이켜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전역 직후 나고야에서 보낸 3박 4일의 멍때림의 시간이 결정적이지 않았나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제가 누렸던 자유로움이 조금이나마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행복하세요.
최영재 변호사 (법무법인 디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