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감상은 굉장히 고전적인 취미에 해당한다. 구체적인 통계 수치를 확인한 적은 없지만,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답 중 하나가 '독서'와 함께 '영화 감상'이 아닐까 예상한다. 사람마다 영화 감상 스타일이 다르지만 꽤 능동적 행위가 필요한 독서와 비교하면 영화 감상은 정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취미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취미로 '영화 감상'을 꼽는 것은 혹시 취미도 없구나 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닌지 불필요한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렇게 취미인듯 아닌듯 영화를 즐겨보다가 우연한 계기로 영화 관련 칼럼을 쓰게 되면서 '영화 감상'은 본격적인 취미가 되었다. 애초에 영화는 나의 힐링수단 중 하나였을 뿐인데 이제 무조건 격주에 한 편은 꼭 보아야 하는 일같은 취미가 된 것이다. 그렇게 쌓인 칼럼이 단행본으로 나왔는데 바로 '고 변호사의 씨네마 법정'이다. 단행본으로 출판되는 책은 칼럼과 성격이 달라서 글의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도 꽤 많은 수정이 필요했고, 거짓말을 조금 보태어 토나올 때까지 글을 계속 읽고 수정했다.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러한 수정 과정 덕분에 생활밀착형 법률상식이 두터워졌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어떤 것이 법률상식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처한 상황이 다양하여 필요한 법률상식도 다를 수 있지만, 영화를 이용해서 나름의 기준을 세워 본다면, 일상적인 드라마 장르에 자주 등장하는 법률쟁점이 일반적으로 필요한 법률상식에 해당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책에 나오는 영화 중에서 '세자매', '여배우는 오늘도'. '당신의 부탁', '결혼이야기', ‘기생충’ 등 드라마 장르의 영화에 자주 나오는 법률쟁점들은 정말 실생활에 필요한 경우가 많고 변호사로서 평소에 상담도 많이 받는 주제에 해당한다. 반면에 한국영화 최초(?)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장르 '승리호'에 나오는 법률쟁점은 상대적으로 실생활과의 관련성이 약하다. 특히 영화 속 법률쟁점을 찾아 글을 쓰는 것은 변호사로서 고시 공부할 때 책으로만 봤던 내용을 활용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비밀침해죄'는 판례도 거의 없는 범죄인데, 영화에는 유달리 타인의 일기장이나 편지를 몰래 읽는 설정이 많이 나온다는 것을 영화 관련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위 행위들에 대해서는 모두 비밀침해죄를 검토해 볼 수 있지만 친고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소추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현실에서도 사건 수가 없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한 달에 20편이 넘는 영화를 보는 것이 이제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영화를 보는 근육이 생긴 것 같고 나에게는 여전히 좋은 취미이자 힐링과 재충전 방법이 영화 감상이다. 취미를 일로 연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했는데 이렇게 단행본까지 나올 수 있어서 무척 뜻깊다.
고봉주 변호사(서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