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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1)
박솔잎 기자
2022-06-20 09:20
1부 소묘 (素描) ① 잔뼈가 굵어지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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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도 없던 시절 ‘골필’로 직접 쓴 공소장에 자존심 걸어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 

 

 

1969년 5월 1일. 내가 검사로 첫발을 내디딘 날이다. 대구지방검찰청을 찾아간 첫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대구지방검찰청은 대구시 중구 삼덕동에 있었다. 군법무관 시절 나는 삼덕동에 하숙하고 있었으므로 법원·검찰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정문에서 마주 보이는 3층 벽돌집 본관 건물은 대구고등법원과 대구고등검찰청이 쓰고 있었으며, 그 본관 건물의 좌측, 즉 정문에서 들어서면 우측에 대구지검이 있었다. 2층의 시멘트 콘크리트 건물이었던 것 같다.

 

나를 포함해 2명의 초임 검사가 대구지검에 부임했다. 발령받긴 했으나 사법대학원 시절, 서울지검 인천지청에서 2개월간 검사 직무대리로 일한 경력 외에 군법무관으로서 검찰관의 임무를 맡았던 것이 그나마 검사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경험의 전부였다.

 

이전에는 초임 검사는 서울지검 본청으로 임관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초임 검사가 대한민국 수도검찰인 서울지검 본청에 임관되면 본인이나 조직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당시 서울지검 검사장의 의견이 있었고, 인사권자인 법무부 장관도 이에 응해 이때부터 초임 검사는 지방인 부산·대구 등의 큰 청 순서로 발령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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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전 처장은 1969년 대구지검 검사 임관 후 10일 뒤 결혼식을 올렸다.

 

사법대학원 수료 성적 때문인지 부산 다음으로 큰 검찰청인 대구지검으로 발령이 났다. 대구지방검찰청! 여기에 발령받은 사실이 내 일생을 좌우할 중요한 계기가 됐으니 사람 팔자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내 방의 검찰사무직은 수사의 보조 실력은 뛰어났으나 글씨체가 별로라 조서를 제외한 사건결정문은 모두 내 손으로 작성해야 했다. 타자기가 보급돼 있지 않던 당시에는 검사가 미농지 사이에 먹지를 끼워 골필(骨筆, 뼈를 깎아 연필처럼 뾰족하게 만들어 놓은 것)을 사용해 공소장을 작성했다. 골필의 압력으로 미농지가 찢어지지 않도록 담뱃갑 포장용 셀로판 용지를 대고 글을 썼다. 볼펜이 없던 시절 이야기다.


이러니 공소장 작성이 여간 지겨운 일이 아니었다. 사무직원이 글씨를 잘 쓴다면 공소장 초안을 써 주고 그 내용대로 골필을 사용해 공소장을 작성하도록 지시했을 텐데 그럴 수 없었다.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에 따라 법원의 사건 기록은 제일 앞에 공소장이 편철된 후 공판 진행에 맞춰 순서대로 각종 서류가 작성된다. 공소장이야말로 사건의 얼굴인 것이다. 이런 문서를 삐뚤빼뚤한 글자를 써서 작성하는 건 검사의 자존심이 허락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이후 수십 년간 한 건도 예외 없이 내 손으로 작성했다.


결재 올린 공소장 못마땅하면
‘수정 지시’ 부전지 달아 반환
한 건에 부전지 8개나 받기도


저승사자 같았던 차장검사
연휴에도 하숙집서 기록검토
직무에 철저한 검사의 師表로


그런데 사건을 결재하는 차장검사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공소장 내용이 못마땅하면 대폭 수정하라는 부전지가 여러 개 달려 검사실에 반환되곤 했다. 당시 검사들은 이 부전지를 ‘문어 다리’라고 불렀다. 부전지는 차장검사가 자신의 취향에 맞게 특별히 지정한 규격으로, 종서(縱書)로 내려쓰도록 적색의 테를 둘러 인쇄된 것이다. 나는 심지어 한 개의 공소장에 8개의 부전지가 달려 반환되는 수모도 겪어야 했다.

한번은 공범이 많은 부동산 사기 사건에서 공소장 분량이 많아 궁리 끝에 타자기가 있는 위층 부장검사실을 찾아갔다. 부장검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부속실의 여직원에게 공소장을 찍어 달라고 통사정했다. 부장검사 왈 “차장검사께서 무슨 이런 사건을 초임 검사에게 배당해 부장실에까지 피해(?)를 주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골필로 공소장을 작성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었다. 큰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차장검사의 호출이 있다는 여직원의 보고가 있었다. 당시는 검사실마다 개별 전화가 없고, 전화 교환수가 이 방 저 방 벨을 울려 신호를 보내던 시대였다. 전화벨이 울리는 것을 듣고 차장검사의 호출임을 직감했다. 차장검사의 호출 신호음은 다른 것보다 길기 때문이다.

차장검사실에 불려 간 나에게 그는 이렇게 물었다.


“어디서 타자기를 구해 이 공소장을 찍었소?”

“공소 사실이 너무 길어서 탈자나 오자가 있으면 안 되겠기에 부장검사실에 부탁해 찍었습니다.”

“만약 내가 공소장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한다면 어떻게 하겠소?”

“정당한 지적이라면 명령에 따를 것이나, 부당한 것이라면 따를 수 없습니다.”

“그만한 자신이 있소?”

“수사는 저의 책임으로 제가 한 것이고, 차장검사님께서는 기록만 보셨으니 제 결론과 표현은 저의 생각이 맞을 것입니다.”

빙그레 웃던 그는 공소장에 도장을 찍어 결재했다.

사건 결재를 마친 차장검사는 내게 말했다.

“이런 사건을 송 검사에게 배당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소. 사건 처리가 치밀하지 못한 검사에게 이런 사건을 배당한다면 담당 검사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괴로운 사람은 나요. 기록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여러 개의 부전지를 달아야 하고, 또 그 검사를 불러야 하니 그 검사가 괴롭겠소, 아니면 내가 더 괴롭겠소?”


이 무렵이 내가 상사로부터 신임받기 시작하였던 때인 듯하다. 한 달에 한 번씩 차장검사 주재 전체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는 ‘차장검사 지시 사항’이라는 두툼한 유인물이 배포됐다. 이 원고 작성을 위해 내게 제공됐던 건 차장검사가 사건 결재 시에 사건 기록과 검사의 결정문에 핀을 꽂아 검사실에 반환하는 용도로 사용된 속칭 ‘문어 다리’라는 부전지들이었다. 수백 장에 달하는 이 ‘문어 다리 묶음’이 곧 내가 작성할 차장검사 지시 사항의 기본 자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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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간 검찰 재직 시 작성했던 업무일지.

 

부전지는 대부분 한자로 쓰여 있고, 특히 초서(草書, 흘림글씨)에 일가견이 있던 분이라 세로로 내려쓴 한자는 읽기조차 힘든 것이 많았다. 내가 부전지의 수집가(?)가 된 이후부터는 사건 기록에 매달린 부전지를 들고 초서에 능통해진 내게 찾아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을 정도로 많았다.


부전지를 수집하다 보니 다른 검사들의 웃지 못할 사정들도 마주하곤 했다. 검찰청의 근무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차장검사 밑에서 고된 초임 검사 시절을 보낸 이들이다. 유명한 호텔의 방을 빌려 지내며 지프차를 타고 가족이 머무는 서울을 오가며 출퇴근했던 검사, 연예인 같은 머리 스타일로 매번 단정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검사가 그랬다. 상사로부터 철저한 지도를 받은 덕분인지 이들은 먼 훗날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저승사자와 같았던 차장검사는 오래전에 이승을 떠났다. 많은 검사로부터 원망을 듣던 그분은 직무 수행에 있어서만은 너무도 철두철미한 직업인이었다. 그는 연초 연휴에도 가까운 부산 집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수많은 결재 사건 기록을 하숙방에 싸 들고 갔다. 철없는 초임 검사를 철저히 지도해 주신, 고 김인규(金麟圭) 차장검사의 명복을 기원한다.



법률신문은 72년 만의 베를리너판으로의 판형 변경을 기념해 송 전 장관이 2015년 써두었던 회고록을 연재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검사와 법조인들에게 길잡이가 되길 소망한다. 회고록은 총 18편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리=박솔잎 기자  soli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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