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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오늘] ① 지연된 정의
한수현 기자
2022-06-2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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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민사1심 장기미제 총 7494건… 5년 초과도 490건
민사 접수 이후 첫 기일 잡기까지 평균 138일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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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사건 처리 속도가 현격히 떨어졌다는 사실은 변호사 대부분이 공감하는 문제입니다."


A변호사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 지난해 11월 민사소송을 대리하기 위해 법정에 출석했다가 크게 당황했다. 이미 여러차례 변론이 진행됐던 터라 연말까지는 심리가 종결되고 법관 정기인사가 있는 이듬해 2월 판결이 선고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재판장이 다음 변론기일을 법관 인사 이후인 이듬해 4월로 잡았기 때문이다. A변호사는 "속행기일이 5개월 뒤라니요. 그래서 더 빨리 기일을 잡아줄 순 없겠느냐고 요청했더니 재판장이 '그 전(법관 인사 전)에 이 재판 못 끝냅니다. 그래도 기일 잡고 싶으세요?'라고 하더라"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법정을 나왔다. 재판부가 바뀌면 리셋(reset)되는거나 마찬가지여서 이미 했던 변론을 되풀이해야 한다. 시간도 많이 걸려 결론이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건 처리가 지연되면서 법원의 사건 적체가 역대 가장 나쁜 상황이다. 법조계에서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재판 지연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사법서비스 수요자인 국민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 쌓여만 가는 미제사건들 =
사건 적체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법원이 만든 지표로 확인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양향자 의원이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일 기준 서울중앙지법 1심 민사본안 합의 미제분포지수는 '-3.5(소송남용인 사건 미포함)'였다. 2020년 12월 말일 기준 '5.0', 2019년 12월 말일 기준 '13.3'인 것에 비춰보면 매년 절반 이상 크게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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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대 규모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은 상대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이 많기 때문에 미제분포지수 상황이 다른 법원에 비해 나쁠 수 있지만, 법원 안팎에서는 "미제분포지수가 마이너스 상태로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며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개선될 조짐이 좀체 보이지 않아 법원만 쳐다보며 하릴없이 기다려야 하는 당사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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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서울중앙지법 1심 민사합의부는 지난해 4월부터 한 번도 미제분포지수가 플러스 수치를 기록하지 못했다. 말일 기준으로 -1.8(4월), -3.0(5월), -4.6(6월), -5.8(7월), -6.3(8월), -7.4(9월), -6.5(10월), -4.9(11월), -3.5(12월)에 머물렀다. 2020년 같은 기간에는 10.6(4월), 8.3(5월), 7.2(6월), 8.1(7월), 7.1(8월), 7.7(9월), 6.5(10월), 6.1(11월), 5.0(12월)이었고, 2019년 같은 기간에는 16.5(4월), 16.1(5월), 15.5(6월), 16.1(7월), 16.1(8월), 15.1(9월), 15.8(10월), 14.3(11월), 13.3(12월)이었다. 해마다 장기미제사건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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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은 전국 모든 법원에서 나타난다. 전국 법원 1심 민사합의부 미제분포지수는 12월 말일 기준(서울중앙지법의 경우 소송남용인 사건 포함)으로 2019년 34.8에서 2020년 23.3으로 떨어진 데 이어 지난해에는 13.4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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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을 기준으로 전국 법원 1심 민사본안 사건 가운데 미제사건은 37만6540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5개월 이내(법정기간 내)의 기간 동안 심리 중인 미제사건이 22만2745건으로 가장 많지만 △1년 이내 사건 9만8125건 △2년 이내 사건 4만1347건 △2년 6개월 이내 사건 6829건 △3년 이내 사건 3662건 △5년 이내 사건 3342건 △5년이 초과된 사건이 490건인 것으로 파악됐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미제분포지수 악화 상황을 사법행정권자인 법원장 등이 당연히 알고 있을 텐데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법원장이나 수석부장이 후배 법관들의 눈치만 보면서 정작 해야 할 역할은 하지 않아 사건 적체 현상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처리 지연에 따른 피해는 국민이 입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부장판사는 "2월 법관 정기인사로 새 재판부에 부임한 후 미제사건 수를 파악하다 미제가 너무 많이 남겨져 있어 크게 놀랐다"며 "승진제도 폐지 등으로 일을 열심히 해야 할 이유를 법원 내에서 찾기 힘들고, 판사들의 사명감도 예전같지 않은 것 같다. 현 시스템에선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이 당연한데, 최근에는 일을 열심히 하는 판사들이 '민폐' 취급 당하는 경우도 있다"며 "판사들의 피와 땀을 갈아넣던 예전 방식이 옳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신속한 재판을 위한 해법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 의원은 “재판 지연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우리 국민들”이라며 “신속한 재판이 가능하도록 사법 행정제도 개선과 법관의 처우개선을 위한 국회 차원의 입법적 지원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고법부장 승진제도 폐지 후

사명감 예전 같지 않아


◇ 사건 접수 후 첫 기일까지 5개월 = 소송을 내도 첫 재판까지 거의 5개월이 걸린다.

올 1~5월 전국 법원 1심 민사본안사건은 접수 후 첫 기일이 잡히기까지 평균 138.1일(4.6개월)이 소요됐다. 특히 울산지법은 182.4일로 6개월이나 걸렸다.

항소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전국 법원 민사본안사건 항소심은 접수 후 첫 기일이 잡히기까지 220.2일(7.34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인천지법은 305.7일로 평균 10개월이 지나야 항소심 첫 기일이 잡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사사건은 구속기한 등의 사유로 민사사건보다 첫 기일이 빠르게 잡히는 편이지만, 두 달 이상이 소요됐다. 같은 기간 전국 법원 형사공판은 사건 접수 후 첫 기일이 열리기까지 1심은 평균 79.9일, 항소심은 평균 125일이 걸렸다.

한 로펌 변호사는 "변호사들이 체감하는 것은 답변서가 접수되고 정식으로 다투는 사건인데, 일단 민사에서 첫 기일이 잡히기까지 반년 가량 걸리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라며 "1심이든, 2심이든 3개월 안에는 기일이 잡혀야 최소한 재판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는 "실제로 경험한 사례"라며 "지방의 어느 지원에서 진행되는 민사사건을 대리했는데 첫 기일이 잡히기까지 1년이 걸린 적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형사 구속사건은 기간 제한이 있어 상대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지만, 불구속 사건인 경우에는 민사사건과 마찬가지로 늘어지기 일쑤"라며 "재판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큰 문제인 만큼 법원이 신속한 재판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을 법원과 판사들이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 아니다”는 법언

어떻게 생각할지…


◇ "판결문도 미흡" = 사건 처리 지연 뿐만 아니라 판결문에도 미흡한 부분이 예년에 비해 많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결문의 질이 떨어졌다"는 지적은 법원 외부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1심에서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흔적이 보이는 판결문들이 종종 눈에 띈다. 왜 1심에서 다퉈지지 않았는지 의심이 될 때가 많다"며 "각자의 일을 충실히 하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최근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새로운 법리를 설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대법원 취지에 따라 판결하는 느낌이 강하다"며 "법리에 대해 치열하게 연구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판결문은 재판당사자가 최종적으로 받아보는 사법서비스의 결과물인데, 판결문에서 미진한 부분이 늘어난다는 것은 제대로 된 사법부의 판단을 받지 못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며 "이런 문제점들이 결국 사법부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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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박수연·한수현·이용경 기자

sypark·shhan·yklee@la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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