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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만나는 법] 김동현 수원지법 판사
김도언 시인(소설가)
2022-07-0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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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는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살피라는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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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들만 다니는 과학고를 조기졸업하고 우리나라 최고 학부인 KAIST를 나온 뒤 IT전문 변호사를 꿈꾸며 로스쿨에 들어갔을 때, 그의 부모와 가족이 가질 수 있었던 희망의 근수는 얼마였을까. 분명한 건 그는 틀림없이 한 가족의 자랑이자 기쁨이었다는 거다. 그런 이가 재학 중 간단한 시술을 요하는 안과진료 과정에서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는다. 돌연한 암전(暗轉). 보통 사람 같았으면 거기서 무너졌을 것이다. 무너졌대도 전혀 이상할 게 없고 그를 비난할 수도 없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빛이 사라진 괴괴한 어둠을 마주해야 했던 청춘의 절망을 어찌 간섭할 수 있을까. 좌절의 늪에 빠져 있던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절에 가서 매일 3천 배씩, 한 달 동안 물경 9만 배를 올린다. 그는 여기서 심기일전해 남은 로스쿨 과정을 마치고, 초인적인 노력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다. 그러곤 안주하지 않고 판사 임용에 도전해 뜻을 이룬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소설이나 영화적 상상력이라 해도 지나치다 싶은 내력을 가진 이가 있다니, 그를 만나러 가면서 나는 내 마음의 매무새를 매만져야 하는 경건함마저 느꼈다. 김동현 수원지법 판사가 그 주인공이다.


[ 김동현 판사 ]

부산과학고와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연세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2015년 제4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하고 2017년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2020년 10월 법관에 임용돼 수원지법 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소설가 김훈은 어떤 이의 행색이나 외모에서 그의 직업이 쉬이 노출된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했다. 직업적 노동에 그의 삶이 매어 있는 방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반 정도만 수긍하는 편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직업을 신성하게 자부할 권리가 있고 그것을 성실히 수행하는 과정에서 특유의 체화된 스타일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생 흙을 만져온 도공이나 나무를 만져온 도편수에게서 흙과 나무의 기운이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일 테다. 김동현 판사에게서 나는 대번에 반듯하면서 온유한 태도를 읽었는데, 그것은 응당 말과 법을 다루는 율사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단정한 기품이었다. 그런데 그 기품은 부드러움을 품고 있는 것이었다. 날카로운 이(tooth) 사이에 부드러운 혀를 감추고 있는 사람의 입처럼.

그는 인터뷰 장소인 도심 카페까지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나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이가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비장애인에게는 매우 평범하면서도 사소할 그 일상 행위를 그가 어떻게 실행하는지부터가 궁금했다.


“시각장애인 생활이동지원센터에서 지원해주는 콜택시가 있고 서울시가 비용을 보조해주는 바우처 택시도 있어요. 보통 그런 걸 이용하는데, 이게 연결이 안 될 때는 카카오 택시를 타야 해요. 오늘은 연결이 잘 안 돼 카카오 택시를 불러서 타고 왔어요. 앱으로 신청하고 주소를 찍어주고 기사님께 전화해서 도착하면 경적을 울려달라고 하죠.”

시각이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감각이 대체하는 이 불가피한 효율은 경이로우면서 애틋하다. 알다시피 그가 졸업한 카이스트는 이공계 국가 인재를 키우는 과학전문 국책대학교다. 그도 처음에는 과학자를 꿈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대학원 진학에 실패하고 몇 군데 시도했던 취업도 뜻대로 안 되어 방황을 하다가 군대를 다녀온 후 법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로스쿨에 진학하게 된다. 그러고 학업에 매진하던 중 의료사고를 당하게 된다. 처음 실명 했다는 걸 알았을 때의 기분은 '이제 내 삶은 끝났구나'라는 절망감이었다고. 빛이 송두리째 사라진 순간의 그 막막함을 범인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과학자를 꿈 꾸다가 로스쿨 진학
안과 시술 중 의료사고로 시력 잃어


“내 인생은 끝났구나” 절망감 속
절에서 한 달간 하루 삼천 배 수행

눈물이 멈추었을 때 마음에 평화가…


학교 복귀했지만 낯설고 막막
도우미로 나선 친구들 열정에 응답

도움만 바랄 수 없어 자립에 매진


나에게 어둠이란 ‘일상’
사건 대할 때는 언제나 평상심 유지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불자였던 어머니의 권유로 그는 절(경북 안동 유화사)에 가서 일일 삼천 배 수행에 들어간다. 그러길 한 달. 수행 중 그는 일주일을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눈물을 멈추었을 때 마음속 평화가 찾아왔다고. 모든 눈물은 정화의 기능을 갖고 있기 마련인데 그에게 그 폭포 같은 울음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아마도 원망이나 회한, 미련까지도 죄다 지우는,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용서와 화엄의 의미는 아니었을지. 그때 유화사 스님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육신의 눈은 잃었지만 마음의 눈을 뜨게 되었으니 마음의 눈으로 보라고. 그로부터 제법 시간이 흐른 지금,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을 그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그의 대답을 들었다.

 

“육신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시각 정보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거잖아요. 시각 정보는 직접적이고 또 자극적이구요. 그런데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다른 모든 감각을 다 동원해서 대상을 느끼고 해석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시각 정보에만 의지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다채롭고 구체적으로 타인과 세상을 받아들이게 되죠.”

김 판사의 말에 따르면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대상의 총체성을 받아들이려는 태도일 것이다. 옳고 그름을 판별해야 하는 법관에겐 어쩌면 필수적인 스킬을 그는 임용 전부터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그의 장애를 일종의 계시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스님으로부터 각별한 격려를 받은 그는 의지를 다지며 재활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학교에 복귀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막연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맙게도 도우미를 자처하는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그의 의지와 열정에 응답해 강의 시간을 함께하며 필기도 대신 해주고 식사도 챙겨주고 이동도 도왔다는 것이다. 그도 도움만을 바랄 수는 없어서 적극적으로 자립에 나섰는데, 가장 중요한 게 혼자서 이동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는 혼자서 문을 찾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도로에 나가서 주변의 소리에 반응하며 보행을 시도했다. 버스나 지하철도 타보고 환승도 해봤다. 그렇게 시각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각을 익혔나갔다. 할 수 없다고 포기했던 것들을 하나씩 하게 되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꼈단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로스쿨을 졸업하고 2015년 변시에 합격한다. 법조인이 된 이후엔 그보다 10년 앞서 법관으로 임용된 최영 판사의 조언과 독려가 큰 힘이 되었다. 실제로 그가 근무하는 수원지법에는 그의 업무를 돕기 위한 인적 물적 제반조건들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한다. 그가 판사의 평시 업무를 수행하는 구체적인 방식은 이렇다. 사건 기록을 법원 속기사가 파일로 만들면 그걸 음성으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하루 열 시간 정도씩 듣고 검토한다. 그림이나 이미지는 속기사에게 설명을 듣고, 지도는 프린트 출력 후 지형이나 위치를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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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심판사의 우측에 배석하는 2년차 신참 판사로서 그가 맡았던 사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무엇인지 물었다.

 

“건물주가 수개월 동안 월세를 내지 못한 상가 임차인에게 퇴거를 요구하는 소송이었는데요. 법률적으로 보면 건물주에겐 아무런 하자가 없어요. 계약 내용에 의거해서 임차인에게 나가달라고 요구한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면밀히 들여다보니까 ‘권리남용’을 적용할 여지가 있더라구요. 권리남용은 어지간해서는 잘 안 받아주는 법리인데, 저는 그 개념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았고 임차인을 배려해 원고 측의 청구를 기각했죠. 사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코로나때문에 수입이 없었거든요. 고맙게도 건물주도 판결에 수긍을 해줬어요.”

선량한 마음과 번뜩이는 기지가 만났을 때 어떤 명 판결이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와 연세대 로스쿨 동기이자 변시 동기인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변호사는 로스쿨에서 그를 도왔던 특급 도우미 중 하나였는데, 율사로서 김동현 판사가 가진 인간적 자질 중 뛰어난 걸로 성실함과 평정심을 꼽았다.

 

“동현이는 사안을 대충 넘기지 않고 구석구석 보는 성실함이 있고 사건에 감정적으로 휘말려서 분노하거나 동정하는 법이 없이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죠.”

김 판사는 현재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다. 주5일 양재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해 수원지법으로 출퇴근한다. 소요 시간은 출퇴근 각각 1시간 10분 정도. 비장애인도 힘든 출퇴근길 강행군을 너끈히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주말에는 주로 운동을 하거나 지방에 사는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고. 특히 그는 마라톤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쇼다운(탁구와 비슷한 스포츠로 공이 테이블에 굴러오는 소리를 듣고 배트로 쳐서 상대편 골 포켓에 넣으면 득점을 하는 방식)이라는 운동에도 심취해서 2019년에는 국가대표로 선발돼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고 한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를 묻자 김 판사는 얼굴을 붉히고 수줍게 웃으며 (지금 만나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중간에 그에게 도발적으로 "당신에게 어둠이란 어떤 것이냐"고 물었는데, 그는 담담히 "일상"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어떤 어둠에는 희망의 농도가 섞여 있음을 인터뷰를 마칠 즈음 알았다.


김도언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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