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깎아내리는 원인 중 하나가 '법원이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인사 때마다 불거진 '코드 인사' 논란은 재판과정과 판결에 불신을 초래했다. 사법행정의 민주성을 강화하겠다며 도입한 '법원장 추천제'도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오히려 대법원장의 권한만 강화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연루 법관에 대한 뒷북·보복성 징계는 법관 사회를 더욱 갈라놓았다. 한 부장판사는 "예측 가능해야 하는 법원 인사와 징계절차 등에서 대법원장이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듯한 외관이 형성돼 일선 판사들이 대법원장 눈치를 보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 이런 현실에 낙담해 법원을 떠나는 판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 '인기투표'가 된 법원장 추천제 = '(나를) 꾸욱 눌러주세요.' 올해 법관 정기인사에 앞서 A법원에서 진행된 법원장 추천 후보군 선출을 앞두고 B후보는 이런 표현이 담긴 소견문을 판사들에게 돌렸다.
비슷한 시기 법원장 후보 추천 과정이 이뤄지고 있는 C법원에서는 '더이상 (판사들이) 몸을 갈아넣지 말자. 야근이 당연시 되는 것을 지양해야 된다'는 취지의 소견 발표도 나왔다. D법원에서는 법원장 후보 추천을 앞두고 수석부장판사가 판사들에게 돌아가면서 식사를 해 선거운동을 한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고 수평적인 사법행정을 펼치겠다며 도입한 법원장 추천제가 사법행정의 민주성을 강화하기보다 인기투표로 전락해 법원을 선거판으로 몰고 있다"면서 "사법부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원장 등 사법행정 책임자들의 유능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이런 식이면 법관 사회 내부만 분열시키고 판사들의 자긍심만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법원장 추천제가 실시된 한 법원에서 판사들이 뽑은 후보자가 아닌 다른 법관이 법원장으로 보임되면서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대법원은 "일부 후보자의 동의 철회와 사정 변경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지만, 뒷말이 무성했다.
한 판사는 "예전에는 원칙적으로 기수 등을 토대로 법원장 발령을 냈지만, 지금은 법원마다 3명 안팎을 후보로 추천받아 대법원장이 이 가운데 한 명을 고르는 방식이 되면서 대법원장의 권한이 오히려 더 세졌다"고 했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통해 민주적 사법행정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득표하기 좋은 자리인 수석부장판사와 지원장 등에 대법원장 등이 원하는 사람을 미리 앉혀 사실상 사전 밑작업을 해놓는다는 의심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도 나온다.
법원장 추천제, 인기 투표로 전락
오히려 내부 분열까지
직무 관련 무죄 판결받은 법관 징계 조치에도
뒷말 무성
법관 징계위 구성의 편향성 싸고
공정성 시비도 이어져
◇ 편향된 '법관징계위' 지적도 =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가 올해 1월 신광렬·조의연 부장판사에게 각각 감봉 6개월과 견책 처분을 의결하자 법원 내부에서 "누가 누굴 징계한다는 말인가"라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이들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연루돼 기소됐지만 모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게다가 2019년 5월 이들에 대한 징계가 처음 청구된 지 2년 7개월 만에야 징계 결정이 이뤄져 뒷북·보복성 징계라는 지적도 나왔다.
여기에 법관징계위 구성의 편향성도 도마에 올랐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서 무죄가 된 판사들을 탄압하는 악행을 그만둬야 한다'는 글이 판사들 사이에서 퍼졌다. 이 글을 쓴 사람은 "김 대법원장이 2019년 3월 김칠준 변호사, 김선택 고려대 로스쿨 교수를 외부위원으로 구성했다"며 "법관징계위원장인 민유숙 대법관은 김 대법원이 처음 임명한 대법관이고, 법관위원인 김문석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과 가족 간 교류를 할 정도로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김칠준 변호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지난 정권 인사들의 변호를 맡았고, 김선택 교수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관련 논문을 통해 법관 탄핵 가능성에 대해 상세하게 밝혔었다.
한 부장판사는 "특정 성향의 위원들로 징계위를 구성하면 어떤 결론이 나오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특히 공정의 외관이 중요한데, 이 사안에 대해서는 시각 차이가 뚜렷할 수 있어 징계위원을 정하는 데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 반복되는 '코드 인사' 논란 = 무엇보다 법원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은 반복되는 '코드 인사' 논란이다. 올 4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법관 인사에서 관례를 깨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법원행정처에 해명을 요구하는 공문을 공식 발송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질 정도다. 법관대표회의는 공문에서 △2년 임기 관행과 다른 일부 법원장의 3년 연임 문제와 지원장으로 근무한 법관을 재차 지원장에 임명한 문제 △지원장 등 기관장 근무를 마친 일부 법관이 서울중앙지법으로 곧바로 발령이 난 문제 △인천지법원장 임명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시행되지 않은 문제 등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해명을 요구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흐른 데에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직후부터 이어진 코드 인사에 대한 불만이 터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법원장 임기는 보통 2년이지만 김 대법원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민중기 전 원장은 국내 최대 규모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에서 3년이나 법원장으로 재직했다. 후임인 성지용 원장은 춘천지법원장 근무 1년 만에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보임됐다. 성 원장은 서울시 선관위원장을 겸임하며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올해 서울시장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관리했다. 또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재판을 맡은 김미리 부장판사는 4년 동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1심을 맡은 윤종섭 부장판사는 6년 동안 서울중앙지법에 유임해 논란이 법조계를 넘어 정치권까지 확대됐다.
2018년에는 헌법재판관 인선을 두고 '인사거래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노무현정부 청와대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한 이석태 변호사를 김명수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하고,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김 대법원장의 측근인 김기영 부장판사를 헌법재판관 후보로 추천하면서 벌어졌던 논란이다. 양측은 두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만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선정했다는 입장이었지만,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 판사는 "누가 봐도 거래를 통해 교체 임용한 것이 명백해 보였고, 굳이 그렇게까지 인사를 해서 법원의 위신이나 신뢰도를 떨어뜨릴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며 "정당하게 자기 측 사람을 임명해도 본래의 권한이니 누가 뭐라할 사람도 없었을 텐데, 한 번 더 꼬아 인사를 함으로써 정치권과 야합한다는 인상까지 주는 게 참으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잇따른 코드 인사 논란은 재판의 공정성 등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한 부장판사는 "객관적인 인사는 재판절차는 물론 판결의 공정성과 투명성, 신뢰를 높이는 데 중요한 토대"라며 "법관들도 문제를 제기하는 인사 패턴이 이어지면 사법부 신뢰 회복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법원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특정 사건 판결 등에 대한 정치권이나 여론 등 외부의 부당한 공격에 단호히 대응하는 것도 필요한데,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는 물론 일선 법원 등 어느 곳에서도 대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법원이) 안팎으로 다 무너지는 형국"이라 꼬집었다.
특별취재팀=박수연·한수현·이용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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