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게시된 공개변론 영상을 둘러싸고 초상권 분쟁이 벌어졌다. 해당 사건의 피고인이 자신의 동의를 받지 않고 대법원이 변론 영상을 무단으로 게시했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림 대작(代作)' 논란에 휩싸였던 가수 조영남 씨와 함께 화투 그림 관련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2020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A 씨는 지난 2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대법원이 조 씨와 자신에 대한 상고심 사건을 심리하기 위해 2020년 5월 공개변론을 열었는데 당시 공개변론을 촬영한 영상을 무단으로 대법원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게재해 초상권과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당시 공개변론은 인터넷 등을 통해 생중계되기도 했다. A 씨는 국가에 3100만 원의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서부지법이 심리하고 있다(2022가단211204).
A 씨는 2016년 조 씨와 함께 사기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10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2018년 8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2020년 6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이 최소한의 도리·의무 져버려" = A 씨 측은 "대법원은 (공개변론) 동영상에서 A 씨의 이름만 들리지 않게 처리했을 뿐, A 씨가 피고인석에 앉아 있거나 발언하는 영상 등을 낱낱이 공개해 재판결과와 무관하게 오명과 낙인을 받게 했다"며 "공인이 아닌 A 씨에 대해선 아예 촬영을 하지 않거나 적어도 모자이크 처리나 목소리를 알 수 없도록 하는 등 초상권과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조치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국민 권리를 보장해야 할 대법원이 A 씨를 대법원 홍보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켰다"며 "A 씨는 대법원의 초상권 등 침해행위를 적극 저지하고 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소송을 낸 것"이라고 했다.
◇"법규 근거로 진행된 것" = 대법원 측은 A 씨가 소송을 제기한 후 해당 공개변론 영상에서 A 씨의 얼굴과 이름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한편 불법행위가 아니라며 A 씨 측이 제기한 소송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대법원 측은 '재판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대법원 변론 또는 선고를 인터넷, 텔레비전 등 방송통신매체를 통하여 방송하게 할 수 있고, 변론 또는 선고에 관한 녹음, 녹화의 결과물을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한 대법원에서의 변론에 관한 규칙 제7조의2 제2항을 근거로 법규에 근거해 진행된 일이라는 입장이다.
또 "대법원은 대체적으로 △국민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 △전국민의 관심이 높은 사건 △사회 이슈화 된 사건 등에 대해 변론을 열어 사건을 심리하고 필요한 경우 방송을 통해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재판과 사법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고, 투명하고 열린 사법을 지향함으로써 국민의 사법에 대한 신뢰를 증진하고 있다"며 "이 사건은 검찰 기소 전부터 언론에 방송돼 국민 관심이 높은 사건이었다. 특히 1심에서는 유죄,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이 선고돼 한층 더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에 대법원은 필요에 따라 공개변론을 한 것이지 대법원의 홍보를 위해 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피고인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대법원의 홍보 도구로 전락”
대법원
“필요성 인정되는 경우 변론·선고 영상물 공개 가능”
피고인 동의없이 영상 게재
개인정보보호 여부도 쟁점으로
◇ '개인정보보호 판단 기준' 마련 여부 쟁점 = 이번 사건에서는 개인정보보호 문제도 쟁점이 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 제14조의2 제1항은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3항 또는 제17조 제4항에 따라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이용 또는 제공하려는 경우 △당초 수집 목적과 관련성이 있는지 △개인정보를 수집한 정황 또는 처리 관행에 비춰 볼 때 개인정보의 추가적 이용 또는 제공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있는지 △정보주체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지 △가명처리 또는 암호화 등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했는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 같은 조 제2항은 '개인정보처리자는 제1항 각 고려사항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개인정보보호법 제30조 제1항에 따른 개인정보 처리방침에 미리 공개하고, 개인정보 보호책임자가 해당 기준에 따라 개인정보의 추가적인 이용 또는 제공을 하고 있는지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 측은 "개인정보보호법상 공공기관은 법원의 행정사무를 처리하는 기관만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법원은 여기에서 말하는 공공기관에 포함되지 않고 법 적용대상도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A 씨 측은 "(대법원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아무런 기준도 마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 1심을 맡고 있는 유창훈 서울서부지법 민사12단독 부장판사는 지난 5월과 7월 각각 한 차례씩 변론기일을 진행했고 오는 9월 23일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