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녀는 성년이 된 후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6개월까지 한정승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부모로부터 상속받는 재산보다 물려받는 빚이 더 많은데도 제때 한정승인 등의 조치를 취하지 못해 빚을 대물림하는 사례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장관 한동훈)는 9일 이같은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상속인인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후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6개월 내에 한정승인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성년이 되기 전에 이 같은 사실을 안 경우라고 하더라도 성년이 된 날부터 6개월까지 한정승인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원칙적으로는 개정법 시행 이후 상속이 개시된 경우부터 적용하되, 법 시행 전 상속이 개시됐더라도 상속 개시를 안 지 3개월이 지나지 않았다면 개정법을 적용하도록 했다.
정재민(45·사법연수원 32기)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상속재산보다 상속채무가 더 많은 경우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을 하는 것이 상속인에게 가장 유리함에도 법정대리인이 제때 조치를 취하지 않아 미성년자가 부모 빚을 떠안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며 "이들이 성년이 된 후 스스로 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부모가 사망하면 상속인은 빚과 재산을 모두 승계하는 '단순승인', 상속재산 범위 내에서만 부모 빚을 갚는 '한정승인', 상속 재산과 빚 둘 다 포기하는 '상속포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상속받는 재산보다 떠안아야 할 빚이 더 많다면 상속을 포기하거나 한정승인을 택하는 게 상속인에겐 유리하다. 문제는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이 정해진 기간 안에 한정승인이나 상속 포기를 하지 않아 부모의 빚을 전부 떠안는 경우가 생긴다는 점이다.
현행 민법 제1019조 1항은 '상속인은 상속개시있음을 안 날로부터 3월내에 단순승인이나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같은 조 제3항은 상속인이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없이' 제1항의 기간내에 알지 못하고 단순승인을 한 경우에 한해 그 사실을 안 날부터 3월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한정승인 등을 제때 못해 사망한 부모 빚을 떠안아 파산 신청을 한 미성년자 사례가 2016년부터 5년 80건에 달하는 등 미성년자 보호망 부재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제기됐다. 대법원은 2020년 11월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후 비로소 부모로부터 승계받은 상속채무가 상속재산보다 많음을 안 경우에도 새롭게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없다는 전원합의체 판결(2019다232918)을 하면서 이런 자녀의 처지를 현행 민법 해석으로는 구제할 수 없다며 입법적 해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당시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알게 된 때'를 '법정대리인이 알게 된 때'로 해석하면서,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이 상속받을 재산보다 빚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채무 상속을 막지 못했다면 미성년자가 성인이 됐더라도 상속은 유효하므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무부는 조만간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한 장관은 "이번 '빚 대물림 방지' 법안은 지난 정부부터 추진돼 온 것을 이어가는 것으로, 미성년자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며 "법무부는 정치나 진영논리가 아니라 오직 '국민의 이익'만을 기준으로 좋은 정책은 계속 이어가고 나쁜 정책은 과감히 바꿀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