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8개월 째이다. 경영책임자 처벌을 의식해서인지 산업현장에서 느끼는 기업의 안전의식은 이전보다 높아진 것으로 보여 법시행의 긍정적 효과는 있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10대 건설사의 산업재해 건수 및 사망자 수는 2017년 758건(42명), 2018년 1207건(46명), 2019년 1309건(40명), 2020년 1426건(36명), 2021년 1519건(40명), 올해 상반기 802건(19명)에 이르고 있어 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 또한 있다 하겠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고용노동부의 수사업무 부하도 만만치 않아 보이고, 법 해석을 통해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검찰의 고민도 상당한 듯하다. 기업들 역시 과중한 부담을 호소하고 있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의 개정을 요구하는 경영계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방안을 마련하여 고용노동부에 전달했다고 하는데, 그 개정 방안에는 ‘안전보건최고책임자가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해 최종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경영책임자로 본다’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대표이사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안전보건최고책임자를 경영책임자에 포함해 달라는 기업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경영책임자가 지켜야 할 안전보건관계법령의 종류를 명확히 하는 등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하겠지만, 시행령에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은 법률의 위임이 없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 역시 최근 법제처에 경영책임자의 범주를 시행령에 명시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요청 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노동계의 비판이 있자 경영책임자 관련 내용을 시행령에 규정하지 않는다는 기존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법 시행에도 가시적 성과 없다면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야
땜질 처방으로 생명 구할 수 없어
예방시스템 구축에 지혜 모아야
법 시행령을 둘러싼 이와 같은 논란의 근본원인은 ‘법’에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입법과정에서 논란이 많았고, 법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경영책임자등의 범주, 의무의 구체적 내용, 안전보건관계법령의 범위 등을 둘러싸고 모호성과 불확실성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목적은 ‘경영책임자 처벌’이 아니라 ‘산업재해 예방’이다. 산업재해 예방은 노사 간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는 영역이 아니라 산업현장에서의 유해,위험요인을 제거하고 사고의 발생을 방지하여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영역이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영역은 노사가 입장을 달리하거나,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을 내세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법의 궁극 목적은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음에도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법을 고쳐야 한다. 법을 고치지 못하니 시행령이라도 고쳐 보자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생명을 구할 수 없다. 본류를 그대로 둔 채 지류만 정비한다고 하여 홍수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가 줄어들지 않고 사망사고가 계속하여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본류인 법을 방치한 사람들에게 있다. 지금이라도 다수 관계자들의 주관적 입장을 벗어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객관적 산업재해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노와 사, 도급업체와 수급업체 등 산업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산업현장의 안전을 지키는 주체로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체계적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그 시행령과 시행규칙,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등 산업현장의 안전 관련 법률 전반을 들여다보고, 입법의 체계적 정당성(Systematische Gerechtigkeit)을 고려하여 법체계 전반을 재정비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