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2020년 5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 씨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고 변론 과정을 담은 영상을 대법원 홈페이지 등에 게시했다. <사진=대법원 홈페이지 캡처>
대법원이 형사사건 당사자의 얼굴과 실명이 노출된 상고심 공개변론 영상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인터넷에 게시한 것은 초상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의 상고심 공개변론 영상 게시와 관련한 초상권 침해 여부가 문제돼 판결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림 대작(代作) 논란에 휩싸였던 가수 조영남 씨와 함께 화투 그림 관련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가 2020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A 씨는 지난 2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대법원이 조 씨와 자신에 대한 상고심 사건을 심리하기 위해 2020년 5월 공개변론을 열었는데 촬영된 공개변론 영상이 대법원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게재돼 초상권과 인격권을 침해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공개변론은 대법원 홈페이지 등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기도 했는데, A 씨는 이후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3100만 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얼굴 모자이크 처리해도
국민의 알권리 보장에는 지장 없어
이 사건 1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민사12단독 유창훈 부장판사는 지난 23일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유 부장판사는 대법원 홈페이지 등 인터넷에 게시된 공개변론 영상이 재판 공개의 원칙에 비춰 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A 씨의 동의가 없는 영상 게시는 그 방법에 비춰볼 때 초상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유 부장판사는 "공개변론 영상을 게시한 조치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변론의 전체 내용에 비춰볼 때 A 씨에 대한 초상권 보호조치를 하더라도 알 권리 보장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 씨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은 채 공개변론 영상을 게시한 것은 객관적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국가는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A 씨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책임으로 위자료 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사인의 재판과정 여과 없이 공개는
정당성 인정하기 어려워
판결에 대한 법조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재판공개의 원칙과 개인정보 보호 원칙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초상권 침해 여부가 달리 판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2심과 3심에서 어떤 판단이 이뤄질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