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부푼 마음을 안고 미래를 설계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획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점점 희미해져 갈 뿐이다. 내면의 능력이나 외부 사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처음의 구상은 저 멀리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간다.
반면, 우연한 선택이나 부질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예기치 않게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별다른 생각 없이 한 어떤 말이나 행동이 뜻하지 않은 시점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나 매체를 거쳐 전달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깊은 감명을 주기도 한다.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라는 문구는 1942년에 개봉한 영화 〈카사블랑카〉에 나오는 명대사 중 하나이다. 이 대사가 탄생한 배경을 들었을 때,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각본에 없던 이 대사는 남자주인공이 촬영을 기다리며 카드놀이를 하던 중 상대방이 자신의 패를 보려 하자 “너를 지켜보고 있다(Here’s looking at you, kid)”며 핀잔을 줬는데, 정작 실제 촬영 때는 이 말이 멋있게 느껴진 나머지 여주인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장면에서 이 대사를 읊었다는 것이다.
이 대사 내용은 오래전 영국의 선술집에서 술을 마실 때 동석한 사람이 돈을 훔쳐 갈까 걱정해야 했던 그 당시 사람들이 “허튼 짓 마라.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으니까”라며 건배하던 관습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게다가 영화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수입되는 과정에서 영화 속 장면 분위기에 맞춰 우리가 아는 명대사로 바뀌었다는 후일담도 있다.
지금의 공수처는 여러 위기적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고위공직자의 부패 척결과 검찰권 견제라는 숙명을 안고 힘들게 탄생한 공수처는 출범 초기부터 이른바 ‘황제 조사’ ‘위법 압수수색’ ‘통신사찰’ 논란 등으로 비판을 받았다. 선의로 시작한 일들이 내·외부적 사정이나 환경 때문에 부당하게 공격받는다는 거라고 억울해할 수도 있으나 그 모든 것이 공수처가 더욱 인권 친화적 수사기관으로서 올바로 나아갈 수 있도록 채찍질을 해 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공수처가 현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한 걸음씩 그 소임에 충실할 때, 설령 그것이 지금은 쓸데없는 일이라 여겨지더라도 언젠가는 그러한 노력이 공수처의 전환점을 위한 예기치 않은 선물이 될 것이다. “공수처를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로부터 “공수처의 눈동자에 건배”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예상균 검사 (공수처 인권수사정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