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치 발포 비타민 같았다. 봉천동에서 올 초부터 책방을 운영하는 김소리 변호사(34·변호사시험 4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가 운영하는 책방 이름은 밝은 책방, 평범한 상가주택 2층에 위치한 20평 남짓의 규모였는데, 책방 이름과는 달리 벌써 빛이 바랜 듯한 간판이 지나치리만큼 소박했다. 독립서점들이 감각적으로 디자인해서 개별적 취향을 뽐내듯 내거는 간판과는 사뭇 달랐다.
[ 약 력 ]
고려대 미디어학과와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2015년 제4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 법무법인 이공 등에서 근무하다 올해 초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독립서점 '밝은책방'을 열었다. 책방 한켠에 법률사무소 물결을 함께 운영 중이다. 매달 법률신문 '책 읽어주는 변호사'를 연재하고 있다.
김소리 변호사는 어딘지 책방 간판을 닮아 있었다. 이름처럼 밝게 빛나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나 화장기 하나 없는 수수한 민낯에 심지어는 올이 듬숭듬숭 삐져나온 낡은 스웨터 차림이었다. 대학 동아리방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과후배 같은 인상이었달까.
책방 진열대를 둘러보니 '노동권', '주거권', '여성인권', '장애인권', '소수자인권', '아동인권', '동물권', '환경권' 등 인간과 생명의 기본권을 다루고 있는 책들이 카테고리별로 꽂혀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김 변호사의 관심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이코닉한 셀렉션이었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했다.
"부모님 모두 호남분들이고 평범한 분들이었어요. 서민이었다고 할까요. 저는 태어나자마자 서울에 올라와서 서울 사람으로 자랐어요. 아주 어렸을 때는 좀 여유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런저런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IMF 때 제법 타격을 입은 이후로는 좀 어렵게 자랐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젊었을 때 음악을 하셨대요. 좀 자유로운 영혼이었고요. 사업을 접은 후에는 음악을 가르치는 일을 하시기도 했는데, 그런 자유롭고 예술적인 기질이 확실히 저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그런데 당신은 그렇게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면서도 저에게는 모범적이고 반듯하고 안정적인 삶을 권장하셨어요. 그에 따라 단속도 하셨고요."
어떤 면에서 김소리 변호사 아버지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의 또 다른 가역반응일 수도 있다. 무슨 말이냐면 당신이 자유롭게 살아온 삶의 모험이 치른 곤경을 잘 알기에 하나뿐인 딸아이에겐 절절하게 삶의 안정을 도모하기를 바랐을 터. 그 아버지는 그래서 김소리 변호사가 서울대 로스쿨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엄청나게 기뻐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시험 합격 후 로펌에 들어가서 공익사건 포함 다양한 사건을 맡으며 일하는 동안 점점 싸움꾼이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일단 멈춤'을 선언하고 몇 달 휴식을 취하면서 평소 꿈꿔온 책방 오픈을 준비했다고 했다. 여러 군데 독립서점을 견학하고 책방 운영자들의 창업일지와 책 등을 빠짐없이 찾아 읽고 창업 교육을 하는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가했다고 한다. 그런 섬세한 준비 끝에 봉천동에 책방을 열면서 다시 변호사 업무도 재개했다. 민변 활동을 같이하면서 만나 서로 깊은 신뢰가 싹튼 류하경 변호사와 2인 로펌사무실 '물결'을 책방 자리에 오픈한 것(류하경 변호사는 민변에서 노동담당으로 한국전력 협력업체 직원 고 김다운 씨 감전 사망사고 등 여러 차례 우리 사회 대표적인 노동사건을 맡은 견결한 율사다).
그런데 로펌은 기본적으로 속세의 진창으로 들어가는 현실 속 공간이고 책방은 낭만과 신화와 몽상의 이상적 공간이다. 아버지의 삶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분명 김소리 변호사에겐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의 모습이 고루 관찰된다. 언제든지 불화할 수 있는 두 가지 면목을 그는 어떻게 조화롭게 끌고 갈 수 있을까.
"사실 그게 참 어려운 과제이긴 해요. 균형을 잡긴 해야 하는데 아직은 그 방법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변호사로서 사건을 맡아 그것에 몰두하다 보면 책방 일과는 결이 많이 다르니까 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책방 일만 하고 싶긴 한데, 생활이나 삶을 위해서는 변호사업을 안 할 순 없고요. 앞으로 계속 해법을 찾아보려고요."
싸움꾼 되어가는 자신을 보고 ‘일단 멈춤’
책방 오픈
문학 좋아해
소설가·시인 초청 프로그램도 해보고 싶어
소수자 · 약자 권리 확장이
우리 모두의 삶이 나아지는 길
변호사 일과 책방 일 균형 잡기 쉽지 않지만
해법 모색
김 변호사의 말속에 책방에 대한 애정이 잔뜩 묻어난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책방 영업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지난 1년간의 밝은 책방의 영업성적표를 물었다. 창업 당시 계획했던 독자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문화프로그램들의 실행률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궁금했고(김 변호사는 창업 직후 법률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노동과 인권 분야 등에서 의미 있는 판결문을 시민들과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음, 사실 결산을 하면 적자인데요, 생각했던 것보다 그 폭이 많지 않아요. 변호사 수입으로 그걸 메울 수 있기도 해서 저는 이런 결과에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그리고 계획했던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지금 돌아보면 90퍼센트 이상은 실행했던 것 같아요. 참여자들의 반응도 좋았고요. 다만 '의미 있는 판결문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는 프로그램'은 제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정기적으로 지속하진 못했어요. 제가 직접 진행해야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데, 그런 걸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고 할까요."
끝날 기미가 없어 보이는 코로나로 인해 여전히 대외적 활동이 위축된 사회적 분위기에서 작은 독립책방이 자체 기획한 프로그램을 90퍼센트 이상 실행했다면 정말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다. 잘 웃으면서 간혹 수줍어하기도 하는, 풋풋해 보이기만 하는 김소리 변호사에겐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당찬 결행력과 강단이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는 타인이 불편해할까봐 그런 내실을 부러 숨기는 것처럼도 보인다.
"책방은 콘셉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나름대로는 차별화하는 전략으로 다른 서점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분들, 예를 들면 검사님 같은 법조인을 모시려고 했어요. 사실 저도 문학을 정말 좋아해서 유명한 소설가나 시인님들도 모시고 싶은데, 초대를 해도 안 오실 것 같고(웃음)."

30대 중반으로 막 접어드는, 아직은 세상으로부터의 무한한 환대의 가능성 앞에 서 있는 변호사로서 마음만 먹으면 김소리 변호사가 누릴 수 있는 것은 많다. 내 눈에 확실히 김소리 변호사의 삶은 변호사로서도 그렇고 그 나이 또래의 자연인으로서도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보여지진 않는다. 성스러운 삶이라고까지 말할 수 없을진 모르지만 세속적인 가치를 좇는 삶이 아닌 것도 분명해 보인다. 그가 한 인간으로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삶이 다하는 날까지 지켜내고 싶은 가치 혹은 태도는 무엇일까. 곰곰 생각한 끝에 김 변호사가 내놓은 답은 이랬다.
"저는 소수자나 약자들의 권리를 확장시키는 것이 우리 모두의 삶이 나아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것과 관련해서 제가 지키고 싶은 건 아무래도 우리 공동체에 대한 기여, 사회에 대한 기여 같아요. 지금과는 다른 일을 해도 그걸 놓을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공동체에 대한 기여는 일종의 결과적 행위이고, 그 바탕에는 '따뜻함'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따뜻함이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아요."
간명하고도 자심한 그 말에서 분명 뭉클한 감동이 일었지만, 나는 그 감상을 얼른 돌려세우기 위해 다시 김소리 변호사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쪽을 택했다. 수많은 이해가 상충하고 이익이 엇갈리는 현대 사회에서 모든 변호사들이 공익사건만 맡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당연히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그를 대리하는 존재다. 그게 곧 변호사라는 직업의 윤리가 되기도 하는 대전제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사회적 정의나 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면서까지 자신의 세속적 영화나 영달에 몰두하는 이들도 있다. 강력한 네트워크를 내세워 반윤리적인 자본이나 권력을 거드는 로펌이나 변호사도 있다. 김소리 변호사의 눈에 그들은 어떻게 보일까.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었을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분들이 그런 힘을 갖게 되고 그런 지위를 갖고 그렇게 누리는 것이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아니라는 거지요. 그 자리에 서기까지 우리 사회로부터 받은 것들이 분명 있는데, 하다못해 장학금 같은 거라도 받으면서 공부했을 텐데, 자기 혼자 뛰어나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 맞지 않죠. 이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돌려주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김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아서 진행하는 동안 가장 뿌듯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자신이 의뢰인을 위해 쓴 고소장과 민사소장, 의견서 등을 읽은 의뢰인과 그 가족분들이 운 적이 있었다는 얘길 들려준다. 자기 이야기를 잘 듣고 잘 표현해줬다면서. 김 변호사는 그때가 소송의 결과와 상관없이 가장 뿌듯하고 흐뭇했단다. 이번에는 삶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나 닮고 싶은 선배 법조인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묵묵히, 소리 없이, 혼자서,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일하는, 알려지지 않은 여성 변호사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김소리 변호사의 이름 '소리'는 본명이고 순우리말인데,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가 '세상에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살라'는 의미로 지어줬단다. 아, 이런 신묘한 조화 속이라니. 아닌 게 아니라 섬뜩한 겨울 삭풍이 다가오고 있지만, 여기 봉천동 한켠에는 '맑고 밝은 물결 소리'가 그치지 않는 사철 봄터가 있다. 로마라는 두 살짜리 푸들이 나비처럼 두 귀를 나풀거리며 날아다니기도 한다.
김도언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