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의 사법부 등 독립기관 예산요구안에 대한 예산편성제도대한민국 헌법은 제3장 ‘국회’ 이하 제54조 제1항에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 같은 조 제2항에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라고 각 규정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입법자들은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함에 있어 헌법상 별개의 국가작용을 담당하는 사법부 등 헌법상 독립기관의 예산요구를 일정절차만 거치면 임의로 감액해 예산안을 편성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제40조를 두고 있다(국가재정법 제40조, 제6조 참조).
2. 미국의 관련 제도 및 역사미국의 경우 원래 예산안 제출 및 심의, 의결권이 모두 헌법상 의회에 있는바, 의회가 각 국가기관 별 예산요구를 일일이 취합해 심의해 왔으나 1921년 Budget and Accounting Act(BAA)라는 법률을 제정하여 의회가 수행해 오던 국가기관별 예산요구안 수렴 및 예산안 편성행위를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위임하였다.
그에 따라 예산의 주재자인 의회의 예산요구안 또한 일단 대통령에게 제출, 대통령이 취합한 예산안에 편성시킨 후 완성된 예산안을 제출받아 의회가 심의하는 것이 미국의 실무이다.
그와 같은 제도 하에서 1939년 이전까지는 미국 또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행정부가 사법부의 예산과 지출에 대해 감독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행정부가 다른 국가작용인 사법작용을 담당하는 사법부의 예산에 대한 감독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여러 재판에서 재판당사자로 이해관계를 가지는 행정부가 예산감독을 통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는 문제제기가 꾸준히 있어왔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제76차 의회 상원청문회에서 당시 법무부장관 Homer Cummings가 사법부예산을 행정부에서 독립시키는 법안에 대해 실시한 지지연설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사법부는 정부를 구성하는 큰 조직 중 하나입니다. 나는 모두가 동의하다시피 사법부가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법부는 예산과 행정기능 그리고 수많은 세부사항들과 연결된 행정기관을 보유해야 합니다. 위와 같은 행정은 행정부 소속 법무부를 통해 법무부장관에 의해 다루어져 왔던 것이나, 여러 법정에서 행정부를 상대로 이루어진 소송절차에서 스스로를 변론할 때마다, 이에 대해 늘 비정상적이었다 기억하는 것입니다. 저는 결코 이와 같은 상황과 타협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법무부장관과 법무부가, 다른 곳에 존재했어야 할 권한을 행사해 왔다고 느껴왔습니다. 그 권한은 물론 그 권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독립기관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미 법조계 전반의 지지 하에 미 의회를 통과한 후 1938. 8. 7.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삼권분립 및 사법부독립이라는 대명제 하에 연방법원의 예산과 관련된 업무 일체에서 행정부의 모든 역할을 제거하는 내용의 ‘Administrative Office Act of 1939(Act of 1939)’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Act of 1939의 제정 이후 미국정부의 예산안 ‘편성’업무는, 대통령 예하 예산안 편성기관인 OMB가 행정부 예하 기관의 예산과 헌법상 독립기관의 예산을 구분하여 행정부 예하 기관의 예산요구만을 점검하고, 연방법원 등 헌법상 독립기관이 산출한 예산요구의 경우 점검하지 않고 ‘변경 없이’ 대통령의 예산안에 포함시켜 의회에 제출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실무는 현행 미 연방법률인 31 U.S.Code §1105(b)까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3. 한국의 제도형성 과정 및 역사미국에서 Act of 1939가 공포되고 약 6여년 후인 1945년 해방을 맞이한 한국은 미군정을 거쳐 1948년 제헌헌법을 제정하였는바, 제헌헌법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삼권분립 및 사법부독립의 원칙을 받아들이면서, 예산과 관련하여서는 제3장 ‘국회’ 이하 제41조에 ‘국회는 예산안을 심의결정한다.’라고 규정하여 예산안의 심의결정권한이 국회에 있음을 선언하였다.
한편 예산안 편성과 관련하여서는 정부의 권한 등을 열거한 제4장 ‘정부’ 항목이 아닌 제10장 ‘재정’ 항목을 따로 두어 제91조에 ‘정부는 국가의 총수입과 총지출을 회계연도마다 예산으로 편성하여 매년 국회의 정기회개회초에 국회에 제출하여 그 의결을 얻어야 한다’라고 규정, 위 편성행위가 정부의 권한이라기보다는 책무인 듯한 표현이 사용되었다.
제헌국회 헌법제정회의록 및 당시 헌법제정을 주도한 유진오 박사가 간행한 헌법해의에 의하면, 당시 제헌헌법 예산조항을 둘러싼 논의의 핵심은 정부가 고의로 예산안을 지연제출하거나 제출하지 않아 회계연도 개시 전까지 의결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전년도 예산안을 실행케 할 경우 의회의 예산심의권이 침해되고 전제정치를 가능케 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 하에 따로 가예산을 의결케 하는 안 등에 대한 검토 등에 있었지, 위 ‘편성’이라는 법문에 「정부가 사법부 등 헌법상 독립기관의 예산요구를 심사해 변경할 수 있는 권한」까지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는 논의를 실시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위와 같은 제헌헌법 하에서 현행 국가재정법의 모태라 할 수 있는 구 재정법이 6. 25. 전쟁으로 국가비상상황 중이던 1951년 9월 24일 법률 제217호로 제정되었는데, 동법 제16조 단서에 재무부장관이 예산을 편성해 국무회의 의결을 얻음에 있어 ‘국회, 대법원 또는 심계원의 세출예산액을 그 요구액보다 감액할 때에는 국무회의에서 국회의장, 대법원장 또는 심계원장의 의견을 구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을 둠으로써, 미국과 정반대로, 행정부가 사법부 등 독립기관 예산을 감액할 수 있는 근거를 법률에최초로 마련하였고, 위와 같은 내용의 법률조항은 군사정권이 시작된 해인 1961. 12. 19. 법률 제849호로 제정된 구 예산회계법 제22조로 사실상 그대로 이어졌다.
3선 개헌 후 구성된 제8대 국회 회기 중이던 1971. 8. 13. 윤길중 외 78인 의원 발의로 ‘국무회의에서 사법부의 예산요구액을 감액할 때에는 국회의장 또는 대법원장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동의가 없을 때에는 예산안 제출시에 그 이유서와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한다’라는 내용의 「예산회계법」 개정안이 ‘의안번호 080020’으로 접수되었다.
해방 후 유진오 박사와 함께 헌법기초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제헌작업에 직접 참여하였고, 법전편찬위원회 위원,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총무과장 겸 법률기초과장 등을 역임한 윤길중 의원은 1971. 11. 20. 소관위원회에서 위 개정안에 대해 ‘미국같이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국가에서는 사법부의 예산은 행정부에서 소멸 또한 수정없이 형식적인 절차만 경유하여 명실공히 사법부의 독립을 이룩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본 개정법률안을 제안하는 것입니다.’라고 제안이유를 밝혔고, 소관위 회의결과 위 법안은 제78회 국회(정기회) 제9차 전체회의에 상정되었다.
그러나 1972년 10월 유신에 의하여 제8대 국회가 해산되고 의회의 모든 권한이 대통령이 운영하는 비상국무회의로 이전됨에 따라 위 법안 또한 1972. 10. 17. 비상국무회의로 이관되었다. 이후 사법부 예산과 무관한 별개의 정부 발의 예산회계법 개정안이 1972. 12. 29. 제12회 비상국무회의를 통과하여 1972. 12. 30. 법률 제2419호로 공포되었고, 이후 1973. 1. 12. ‘위 개정안이 법률로 공포되었으므로 1972년도 처리예정 비상국무회의 안건 중 예산회계법 개정법률안을 폐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재무부장관 명의 공문에 의해 ‘의안번호 080020 개정안’은 역사의 무대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에도 사법부의 독자적인 예산편성권한에 대한 논의 등이 꾸준히 있어왔으나, 기존 정부들의 ‘헌법개정을 통해서만 현행제도를 변경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반론(이하 ‘헌법개정론’이라 한다)에 막혀 난항을 겪어왔고, 2007년 국가재정법을 제정하면서 제40조 제1항에 ‘정부는 독립기관의 예산을 편성함에 있어 당해 독립기관의 장의 예산에 대한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여야 하며’라는 내용을 들이기는 하였으나, 그와 상반되는 취지의 기존 조항이 사실상 그대로 유지됨에 따라 실무상 사법부의 예산은 여전히 행정부의 감독 하에 놓여있다.
현행제도는 헌법개정이 아닌 ‘법률개정’으로도 변경하는 것이 가능한바, ‘정부는 사법부가 산출한 예산요구를 변경 없이 예산안에 포함시키는 방법으로 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 헌법에 명기된 대로 국회로 하여금 이를 심의하게 하고, 이견이 있을 경우 정부의 의견을 국회에 제출해 국회의 판단을 받을 수 있게끔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에 대해 다시금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4. 헌법개정론의 문제점‘편성하다’라는 문언의 사전적 의미 중 제1의미는, ‘엮어 모아서 책·신문·대오 따위를 만들다.’이다.
‘편성하여’라는 법문이 한국처럼 헌법에 있던, 미국처럼 법률에 있던 그 ‘편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문언적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의 역사와 제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양국 공히 국가예산에 대한 심의·의결 권한은 헌법상 의회에 있는바, ‘편성’이라는 법문이 의미하는 행정부의 예산안 편성행위의 본질은 ‘의회의 심의권한 행사 전 단계’에서 의회의 심의대상을 상정하는 행위라는 점, 헌법상 삼권분립 및 사법부독립 원칙이 각 헌법에 명기되어 있다는 점에서 양국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1951년 재정법의 제정 이후 70여 년 동안 행정부가 행정부 예하기관 뿐 아니라 헌법상 독립된 국가사법작용을 담당하는 삼권분립기관인 사법부 등이 독립된 국가작용의 필요에 따라 산출한 예산요구까지 심사하여 변경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미국과 정반대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정부 예하기관들의 예산요구 뿐 아니라 독립된 국가작용을 담당하는 헌법상 독립기관들이 각 독립된 국가작용의 필요에 따라 산출한 예산요구까지 심사해 변경할 수 있게끔 한 현행 제도가 ‘헌법상 결단’에 의한 것이므로 법률개정으로는 바꿀 수 없다는 헌법개정론은, 헌법 제54조 제2항 ‘편성’ 개념을 그와 달리 해석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입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특히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 국가의 사법작용을 담당하는 사법부와의 관계에서 ‘편성’개념을 이와 같이 해석할 경우 삼권분립 및 사법부독립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입장을 이미 1930년대에 정립한바 있고, 한국 또한 사법부독립 등 원칙의 적용에 있어 미국과 달리 볼 어떠한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5장 ‘법원’ 이하 제101조 제1항이 법원에 속한다고 명시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사법권’에는 이미 독립성을 인정받고 있는 인적행정 뿐 아니라 미국과 마찬가지로 인적행정과 유기적으로 맞물려 이루어지는 물적행정의 독립을 위한 예산수요를 산출하는 권한 또한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현대의 삼권분립 및 사법부독립의 원칙에 보다 부합한다.
헌법 제3장 ‘국회’ 이하 제54조 제2항에 기재된 ‘편성하여’라는 법문이 제5장 ‘법원’ 이하 제101조 제1항에 법원의 권한으로 명시된 ‘사법권’보다 상위가치의 규정으로 해석되지는 않으므로, 그 해석에 있어서도 그 법문이 의미하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다른 헌법원칙과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규범조화적 해석을 꾀하여야 한다.
미국의 경우 전술한 역사적 배경 하에, OMB가 정부 예하기관의 예산요구만을 자기예산 점검의 차원에서 검토할 뿐 삼권분립기관인 사법부 등의 예산요구의 경우 삼권분립의 원칙에 충실하게 이를 점검하지 않고 단순히 하나의 예산안으로 엮어 모아 의회에 보내는 것을 ‘편성행위’로 제도운영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미국의 규범조화적 해석방법이 ‘편성하다’라는 문언의 가능한 해석범위에 포함됨은 앞서본 사전적 의미에 비추어 보아도 명백한바, 오히려 이러한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기존의 헌법개정론 논리에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개인이나 기업 등의 예산편성실무에 있어, 예산수요를 산출해 취합하는 행위와 이를 심사하는 행위가 사실상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경험을 토대로 헌법개정론과 같은 해석이 형성된 것이 아닌가 일응 추측되나, 이는 효율적 경영을 목표로 최종적인 경영권한을 가진 오너의 지휘 하에 예산수요 산출·취합 및 심사가 사실상 동시에 이루어지는 사기업 등의 특성에 의해 나타나는 경험적 현상일 뿐, ‘편성하여’라는 문언의 원래의 사전적 의미와는 구별될 뿐 아니라, 국가권력을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으로 분리해 균형과 견제의 원리 하에 운영되는 민주국가에서 각 독립된 국가작용을 담당하는 삼권분립기관들 및 그 예하기관들에 복잡하게 흩어져 있는 예산수요들을 모아 처리하는 절차를 정함에 있어, ‘편성’과 ‘심의·결정’을 구분하여 각 행정부와 국회에 다른 역할을 부여하고 있는 현행 헌법의 해석에 그대로 차용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다.
그렇기에 제헌헌법 제정작업에 전문위원으로 직접 참여하였던 윤길중 의원 또한 1971. 11. 20. 제78회 국회 소관위에서 구 예산회계법 개정을 제안하며 “예산안제출권 자체는 정부에 그대로 있는 것이고 거기에 사법부의 독립성을 존중해서 그대로 그것을 제출해 달라는 요구의 제안이기 때문에 삭감을 하려고 하면 국회에 와서 부당한 액의 요구를 삭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의 이 제안은 행정부에서도 충분히 고려하겠다고 하는 언질을 했고…”라고 설명함으로써, 헌법상 ‘편성하여’라는 법문을, 특히 다른 독립기관과의 관계에서, 정부가 예산요구를 심사, 결정하는 권한이 아닌, 원래의 사전적 의미와 같은 ‘엮어모아 제출하는 권한’으로 이해하는 전제에서 법률개정으로 제도를 변경할 수 있다 나섰던 것이다.
5. 헌법개정론의 기타 예상되는 논거들에 대한 반박가. 헌법 제57조에 대한 분석대한민국 헌법 제57조가 ‘국회는 정부의 동의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음을 들어, 한국 정부의 예산편성에 대한 권한이 미국의 그것에 비해 강하다거나 정부가 국가 전체 지출을 고려하여 균형있는 예산 편성의 필요에 따라 독립기관들의 예산을 심사할 수 있는 헌법상 근거가 있다는 취지의 반론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나, 위 헌법규정은 이미 편성이 완료되어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 단계에서의 ‘증액 제한’을 규정하고 있을 뿐, 그 이전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편성행위에 대한 규정이 아니다.
국회의 심의 및 의결을 거치지 않고서는 행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어떠한 법적 효력도 가질 수 없고, 국회가 심의를 통해 행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감액하는 의결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헌법 제57조를 들어 한국의 예산안 편성행위가 미국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구분되고, 더 나아가 정부가 ‘편성’단계에서 헌법상 독립기관들의 예산요구를 심사해 변경할 수 있는 헌법상 결단의 존재근거로 보기에는 그 논리적 공백이 크다.
뿐만 아니라 2020년도 및 2021년도 전체 국가예산 대비 대법원 예산이 각 0.5%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독립기관인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회의 예산을 통털어 볼지라도 국가전체 예산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바, 사실상 행정부 예산이 국가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2021년 정부가 편성해 국회를 통과한 2022년도 예산의 경우 전년 대비 9.9% 증가한 600조가 넘는 슈퍼예산이 편성되었음에도 대법원 예산의 경우 법조기관 중 유일하게 2021년보다 531억 7,800만 원이 줄어 2.56% 감소라는 유래 없는 감소폭을 기록하였다.
이와 같은 통계에 비추어 볼지라도 사법부의 예산요구를 정부가 심사하여 변경할 수 있게끔 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균형있는 예산 편성의 필요성이 과연 유의미할 정도로 실존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나. 헌법 제89조에 대한 분석대한민국 헌법 제89조가 제4호로 예산안을 국무회의의 심의사항으로 열거하고 있는 점을 한국 행정부가 사법부 등의 예산안을 심의할 수 있는 헌법상 근거라 주장하는 반론 또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 조항은 제3호로 ‘헌법 개정안’ 및 ‘법률안’ 또한 국무회의의 심의사항으로 열거하고 있고, 헌법에 국회에서 발의한 헌법개정안이나 법률안을 국무회의의 심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명시적 조항이 없음에도, 헌법 제89조를 근거로 국회에서 발의한 헌법개정안이나 법률안을 국무회의가 심의하여 변경할 수 있다는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헌법 제89조가 헌법 제4장 정부, 제2절 행정부 이하에 존재하고 있는 행정부 내부의 절차를 규정한 조항이라는 점 및 헌법상 대원칙인 삼권분립의 원칙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규범조화적 해석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헌법상 삼권분립을 이루는 독립기관인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 사이에서 국가예산처리과정을 규율하는 조항은 헌법 제89조가 아닌 헌법 제54조임이 명백하고, 헌법 제54조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하여 확정하는 권한을 ‘국회’에 부여하고 있으며, 헌법 제54조에 따른 예산처리과정에서의 정부의 역할은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의 심의 대상이 되는 예산안을 편성하여 국회에 제출하는 것’이다. 즉 헌법 제89조 제4호가 규정하고 있는 국무회의의 ‘심의’는 헌법 제54조의 ‘편성’이라는 법문에 대한 해석에 따라 인정되는 정부의 역할범위 내에서의 ‘심의’를 의미하는 것이지, 헌법 제89조 제4호가, 헌법 제54조에 따른 국회의 심의권한과 동일한 권한을, 정부 또한 다른 헌법상 독립기관들에 대하여 행사할 수 있는 헌법상 근거가 된다는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6. 헌법 제54조에 대한 문언적·규범조화적 해석방법이상 ‘편성’이라는 법문의 사전적 의미 및 입법사, 비교법적 분석내용 등을 종합하여 보면, 헌법 제3장 국회 이하 제54조 제1항에서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라는 규정을 두어 국회가 국가예산에 대한 심의·확정권자임을 선언하면서, 제2항에서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라고 규정한 취지는, 일차적으로 여러 독립기관들 및 그 예하기관들로 흩어져 있는 복잡한 예산수요들을 엮어모아 국회 심의의 대상이 될 하나의 예산안으로 정리하는 창구를 정부로 단일화하고, 정부에 일정 기한 내 위와 같이 엮어모아 완성한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게 하는 책무를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적 결단에 있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헌법상 독립기관의 예산요구의 경우, 정부가 이를 엮어모아 하나의 예산안을 만든 후 국회에 제출하는 정도를 넘어, 헌법상 독립기관들이 독립된 국가작용의 필요에 따라 산출한 예산요구를 정부가 심사하여 변경하는 행위는, 예산요구들을 엮어모아 편성하는 것을 넘어서는, 전혀 다른 성격의 별개의 행위이다.
행정부 예하기관들의 예산요청의 경우 행정부가 심의해 변경하는 것은 자기예산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수반되는 행위이므로, 이를 편성이라는 법문이 의미하는 개념에 포함시키는데 문제가 없겠지만, 다른 국가작용을 수행하는 헌법상 독립기관들의 예산요구를 정부가 심의하여 변경하는 권한까지 당연히 내포한다고 보기에는, 국회의 권한으로 명시된 ‘심의’와 구분하여 헌법에 규정된 ‘편성하여’라는 법문에는 해석상 한계가 있는바, 정부가 다른 독립기관들의 예산을 심사, 변경케 한 현재의 제도는 제헌헌법 제91조의 ‘편성하여’라는 법문의 결단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 아닌, 위와 같은 제헌헌법 하에서 1951년 제정된 구 재정법으로부터 이어져 온 ‘법률’에 의해 새로이 형성된 제도라 보아야 한다.
7. 맺으며 : 국가재정법 개정의 필요성Act of 1939 제정 당시 미 법무부장관 Homer Cummings가 지적한 내용에서도 확인되듯이 한국의 예산제도는, 특히 고도로 독립된 국가 사법작용을 담당하는 사법부와의 관계에서 정권에 따라서는, 정부가 예산을 통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시도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사법부독립의 원칙과 충돌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국가시스템으로서의 큰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미국에서 사법부 예산독립을 위한 Act of 1939가 제정되었고, 한국의 제헌헌법 제정에 전문위원으로 직접 참여하였던 윤길중 의원 또한 사법부 예산안에 대한 기존의 제도가 사법부독립의 원칙에 반한다는 문제의식 하에 법률인 예산회계법 개정제안을 통해 제도개선에 나섰던 것이다.
미국의 제도 내지 윤길중 외 78인의 의원들이 제안한 바와 같이 ‘정부는 사법부가 산출한 예산요구를 변경 없이 예산안에 포함시키는 방법으로 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 헌법에 명기된 대로 국회로 하여금 이를 심의하게 하고, 이견이 있을 경우 정부의 의견을 국회에 제출해 국회의 판단을 받을 수 있게끔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에 대해 다시금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장한 만큼 한국의 역사에도 제2의 Homer Cummings가 등장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한다.
한윤옥 부장판사(울산지법)※ 이 기고문은 졸고, '한윤옥, 사법부 등 헌법상 독립기관의 예산에 대한 존중의 실질적 의미와 국가재정법 제40조에 대한 비판론적 고찰 -미국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홍익법학 제22권 제4호(2021. 12.)(링크)' 중 일부 주요내용을 토대로 국내 입법사 등에 대한 추가 연구를 통해 완성하였음. 기타 쟁점들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증은 위 논문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