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모 법무법인에 대한 압수수색이 행해졌다. 대형 로펌에 한정해 보더라도 2016년, 2018년, 2019년에 이어 네 번째다. 2019년 대한변호사협회가 실시한 비밀유지권 피해실태 설문조사에서 응답 변호사 250명 중 33%가 수사기관이 변호사의 사무실, 컴퓨터,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하거나 영치했다고 답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소규모 법무법인이나 개인 변호사가 압수수색을 당하거나 사실상의 강제 하에서 자료를 임의제출한 경우는 훨씬 많다. 그럼에도 이번 압수수색은 현재 공판이 진행 중인 사안과 관련해 변호를 맡은 로펌을 대상으로 한데다가 변호사에게 직접적인 혐의가 없었음에도 단순히 증거를 획득할 목적으로 휴대전화를 압수하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의사교환을 비밀로 보호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당사자에게 법의 내용을 알려주고 변론해 줄 변호사가 없이는 어떠한 훌륭한 실체법도 무용지물이다. 헌법상 보장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당사자가 변호사에게 모든 관련 정보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제대로 조언을 받을 수 있을 때에만 보장된다. 대부분의 문명국이 변호사 비밀유지권 제도를 두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 중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만이 예외다.
압수수색에 대한 불복권 보장하고
법원 심사 완료까지 비밀 노출 방지 위한
조건부 영장 발부 고려해야
현 제도의 문제점은 여러 연구에서 거듭 지적된 바 있다. 변호사만 압수거부권을 가지기 때문에 변호사가 의뢰인과의 의사교환 자료에 관하여 압수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수사기관은 의뢰인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고스란히 획득할 수 있다. 변호사의 압수거부권 행사만으로는 수사기관이 압수를 강행하는 것을 저지할 수 없고, 압수에 불복하더라도 법원의 심사가 끝날 때까지 압수물을 봉인하는 절차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변호사가 가지고 있던 비밀정보 전부가 일단 수사기관에 노출된다. 특히 휴대전화의 경우 수사기관이 통째로 가져가거나 데이터를 이미징해 자체적으로 포렌식을 실시하면서 변호사의 다른 사건에 관한 정보나 내밀한 사생활까지 적나라하게 털리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와는 별도로 비밀유지권을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이 여럿 발의되었으나, 입법은 더디기만 하고 그 사이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 사례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법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이대로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감내하면서 사법후진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가? 그렇지 않다. 영장 발부 권한은 법원에 있으니 법원이 충실한 영장심사를 통해 검찰의 영장청구를 제대로 통제하면 된다. 우선, 변호사가 현장에서 압수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여 영장 자체를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발부해야 한다. 주요 선진국이 변호사 본인의 범죄에 관한 것이거나 향후의 위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압수수색만을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단순한 실체적 진실 발견의 필요는 예외사유로 보지 않는 것도 참고해야 한다. 압수수색에 대한 불복권을 보장하고 법원의 심사 완료 시까지 수사기관에 비밀이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건부로 영장을 발부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즉 법률사무소에서 압수된 물건의 현장 봉인 및 법원 보관, 법원이 지정하는 제3의 기관에 의한 포렌식과 압수 대상 특정, 다툼이 있을 경우 법원의 최종 심사 조건을 붙이는 것이다.
법원이 이렇게 할 권한이 있냐고? 영장 청구를 기각할 권한이 있는데, 발부 시 조건을 붙일 권한이 없겠는가. 너무 번거롭지 않냐고? 절차적 권리라는 것은 본래 번거로운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고? 남의 나라에선 이미 오랜 기간 그렇게 해 왔다. 선진사법을 지향한다면 우리나라라고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한애라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