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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기획][신년사] 새해를 맞이하며
안재명 기자
2023-01-02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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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어서 지난날을 반성하고 앞으로 자신을 보다 발전시키고 성숙하게 가꾸어가기를 다짐하여 본다. 그런데 법의 관점에서 보면 1년보다는 훨씬 더 긴 기간을 두고 생각해 봄이 낫다는 생각이다. 출발점을 되새겨 보자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난 백여 년이 새삼스러운 것은 무엇보다도 그 사이에 생각과 행동의 규준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왕을 정점으로 하여 양반만이 특권을 누리던 신분제 사회는 무너졌다. 이 체제를 몇 백 년의 오랜 기간을 두고 설명하고 정당화하던 유교 이데올로기, 특히 가족 및 국가의 우월성 이념도 정통성을 온통 상실하였다. 이제는 개인이 누구라도 평등하게 가지는 자유와 권리가 사회 구성의 출발점이 되었다. 모든 정치적 권력은 국민의 의사에서 나오고 국가는 단지 국민의 생존과 복리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이러한 ‘원리’의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변화야말로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사이에 일어난 혁명이 명확하게 의식되고 실행되고 있는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였던 즈음이야말로 혁명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해방 직후의 이데올로기 대립과 분단, 건국 후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동족상잔의 전쟁, 그로 인한 고난과 빈궁 등으로 해서, 이 나라의 ‘새로움’은 생존을 둘러싼 싸움의 열기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식민지의 경험이 우리의 자존심에 준 상처는 매우 큰 것이어서, 이를 달래기 위해서라도 일단 우리의 고유성 또는 주체성, ‘순풍양속’이 그 끈질긴 힘을 거두지 않는다. ‘찬란한 문화를 낳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 또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의 연속성은 강조하면서도, 과거를 떨쳐 버리고 새 출발을 하는 역사의 비연속면(非連續面), 말하자면 근대적 정신의 수련과 제도의 내면화에 대한 감수성은 아예 없거나 무디어졌다. 내 전공으로 말하면, 민법의 최고 원리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있다는 1930년대 후반 식민종주국 일본 고유의 집단주의에서 유래한 그 공식이 1945년 8월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대로 통하였던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여전히 혁명의 도상에 있다. 이것을 철저하게 의식할 필요가 있다. 지난 백년 동안 식민지와 분단의 쓰라린 경험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이룩하였다. 민주정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 역사의 옳은 노선을 채택하였고, 거듭된 시행착오와 수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조급함으로까지 보이는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이를 밀고 나왔다. 세계는 우리 자신보다 훨씬 더 긍정적으로 우리를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혁명을 지탱하는 ‘기본체제’, 예를 들면 법치주의의 원칙조차도 그것이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법의 전문가인 법률가들에게조차 그 마음에 뿌리를 확고하게 내리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권리를 애써 주장하는 것보다 남을 위하여 하는 반쯤의 양보가 더 큰 미덕이다(이것은 우리 민사재판에서 우선 그 많은 손해배상 감경사유로 나타난다. 일컫기를,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최고의 이념으로 하는 손해배상법”이라고. 심지어 계약에서 정하여진 급부도 재판으로 달라고 청하면 이것은 ‘감경’되어야 속이 편하다).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그런 사람이 없으면, 판단하는 사람과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 믿어지는 변호사를 ‘산다’)이 힘껏 내미는 부탁(‘청탁’이라고도 불린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여기저기를 보라)은 이에 적당히 ‘배려’함이야말로 좋은 사람 또는 ‘사람이 좋다는 것’에 다름 아니므로 그것을 깨끗하게 뿌리치지 않고 또는 못하고, 그 ‘배려’가 남의 이목을 끌지 않고서 은근히 실현되도록 지혜를 짜낸다.

새해에는 우리 혁명의 논리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적어도 그것이 단지 과격한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제대로 음미되고 숙고되기를 바란다.


양창수 석좌교수(한양대 로스쿨·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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