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최근 가상화폐 거래지원 종료(상장폐지) 효력정지 가처분 사건이 큰 화제가 되었다. 해당 가상화폐는 작년 역사적인 주가 상승률을 기록한 모 상장법인이 발행한 것으로, 온라인게임 생태계를 기반으로 한때 시가총액이 3조 원을 상회하였다. 상장폐지, 거래소 파산 등 가상화폐 시장은 그야말로 격동의 한 해를 보내고 있는데, 이른바 '옥석 가리기'와 시장 자정 기능 향상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을 여지도 있겠으나, 그 과정에서 투자자의 정당한 법익이 훼손된다면 규제방안 마련이 시급하겠다.
위 사건에서 법원은 상장폐지로 인한 투자 손실, 가상화폐 발행·유통의 투명성 등 여러 법익을 고려하여 기각 결정을 하였다. 그러나 상장법인이 발행한 시가총액 상위권 가상화폐 상장폐지가 시장에 미치는 여파는 상당한데, 시가총액 상위권인 다른 가상화폐 상장폐지 가능성이 거론됨에 따라 가상화폐, 나아가 가상자산 생태계에 위기가 도래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하에서는 위 사건의 쟁점을 검토하고 이로부터 도출되는 가상화폐 규제 논의를 고찰한다.
2. 문제의 본질 - 유통량과 가격 형성위 사건 핵심 쟁점은 유통량 공시 기준이다. 주식의 경우 발행·인수 및 공시에 대하여 촘촘한 기준이 존재하고 이에 따라 엄격한 규제가 이루어진다. 반면 가상화폐의 경우 그러한 규제가 사실상 부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위 사건의 경우 공시대상 유통량 산정 기준이 문제 되었다. 유통 자체가 불가능한 락업(lock up) 상태는 아닌, 담보제공 등의 방식으로 사실상 그 유통을 기대하기 어려운 물량을 공시대상 유통량에 포함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금융투자상품의 경우처럼 명확한 기준은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발행·인수에 적정가액을 지급해야 하는 주식과 달리, 대부분의 가상화폐는 발행인이 임의로 발행한 것을 순차적으로 언락(unlock)하는 방법으로 유통량이 늘어난다. 물론 반감기 등으로 인하여 전체 발행량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가상화폐는 위와 같이 주식과는 다른 양상으로 발행되어 유통량 증가 압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결국 가상화폐 유통량 공시에 대한 명확한 기준 부재로 시장의 신뢰가 저하된다면 시장 참여자들의 합리적 판단이 어렵게 되고, 나아가 시장 자체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가상화폐 유통량은 총공급량에 직결되므로 가격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발행·유통 및 공시에 발행인의 막대한 재량이 존재하고, 증권과 달리 예탁결제원 등에 필요적으로 보관되지도 아니하므로, 결국 발행인의 재량은 가격 형성을 좌우할 파괴력을 갖는다. 이에 애초에 발행 단계부터 제도권 자본시장의 그것에 상응하는 규제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이는 가상화폐 자체를 제도권 자본시장으로 편입시켜야 하는지 여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크립토 윈터’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어려웠던 작년, 가상화폐 시장의 입법적 규제에 대한 백가쟁명식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모두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업권법 탄생이 이상적이지만, 최근 발생한 가상화폐 상장폐지 논란, 거래소 파산 등 문제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실적인 대응책으로 자율규제 마련 필요성이 거론된다. 독립성과 전문성을 통한 외부 신뢰가 담보되는 내부통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율규제 마련으로 적어도 같은 문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하겠다.
3. 제도권 자본시장으로의 편입 당부 검토가상화폐의 제도권 자본시장 편입의 당위성은 자본시장법 입법취지와 마찬가지로 법적·제도적 규제를 통한 투자자 보호와 가상화폐 투자업 육성을 들 수 있다. 현재 수개의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고, 정치권은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하며 대응하고 있다. 우선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의 공통점을 짚어보면 1) 공적 감독기구를 통한 각종 의무부과, 2) 가상화폐 관련 사업자들로 구성된 협회 설립(자율규제), 3) 불공정거래행위 등에 대한 제재·처벌(외부규제) 등 제도권 자본시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법안은 금융위원회에 관리·감독부터 제재까지 폭넓은 권한을 부여하는데, 결국 제도권 자본시장으로의 편입을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 보호의 명분만 놓고 보면 제도권 자본시장에 신속히 편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예 가상화폐 자체를 금융투자상품의 일종으로 포섭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내달 공개되는 금융위원회의 증권형 토큰(STO) 가이드라인이나 향후 이루어질 리플랩스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사이 소송결과 등에 따라 금융투자상품과 가상자산의 경계에 있는 일부 가상화폐는 금융투자상품의 지위를 부여받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가상화폐 자체를 제도권 자본시장으로 편입하는 것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가상화폐 관련 사업자가 자본시장법, 금융산업구조개선법 등 관계법령이 요구하는 엄격한 요건을 갖춘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를 갖추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실제로 2021. 3.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으로 트래블룰(자금세탁 방지를 목적으로 1백만 원 이상 송금 시 거래정보를 기록·보고하는 제도)이 도입되었으나, 업계의 정보제공시스템 구축작업 등을 이유로 본격 시행은 그로부터 1년 뒤에야 이루어졌다. 가상화폐 관련 사업자는 물론, 제도권 자본시장의 감독기구 역시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여당 디지털자산특별위원회가 공개한 이른바 ‘디지털자산기본법’ 초안이 상장과 공시 권한을 가상화폐 거래소에 유보한 것도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이에 보다 현실적인 접근법이 요구되는데, 내부통제 기능을 담당하는 이른바 ‘자율규제’부터 강화하자는 논의가 제기된다.
4. 자율규제 마련 필요성 - 독립성과 전문성을 통한 외부 신뢰의 담보위 가처분 사건의 다른 쟁점으로는, 국내 5대 가상화폐 거래소의 협의체(DAXA, 이하 ‘닥사’) 소속인 거래소들 사이에 공정거래법상 불공정행위가 이루어졌는지 여부였다. 물론 대부분의 거래소는 상장정책에 관한 내규를 두고 있고, 상장폐지로 가상화폐 거래소가 얻는 경제적 이익을 상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위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제조사권 등을 바탕으로 자본시장의 내부통제를 담당하는 한국금융투자협회와 달리, 닥사는 아직까지는 가상화폐 거래소들로 구성된 이익집단에 가까워 보인다. 한국금융투자협회의 자율규제위원회와 같이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별도의 기구를 두는 등 이익집단보다 한 차원 높은 공공성을 바탕으로 외부의 신뢰를 담보하지 못한다면, 차후 다른 가상화폐 상장폐지가 문제 될 경우 위 가처분 사건과 같은 상황이 분쟁이 반복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자율규제 기능은 본질적으로 업계의 사익과 긴장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자율규제 마련으로 먼저 해결할 문제는 위 사건의 핵심 쟁점이기도 한 공시관리 부분이다. 현재 가상화폐 공시는 민간사업자가 운영하는 가상자산 데이터 리서치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진다. 과거 대형 가상화폐 거래소 자체적으로 공시와 정보제공 등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민간 플랫폼을 함께 사용하게 된 것은 결국 상장과 공시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함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공동의 자율규제가 제대로 작동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가상화폐를 제도권 자본시장에 그대로 편입하기 어렵다면, 자율규제 부분이라도 신속히 입법하여 투자자 보호장치를 강화해야 하겠다. 한국금융투자협회의 경우 자본시장법이 별도의 장을 마련하여 그 설립 근거와 기능을 정하는데, 새로운 법률 제정에 시간이 걸린다면 특정금융정보법과 같은 기존 법률에 별도의 장을 신설하여 자율규제 법적 근거와 기능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 핵심은 한국금융투자협회의 자율규제위원회와 마찬가지로 독립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업계의 사익과 충분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의결기구 등의 설립이다.
5. 결론가상화폐는 더 이상 블록체인 등 신기술 육성이라는 기치 뒤에 숨을 수 없게 되었다. 한때는 가상화폐 거래대금 합계가 증권시장의 그것을 넘을 정도였기에 그 주체와 방법을 불문하고투자자 보호를 위한 보다 강화된 입법적 규제는 피할 수 없다. 대형 가상화폐 거래소가 출범한 2016.경부터 입법의 공백으로 지나치게 많은 사회적 비용이 소모되었으므로, 가상화폐에 대한 입법적 규제는 이미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시장분할, 결제수단으로서의 이중적 기능 등으로 인하여 기존 자본시장에 그대로 편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지만, 가상자산 생태계 자체를 위협하는 대형 사건·사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우선 자율규제를 마련하여 적어도 같은 문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이영훈 검사(창원지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