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동경 미술계 진출을 기점으로 작가 경력의 새로운 장(章)을 써나가기 시작했던 단색화 화가들 중 제일 연장자는 윤형근 화백(1921~2007)이다. 동경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1976년에 그의 나이는 50대 중반이었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려 찬란한 천재성을 보여줬던 때가 25세였다. 그래서인지 서구 미술계에서는 ‘젊음=때 묻지 않는 전위적 창조력’이라는 공식이 은연중 힘을 발휘한다. 1970년대만 해도 파리 비엔날레는 참가 작가의 나이를 30세 미만으로 제한했다.
자신이 만든 물감을 캔버스와 결합시켜 윤형근은 군더더기 없는 색과 형태의 융합을 만들어 냈다. 사각형 같아 보이는 형태와 그 형태 사이의 공백, 번진 자국들이 신비롭게 어우러졌다(▲ 그림 1).중앙의 갈색면이 칠흑 같은 밤에 홀로 서 있는 나무 기둥 같아 보이지만 기둥에서 뭔가 빛이 스며 나오는 듯하다. 그런데 또 자세히 보면 갈색 기둥의 가장자리에 물감이 번져서 옆의 검은 면이 밤을 느끼게 해주는 배경이라기보다는 갈색 면과 합쳐진 연결체인 것 같다(▼그림 2). 서양화 재료를 썼지만 동양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풍긴다. 그렇다고 전통 수묵화도 아니다. 서구와 전통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지 않고 서로에게 묻히며 결혼한 것 같다.
윤형근의 작품은 보는 이마다 각자 서로 다르게 느끼고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어떤 실체를 간략화한 게 아니라, 여러 기억과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영매(靈媒)와 같다. 윤형근은 “잔소리를 싹 빼버린 그림”이 추상화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림을 예쁘고 복잡하게 만드는 기술, 구체적 상징, 정치사회적 의미 등을 모두 잔소리로 여겼다.
윤형근이 작품을 만들어간 동력은 ‘예술적 삐딱함’인 것 같다. 서양화를 그리는 관성적 방법을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자신에 맞게 변경했다. 나에게 맞는 재료를 만들어내서 자유롭고 편하게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잔소리 빼기’를 선택했다. 그는 작품으로 뭔가를 내세우거나 호소하는 ‘청승 떨기’를 싫어했다. 대신 자신이 선택한 단순한 요소들을 ‘무심하게’ 응축시켜 내놓았다.
케이트 림 (아트플랫폼아시아(AP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