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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창
윤형근의 “잔소리를 싹 빼버린” 단색화
케이트 림 (아트플랫폼아시아(APA) 대표)
2023-01-2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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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동경 미술계 진출을 기점으로 작가 경력의 새로운 장(章)을 써나가기 시작했던 단색화 화가들 중 제일 연장자는 윤형근 화백(1921~2007)이다. 동경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1976년에 그의 나이는 50대 중반이었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려 찬란한 천재성을 보여줬던 때가 25세였다. 그래서인지 서구 미술계에서는 ‘젊음=때 묻지 않는 전위적 창조력’이라는 공식이 은연중 힘을 발휘한다. 1970년대만 해도 파리 비엔날레는 참가 작가의 나이를 30세 미만으로 제한했다.

윤형근의 단색화는 젊은 예술적 재능과 감각이 피워낸 눈부신 꽃이 전혀 아니다. 그는 첫 개인전을 40대 중반인 1966년에야 열었고 그 후 10년 동안 조용한 모색을 하다가 50대에 이르러 예술적 도약을 했다. 인간적 성숙을 거치며 다른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에 집중해서 나온 결과였다.

처음에 윤형근은 서양화의 제작 방법을 그대로 따랐다. 당시 유행했던 앙포르멜(Informel) 스타일과 비슷하게 캔버스 표면에 우툴두툴한 껍질같이 유화 물감이 뭉쳐지도록 색을 칠했다. 그러다가 결정적 변화를 시도했다. 우선 유화물감의 끈적거리는 속성을 바꾸었다. 용제(solvent)인 테레핀을 아주 많이 섞어서 유화물감을 마치 먹처럼 묽게 변화시켰다.

물감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조정하자 뭔가 답답하게 풀리지 않는 것 같았던 그림의 ‘체증’이 풀리는 듯했다. 먹물 같은 물감을 찍은 널찍한 붓으로 위에서 아래로 시원스럽게 직선을 내려긋기 시작했다. 색깔도 여러 색을 쓰지 않고 군청색과 암갈색만을 적당히 섞어 몇 차례 되풀이해서 칠했다.

그는 또 일반 캔버스 대신에 거친 마포(麻布)나 면포(綿布) 캔버스를 사용했다.유화는 보통 캔버스 표면에 제소(gesso)라는 재료로 초벌작업(priming)을 해서 바닥을 다지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 색칠할 때 물감이 뒷면으로 삐져 나가지 않고 캔버스 표면에 잘 얹혀진다. 윤형근은 그것이 싫었다. 그는 일기장에 “심심한 마포에 페인트 같은 것으로 고유의 재질을 덮어 버린 것이 싫었다”고 적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먹물 같은 유화 물감이 마포나 면포 캔버스의 성글한 결 속으로 스며들면서 번지도록 만들었다. 붓질이 남기는 형태의 가장자리가 자연스러워졌고, 물감이 번지면서 녹슨 철 같기도 하고 풍경화 같기도 한 물감 마음대로의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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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 <청다>, 1981-1985, 면포에 유채 ⓒ 윤성열. PKM 갤러리 제공. 

 

자신이 만든 물감을 캔버스와 결합시켜 윤형근은 군더더기 없는 색과 형태의 융합을 만들어 냈다. 사각형 같아 보이는 형태와 그 형태 사이의 공백, 번진 자국들이 신비롭게 어우러졌다(▲ 그림 1).중앙의 갈색면이 칠흑 같은 밤에 홀로 서 있는 나무 기둥 같아 보이지만 기둥에서 뭔가 빛이 스며 나오는 듯하다. 그런데 또 자세히 보면 갈색 기둥의 가장자리에 물감이 번져서 옆의 검은 면이 밤을 느끼게 해주는 배경이라기보다는 갈색 면과 합쳐진 연결체인 것 같다(▼그림 2). 서양화 재료를 썼지만 동양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풍긴다. 그렇다고 전통 수묵화도 아니다. 서구와 전통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지 않고 서로에게 묻히며 결혼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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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 <청다‘77>, 1976-1977, 린넨에 유채 ⓒ 윤성열. PKM 갤러리 제공.

 

윤형근의 작품은 보는 이마다 각자 서로 다르게 느끼고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어떤 실체를 간략화한 게 아니라, 여러 기억과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영매(靈媒)와 같다. 윤형근은 “잔소리를 싹 빼버린 그림”이 추상화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림을 예쁘고 복잡하게 만드는 기술, 구체적 상징, 정치사회적 의미 등을 모두 잔소리로 여겼다.

윤형근이 작품을 만들어간 동력은 ‘예술적 삐딱함’인 것 같다. 서양화를 그리는 관성적 방법을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자신에 맞게 변경했다. 나에게 맞는 재료를 만들어내서 자유롭고 편하게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잔소리 빼기’를 선택했다. 그는 작품으로 뭔가를 내세우거나 호소하는 ‘청승 떨기’를 싫어했다. 대신 자신이 선택한 단순한 요소들을 ‘무심하게’ 응축시켜 내놓았다.


케이트 림 (아트플랫폼아시아(AP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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