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교육 이야기는 정말이지 지겹다. ‘입시 위주 교육’ 이 단어를 쓰면서도 다시 한번 정말 지겹다. 모두가 문제인 걸 알지만 그런데도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정리되고 만다. 바른말 하는 그럴듯한 정치인들 또는 유명 인사들도 결국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보통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으니(아니 오히려 더 심한가?) 말 다 한 것 아니겠나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덮어두기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관심사와 무관하게 획일적으로 과중한 학습을 함에 따라 정신적 고통을 받고, 부모들은 사교육비 부담으로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그럼에도 아이가 성과를 내지 않는 것 같아 정신적으로도 고통스럽다. 그리고 이들의 고통과 비용은 결국은 사회적 고통과 비용이다. 이 불행한 레이스가 당장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다른 방향은 없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이유일 것이다.
《앞서지 않아도 행복한 아이들》은 프랑스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동시에 두 아이를 프랑스 교육 시스템하에서 키운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이 담겨 있다. 저자인 최민아 박사는 사실 국내에서는 도시계획가이자 건축가로 잘 알려져 있다.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을 비롯하여 도시와 건축에 관한 여러 저서를 썼으며, 현재는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연구원의 수석연구원이다.
저자는 다른 나라의 교육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고자 한다며, 만약 한국의 교육과정이 조금이라도 부모인 저자 자신과 아이들이 생각하고 감당할 수 있는 방식대로 흘러갔다면 자신의 두 자녀들이 프랑스 교육 과정과 국제 바칼로레아 과정을 찾아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문에서 ‘유학파 전문직 엄마의 배부른 자식 교육 썰’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는 이 책은 프랑스의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교육의 지향점, 대학 진학제도를 비롯해 학교에서의 쉬는 시간, 선생님과의 관계, 평가체계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돌도 되지 않은 영아 때부터 다닌 보육원을 시작으로 초·중·고등학교와 대입까지 모두 프랑스 교육 과정을 거친 큰애를 보니 이 나라의 저력은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앞서지 않아도 행복한 아이들》 9쪽, ‘작가의 글’ 중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지만,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바칼로레아’에 관한 부분이 역시 가장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서는 바칼로레아가 우리의 대입수능과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은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이라고 한다. 즉,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고등학교 3년 내내 개근해도 교육 과정을 마쳤다는 게 인정되지 않는다. 저자는 학교에서 잠만 자도, 시험 점수가 안 나와도 졸업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우리의 시스템은 대학 진학이 아니라면 고등학교 과정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프랑스 교육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단계별 적정 수준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졸업장은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고 증명될 때만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장래와 적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유급이 흔한 일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진로 탐색을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유급을 했다고 특별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바칼로레아는 대학 진학을 위한 일반 바칼로레아뿐 아니라 기술 바칼로레아, 직업 바칼로레아도 있다. 학업이 맞지 않는 학생들은 기술학교나 직업학교로 가도록 유도한다고 한다. 적성과 무관하게 일단 대학부터 가야 하는 우리 사회와는 많이 다르다.
시험 과정 역시 매우 세심하다. 일단 하루에 끝나는 우리의 수능과 달리 바칼로레아는 1~2주 동안 시험을 본다. 우리에게는 바칼로레아가 철학 시험으로 익숙한데, 실제로는 철학뿐 아니라 다양한 문학, 경제와 사회과학, 과학 등 과목을 다룬다. 시험문제는 모두 서술형이며 단답형이나 오지선다는 없다. 채점 또한 사람이 일일이 다 채점해야 하므로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또한 수능 한 문제로 대학이 갈리고, 과가 갈리는 우리와 달리 바칼로레아 점수 또한 우리처럼 그렇게까지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 가지로 우리의 모습과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생이 걸린 시험이라 여기는 우리의 수능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의 성과로 결정되는데, 저자는 이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프랑스의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와 시험 형가 방식은 ‘공평함이라는 이름으로 둘러대는 책임회피’라고 비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21년 프랑스 바칼로레아 응시자 수는 70만 명이 약간 넘었고, 한국 수능 응시자 수는 40만 명 안팎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많은 학생 수나 진행의 편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노력 부족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요새 젊은 층은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번아웃을 겪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것이 10대 시절 과중한 학습과 극도의 경쟁을 겪었던 것에서 일정 부분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앞서지 않으면 불행함은 물론, 앞서간다고 해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어린 시절 체화된 경쟁의식은 사회에 나가서도 이어지고, 나도 모르게 옆 사람을 경쟁자로 의식하며 살게 된다. 이 피곤한 우리의 삶은 어쩌면 우리의 교육 제도에서부터 시작된 것일지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모든 교과서에서 우정과 배려 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시험 방식은 타인과의 ‘경쟁’에 기반한 상대평가다.”
- 《앞서지 않아도 행복한 아이들》 93쪽, 3장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중
책에는 바칼로레아 외에도 프랑스에서는 우리처럼 대학의 서열화가 되어 있지 않은 이유,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교에서의 교육방식과 평가방식, 학교에서 아이들의 일상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더 담겨 있다. 지긋지긋하고 숨 막히는 우리 교육 시스템을 한 발 떨어져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싶다면, ‘앞서지 않아도 행복한 아이들’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권한다.
김소리 변호사 (법률사무소 물결·밝은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