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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편집인 칼럼
[차병직 편집인 칼럼] 비유의 세계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2023-02-20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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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의 노인이 세 아들에게 유언했다. 장남에게 재산의 2분의 1을, 차남에게 4분의 1을, 삼남에게 6분의 1을 나누어 주겠노라는 내용이었다. 노인이 죽고 나자 낙타 열한 마리가 남았다. 어떻게 나눌 것이냐를 두고 몇 날 며칠을 싸웠는데, 그 꼴을 보던 옆집 사람이 자기 낙타 한 마리를 빌려주었다. 첫째가 여섯 마리, 둘째가 세 마리, 셋째가 두 마리를 가지고 나니 한 마리가 남았다. 남은 한 마리를 옆집에 갚으니 모든 계산이 깔끔하게 끝났다.

이야기를 어딘가에 인용하면서, 옆집 아저씨가 빌려준 지혜의 한 마리를 허수에 비유한 적이 있다. 풀리지 않던 문제를 해결하고 사라져버리는 점에서, 빌린 낙타 한 마리는 허수처럼 보였다. 당연히 그것은 실제 허수가 아니다. 그 비유는 허용되는가?

자연과학의 지식을 인문학에 함부로 가져다 사용하는 행위를 ‘지적 사기’로 신랄하게 지적한 사례도 있다. 미국과 벨기에의 물리학자 앨런 소칼과 장 브리크몽은 한때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자크 라캉, 줄리아 크리스테바, 장 보드리야르,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등을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원래의 맥락에서 완전히 벗어난 과학적 개념을 써먹는 사기꾼으로 질타했다. 프랑스의 철학자들은 자연과학이라는 한 영역의 개념을 엄밀한 논증 없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영역으로 이식하여, 마치 자기 주장에 심오한 사상이 담긴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는 고발이었다.

허수라는 존재하지 않는 수를 만들어낸 이유는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롤라모 카르다노의 아이디어대로, 더하면 10이 되고 곱하면 40이 되는 두 수는 무엇인가? 언뜻 보면 낙타 상속 문제처럼 난센스퀴즈다. 그러나 제곱하면 음수가 되는 허수를 이용하면, 없던 정답 5+√(-15)와 5-√(-15)가 나타난다.

퀴즈 때문에 허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실수는 양쪽으로 펼쳐진 직선 위에 어디든 표시할 수 있다. 반면 허수는 사방으로 퍼진 평면 위에 표시가 가능하다. 직선을 벗어나는 파동이나 진동을 실수와 허수가 섞인 복소수로 나타내고, 그 계산의 결과에서 실수 부분만 끄집어내는 방식은 현대물리학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재판의 결과를 바라보는 시민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찾아 해결해 주고 사라지는 허수와 같은 수단이 수사나 재판에도 필요하게 된 것일까?
재판에 사용되는 비유와 재판을 이해하는 비유의 차이를 해소할 방안을 탐구하는 일이 미래 사법의 과제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지식과 정보는 항상 불안하다. 무엇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는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대상과 대상들 사이의 관계다. 언어나 이미지 모두 유추 작용을 통해 인식하고 익힌다. 이해한다는 것은 감각 경험들 사이의 질서 형성이다. 새로운 것을 수용하여 기존의 아는 것들 사이에 무리 없이 배치할 때 비로소 이해라는 작용이 이루어진다.

비유는 이해를 잘하기 위한 수단이다. 표현의 대상을 비유의 대상과 적절한 관계에 놓음으로써 비유의 대상이 지닌 익숙한 감각의 힘이 표현의 대상으로 옮아가게 하여 표현 주체의 의도를 완성하려는 노력은 인간 고유의 지적 활동의 하나다.

비유의 한계는 동일성이다. 비유의 노력은 표현 대상을 비유 대상에 근접시키려는 행위이나, 결코 양자가 같을 수는 없다. 표현 대상이 비유 대상과 너무 동떨어져 있으면 실패한 비유이고, 동일시할 정도면 속임수라는 비난을 받는다.

정치적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사건을 이해하는 데도 비유가 등장한다. 사건을 보도하고, 보도된 내용을 비난하고, 비난에 대해 변명하는 언행 모두가 비유를 구사한다. 저마다의 비유는 자기정당화를 위한 최선의 수단으로 쓰인다. 그런 상황 전체가 재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재판의 사실 인식과 확정에도 비유가 허용되는가? 법 해석 방법에 유추해석이 있듯이, 금지되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한 여지도 있다. 그러나 재판의 결과를 바라보는 시민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찾아 해결해 주고 사라지는 허수와 같은 수단이 수사나 재판에도 필요하게 된 것일까? 재판에 사용되는 비유와 재판을 이해하는 비유의 차이를 해소할 방안을 탐구하는 일이 미래 사법의 과제가 될 수 있다.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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