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통 부재의 시대란 말이 흔하게 쓰이고 있다. 세대 간, 진영 간 그리고 지역 간 갈등은 소통의 부재로부터 온다. 필자는 가정법원 조정위원으로 있으면서 대부분의 이혼 사유도 부부간의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음에 기인함을 알게 되었다. 소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 소통의 수단으로 자연스럽게 서로의 명함을 교환하면서 상대방의 정보를 확인한 후 대화를 시작한다. 과거 명함은 연락처의 전달 수단으로 주로 직장인들만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요즘에는 종이를 사용하지 않은 모바일명함까지 등장하여 여러 가지 콘텐츠로 다양한 정보까지 제공하는 전달 매체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명함은 개성과 가독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처음 만난 상대방에게 짦은 시간 안에 자기 자신을 알릴 수 있어야 한다. 명함에는 직장, 직위,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주소, 회사 주소 등 각자의 상황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명함에 들어 있는 정보는 큰 차이가 없다. 대부분 명함에는 이름 앞에 직함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명함에 적혀 있는 자신의 직함에 따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필자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위 지인 중 은퇴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현역에서 일할 때는 대부분 자신의 명함을 가지고 있지만 현역에서 물러난 사람에게는 명함이 없다. 그래서 명함이 있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초라함까지 느낀다고 한다. 이른바 퇴직 후 명함으로 인한 상실감을 겪는 ‘명함증후군’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제까지 명함에 있는 직함으로만 살았지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본 경험이 드물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한다. 누구와 만나더라도 다양한 화제를 꺼내어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고 타인에게 신세 질 일도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굽실거릴 일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명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명함으로 규정지어질 수 없는 본연의 자신을 잊지 않고 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렇게 한다는 것이 어디 말과 같이 쉬운 일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함의 테두리 안에서 사회생활을 한다. 명함으로 관계 맺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기 직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명함이 정해준 직함대로 내면까지 서열화 되어 인생을 살아간다. 필자는 법원공무원을 퇴직한 후 제2의 인생을 법무사 명함을 사용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명함 안에서 주어진 삶보다 세상과 소통하며 지내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벌써부터 머지않아 다가올 따뜻한 봄날의 햇살과 향기로운 꽃내음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