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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곤 회고록] 제7화 : 밀로셰비치 재판을 맡다
권오곤 전 재판관
2023-02-23 07:06
세계 역사상 최초의 국가 원수에 대한 국제형사재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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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 밀로셰비치 재판을 맡다


 

밀로셰비치 재판부에 배정되다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 사건은 그가 2001년 6월 29일 ICTY로 이송되어 온 이래 1심재판부 제3부(Trial Chamber III, 이하 ‘제3재판부’)가 맡아서 준비절차(pre-trial proceedings)를 진행하고 있었다. 제3재판부는 메이(Richard G. May, 영국), 로빈슨(Patrick L. Robinson, 자메이카), 파시 피리(Mohammed Fassi Fihri, 모로코) 재판관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파시 피리 재판관이 2001년 11월 16일 임기만료로 퇴임하였기 때문에(그는 2001년 3월의 재판관 선거에서 낙선하였다), 새로 한 명을 충원하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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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재판부의 재판장이었던 Richard May 재판관(영국).


죠르다 재판소장은 11월 23일 재판관 전원회의에서 소장에 재선된 후, 새로운 재판부 구성을 발표했다. 나는 메이, 로빈슨과 함께 밀로셰비치 사건을 담당하는 제3재판부에 배정됐다. 이로써 내가 밀로셰비치 사건을 맡게 되었다. 다른 모든 1심재판들은 상임 재판관과 임시 재판관을 섞어서 구성한 재판부가 맡았지만, 밀로셰비치 사건만은 재판부 3인 모두가 상임 재판관으로 구성됐다. 사실 며칠 전 ICTY에 부임한 후 죠르다 소장을 만났을 때, 그는 내게 밀로셰비치 재판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나는 긍정적으로 답했었다. 밀로셰비치가 송치돼 온 이래 전세계의 이목은 ICTY에 집중돼 있었다. ‘세기의 재판’에 참여할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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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Y의 두 번째 소추관으로, 밀로셰비치를 처음으로 기소한 Louise Arbour. 그녀는 그 후 캐나다 대법원의 대법관, 유엔 인권위원회(OHCHR)의 최고책임자(High Commissioner)등을 역임했다.


기소, 구속, 이송

ICTY의 두 번째 소추관(Prosecutor, 1996-1999)이었던 아버(Louise Arbour, 캐나다)는 아직 코소보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99년 5월 22일 밀로셰비치를 코소보 사태와 관련한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밀로셰비치는 당시 유고 연방(구 유고 연방이 해체된 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만으로 구성된 것)의 대통령이었다. 밀로셰비치에 대한 위 공소장은 헌트 재판관(David Hunt, 호주)이 검토한 후 5월 24일 승인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1]

 

[각주1] ICTY 규정에 의하면 공소장이 제출되면 재판관의 검토(review)를 거쳐 그 승인(confirmation)을 받아야 한다. 공소장의 검토와 승인은 당직 재판관(duty judge)이 맡는다. 공소장의 승인 기준은 ‘prima facie case’가 있는지 여부, 즉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이 반박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공소사실이 인정될 만 한지 여부이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자체의 경찰이나 군대가 없기 때문에, 관계 국가의 협조가 없이는 구속영장을 집행할 방법이 없다. 국제형사재판소가 “사지(四肢)가 없는 거인(giant without limbs)”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소이(所以)이다. 밀로셰비치는, ICTY가 자신을 기소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는데도, 대통령직을 유지하며, ICTY를 무시했다. 그러다가 2000년 9월의 선거와 민주화 운동에 의하여 결국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진지치(Zoran Djindjić) 총리가 이끄는 세르비아의 새 정부가 2001년 3월 그를 부패 혐의로 구속한 후, 2001년 6월 28일 ICTY에 이송함으로써, 그다음 날 헤이그에 있는 ICTY의 유엔 구치소에 감금되었다(진지치 총리는 2003년 3월 12일 총리실 후문에서 차에서 내리다 저격범에 의해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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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셰비치가 세르비아 경찰의 헬리콥터로 헤이그의 유엔구치소에 이감되는 모습. 이 영상은 전 세계에 방송되었다.

 


사상 최초의 국가 원수에 대한 국제형사재판

밀로셰비치 사건은 세계 역사상 현직 국가 원수(head of state)가 재직 중에 범한 범죄 혐의로 그 재직 중에 기소되어 국제형사재판을 받게 된 첫 사건이다. 국내법상 국가 원수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 특권이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만 국제법상 국가 원수의 형사 책임은 분명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19년의 파리강화회담에서, 일부 국가는 독일 황제였던 빌헬름 2세의 형사처벌을 주장했으나, 미국이 반대했다. 당시 미국은 국가 원수에 대하여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국내법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선례가 없으며, 국가 원수는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에게 정치적 책임을 질 뿐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타협안으로 베르사유 조약 제227조에서 독일 황제를 “국제 도덕과 조약의 신성성에 대한 최고의 범죄(supreme offence against international morality and the sanctity of treaties)”라는 정치적 혐의로 재판하기로 하였으나, 빌헬름 2세가 피신해 있던 네덜란드 정부가 자국법상 그러한 죄목이 없다는 이유로 신병 인도를 거절함으로써, 성사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뉘른베르크 재판소와 도쿄 재판소가 세워졌으나, 독일의 히틀러는 자살하여 그 형사처벌이 불가능하였고, 일본의 천황 히로히토는 전후 일본과의 화해와 일본 사회의 안정을 바란 미국의 입장에 따라 기소되지 않았다.

 

뉘른베르크 재판이 종결된 후, 유엔총회의 위임에 따라 국제법위원회(International Law Commission)가 1950년에 ‘뉘른베르크 재판소 헌장과 그 판결에서 인정된 국제법의 원칙들’의 조문화(條文化, codification) 작업을 완성했다(U.N. Doc. A/CN.4/SER.A/1950/Add.1). 그 중 “국제법상 범죄로 되는 행위를 범한 자가 국가의 원수라고 하더라도 국제법상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한 제3원칙은 국가 원수에게 국제법적으로 소추 면제 특권이 없음을 명시적으로 선언하였다. ICTY 규정 제7조 제2항도 이를 명백히 규정했다. 결국 밀로셰비치가 헤이그로 이송되어 옴으로써, 유엔이 위와 같은 원칙을 선언한 지 50여 년 만에, 세계역사상 최초로 국가 원수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영상] May 재판장이 밀로셰비치에게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는 권리를 알려주자, 그는 영어로 “나는 이 재판소가 불법 재판소이고, 공소장도 불법 공소장이라고 본다. 재판소가 유엔 총회에 의해서 설립된 것이 아니므로, 불법적인 기관을 위해서 변호인을 선임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이 영상은 2분 13초 경과 후부터 나온다.)

  

 

최초의 출두

내가 도착하기 이전에 몇 가지 준비절차가 이미 진행됐다. 그중 첫 번째가 ‘최초의 출두(Initial Appearance)’였다.

 

ICTY의 소송 및 증거에 관한 규칙(Rules of Procedure and Evidence, 이하 ‘소송규칙’) 제62조는 피고인이 재판소에 이송되어 오면, 재판소장이 재판부를 배정한 다음, 그 재판부 또는 그중의 한 재판관이 지체없이 피고인을 소환해서, (1)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는 권리를 알려주고, (2) 피고인이 이해하는 언어로 공소장을 읽어주는 등의 방법으로 피고인이 이를 이해한 것을 확인하고, (3) 피고인으로 하여금 그 즉시, 또는 30일 이내의 기간에 각 죄목(count)에 대하여 유죄를 인정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답변(pleading)을 하게끔 규정하고 있다.

 

밀로셰비치의 최초의 출두는 2001년 7월 3일 제3재판부의 당시 재판관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밀로셰비치는 공소사실에 대한 인부(認否)를 거절하여, 소송규칙에 따라 재판부가 피고인을 대신하여 유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답변(plea of not guilty)을 한 것으로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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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에 이송된 후 2001년 7월 3일에 있었던 밀로셰비치의 최초의 출두.



자기 변호와 아미쿠스 쿠리아이 임명

다음으로 한 것이 아미쿠스 쿠리아이(Amicus Curiae, 이하 아미쿠스)를 임명한 것이다.

 

밀로셰비치는 변호인 없이 자신이 직접 소송을 수행하겠다는 ‘자기 변호(self-representation)’의 의사를 명백히 했다. 유엔의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제14조 (2)항 (d)호는 “스스로 자신을 방어하는 것(to defend himself in person)”, 즉 자기 변호가 피고인이 가지는 “최소한의 보장들(minimum guarantees)” 중의 하나임을 선언하고 있고, ICTY 규정도 제21조 2항 (d)호에서 이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대륙법 국가와는 달리, 영미법 국가에서도 자기 변호를 피고인의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예컨대 미국 대법원의 Faretta v. California, 422 US 806, 1975 참조).

 

따라서 제3재판부는 밀로셰비치가 변호인 없이 스스로 변호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2001년 8월 30일 자 명령으로 사무국에 아미쿠스를 선임할 것을 지시했다. 원래 아미쿠스는 법원의 친구(friend of the court)라는 뜻의 라틴어로, ICTY 소송규칙 제74조는, 재판부가 사건의 적정한 해결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특정한 주제에 관하여 제3자인 국가, 기관 내지 개인의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제3재판부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미쿠스가 직접 피고인을 대리하거나 변호할 것은 아니지만, “사건의 적정한 해결을 위하여 재판부를 보조하는 역할(to assist the Trial Chamber in the proper determination of the case)”을 할 수 있도록 그 선임을 명한 것이다. 아미쿠스가 할 수 있는 보조 역할로는, 제3재판부는 본안전 항변이나 신청의 제기, 증거에 관한 의견 제시 내지 이의 제기,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 피고인에게 유리한 자료의 제출, 기타 공정한 재판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소송행위 등을 예시했다.

 

사무국은 이에 따라 2001년 9월 6일 케이(Steven Kay QC, 영국), 타푸슈코비치(Branislav Tapušković, 세르비아), 블라디미로프(Michaïl Wladimiroff, 네덜란드) 등 세 명의 변호사를 아미쿠스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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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기 전에 이미 선임된 Amicus Curiae. 왼쪽부터 Steven Kay(영국), Michail Wladimiroff(네덜란드), Branislav Tapuskovic(세르비아). Kay와 Wladimiroff는 타디치 사건의 변호인들이었다.



본안전 항변의 기각

마지막으로 전임 재판부는 피고인의 본안전 항변을 기각했다. ICTY 소송규칙 제72조에 의하면 관할권을 다투거나 공소장의 흠결 등을 주장하는 것과 같은 본안전 항변(preliminary motions)은 재판 시작 전에 조속히 제기하고,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밀로셰비치는 유엔 안보리가 ICTY를 설립할 근거가 없다거나, ICTY가 독립적이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본안전 항변을 제기했으나, 제3재판부는 2001년 11월 8일 자 결정으로, 종전 타디치 사건의 관할 결정 등을 참고하여, 이를 기각했다.

 

 

권오곤 전 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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