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척스카이돔 키움히어로즈 구단사무실 내 자신의 집무실에서 인터뷰어를 맞았다. 나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그런 것처럼 그가 화려하면서도 역동적인 캐릭터이지 않을까 상상했는데 그 상상은 만나자마자 곧 깨졌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신중하고 진지한 사람이었다. 그가 보여준 정적인 질서는 그가 입고 있던 야구단 로고가 새겨진 스포티한 재킷과 대비되어 더욱 도드라졌다. 허투루 들리는 췌언 같은 게 한마디도 없었다. 위재민(65·사법연수원 16기) 대표이사는 자신의 선친이 월남민이라고 밝혔다. 전란 때 생활의 기반을 전부 북쪽에 두고 맨주먹으로 내려와 경기도 연천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비록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도 자신과 형과 누나 삼남매를 바르게 훈육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는 실향민의 아들이었던 것. 아마도 그의 내면 속에는 뿌리뽑힌 방외인으로서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감각과 윤리의 체계가 들어서 있었으리라. 그것이 바로 진중한 언변과 방정한 품행이었을 것이다.
[ 약 력 ]
서울 배명고와 연세대 법대를 졸업한 위 대표이사는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연수원 수료 후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를 시작으로 법무부 특수법령과 검사, 인천지검 부부장검사, 인천지검 부천지청 부장검사, 전주지검 정읍지청장, 광주지검 형사1부장검사 등을 지냈다. 2010년 변호사로 개업해 법무법인 동인 등에서 활동했으며 2022년 3월부터 키움히어로즈 대표를 지내고 있다.
그는 법대에 진학하고 사법시험을 패스하고 연수원을 나온 후 검사로 임용된다. 23년간 몸담았던 검찰을 나온 이후에는 변호사로 일하다가 작년 2월 키움히어로즈의 대표이사로 부임한다. 우선 그 계기와 과정이 궁금했다.
“제가 대표이사로 근무하는 프로야구단 키움히어로즈는 다른 아홉 개 구단과는 달리 대기업이 모체가 아니라 개인주주들로 구성된 주식회사 서울히어로즈라는 법인이 소유하고 있는 구단이고, 키움증권 주식회사와 메인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는 사이인데요. 제가 대표로 오게 된 데는 대주주인 이장석 전 대표와의 인연이 계기가 되었어요. 10년 전쯤 친한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분인데, 그분에게 법률적인 조언과 자문을 하기도 했죠. 그분이 어느 날 제게 대표이사직을 제안했어요.”
그때 그는 그 제안을 고민 없이 덥석 받아들이진 않았다고 했다.
“생소한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고민을 했죠. 그래서 이장석 전 대표에게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원하면 곤란하다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이 대표가 회사를 안정적으로만 운영해주면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을 듣고 새로운 일에 대한 흥미도 있었고, 지금까지 법조인으로, 그리고 공기업 감사로 쌓아온 지식과 경험이 그 일을 수행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야구는 매우 디테일한 룰이 있는 스포츠다. 룰을 지키지 않으면 퇴장도 당하고 징계도 당한다. 스포츠의 룰과 일반 국민들이 지켜야 할 법은 기본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법조인 출신으로서 키움히어로즈 프런트와 선수단에 특히 준법과 관련해 어떤 철학을 전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10개 프로야구 구단과 선수들이 야구단 운영과 경기 운영에 관하여 지켜야 할 큰 틀의 룰은 KBO 한국야구위원회가 만든 규약에 정해져 있고, 그 위에는 야구팬들의 애정과 엄격함이 한데 뭉친 보살핌과 감시의 눈이 있어요. 저는 법조인 출신으로서 모든 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실감 게 체험해왔고, 그 의미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구단 구성원 누구나 그 중요성과 엄격함을 이미 잘 알고 있고 실천하고 있죠.”
그런데 그가 말한 야구팬들의 '보살핌과 감시의 눈'이라는 걸 대체 어느 정도 존중하는 게 맞는지 나 역시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모호할 때가 있다. 우리 사회엔 법적인 판단과 별개로 국민정서법이라는 강력한 또 하나의 강제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사실, 조금 민감한 이슈일 수도 있는데 키움히어로즈는 내 생각에는 이 국민정서법에 의해 본의 아닌 손해를 입은 구단이다. 이를테면 강정호 선수라든가 안우진 선수 같은 경우, 법적인 판단에 의한 심판이나 징계가 일단락됐음에도 그라운드에 복귀를 못하거나 국가대표 선발이 무산됐다. 이에 대한 위 대표의 솔직한 생각이 궁금했다.
“KBO리그는 팬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잖아요. 팬들의 정서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팀과 당사자는 KBO에 의해 만들어져 있는 규약을 존중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다만 그것이 원칙에 맞게 일관되게 적용되길 바라고 있어요. 강정호 선수 건의 경우 복귀에 대한 승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KBO가 승인을 안 한 거예요. 안우진 선수 건은 WBC 대회 국가대표 감독에게 선발에 대한 전권이 있는데 그분이 선발을 안 한 거예요. 우리는 이 모두를 존중하는데요. 우리 팀과 관련된 이슈여서 아쉬움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사실 위 대표의 입장에 수긍이 가면서도 아쉬움이 전혀 없진 않다. 룰이라는 게 모든 이에게, 어떤 경우에서든 정확하면서도 공정하게 적용될 때 효력과 권위가 확보되는 것이지 않은가. KBO가 팬들의 정서나 여론에 지나치게 휘둘리기보다는 오히려 원칙에 맞는 흔들림 없는 의사결정을 하고 이를 팬이나 언론에 설득하는 절차를 밟으면 어땠을까. 팬들의 감정이나 정서는 설득하는 이의 정성에 따라 얼음물처럼 녹아서 흐르는 게 아닌가.
야구단 대표로서 그는 이제 1년을 지냈다. 야구단 대표라면 당연히 팀 성적과 경영에서의 흑자라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올해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키움히어로즈만의 비책이랄까 복안이 궁금했다. 다른 구단과 차별화하는 전략이 있다면 그것도 소개해달라고 했다.
“저희 팀은 세이버메트릭스라는 야구의 통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적용하는 방식을 비교적 일찍 도입해서 선수 개개인의 기량과 장단점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를 보완하면서 선수들이 베스트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왔어요. 그 결과 다른 팀에 비해 FA시장에 나온 고연봉 선수를 데려오지 않고도 꾸준한 성적으로 냈죠. 10개 구단 체제가 2015 시즌부터 시작됐는데, 통산 종합순위에서 두산베어스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특별한 비책이 있기보다는 저는 구단 대표로서 구성원인 선수단, 감독, 코치, 전력분석원, 트레이너, 프런트가 각자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일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올시즌 목표는 우승이요.(웃음)”
그런데 어떤 야구전문가나 팬들은 우리나라의 열악한 야구 인프라에서 10개 구단 체제는 과도한 측면이 있고, 그 결과 경기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위 대표의 생각을 물었다.
“작년에 리그가 40주년을 맞았어요. 6개 팀으로 시작하여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10개 구단 체제가 되었는데, 팀당 시즌 144게임씩을 치르게 되고 그 성적에 따라 10월부터 11월 중순까지 와일드카드,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까지 가게 됩니다. 그 전 과정에 우리 리그만이 안겨줄 수 있는 흥미와 재미의 요소가 있다고 생각해요. 미국 MLB처럼 우리 리그보다 수준 높은 곳도 있지만 우리 KBO리그는 우리대로 맛과 멋과 문화가 있다고 생각해요. 경기력과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당연히 전 구단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야구라는 경기의 매력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무엇보다 승패가 갈리는 전 과정이 익사이팅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공격과 수비까지 모든 과정이 무수한 경우의 수가 조합되고 그 속에서 선수의 기량, 실수, 그날의 운이 조합되어 각종 기록과 스코어, 승패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면 그 즐거움이 더해진다고, 야구단 운영을 책임지는 CEO다운 멘트를 더했다.
“시속 150킬로미터의 속도로 야구공이 캐처의 미트에 꽂히는 소리, 나무 배트에 야구공이 맞는 소리, 팀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응원가와 치어걸의 안무, 치맥으로 대표되는 야구를 보면서 먹는 음식, 선수들이 특정한 기념일에 맞춰 입는 저지와 모자 같은 패션, 이런 환상적인 요소들을 꼭 직접 경기장에 오셔서 꼭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60대 중반으로 넘어가는 나이에 프로야구단 대표로서 새로운 경험을 시작했다. 지난 1년간의 소회와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다.
“지난 1년 동안 정말 숨가쁘게 지내왔는데요.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는데 지내보니 야구단 운영이라는 게 1년의 사이클이 있어요. 그 사이클에 맞게 1년이라는 턴을 해본 거예요. 시범경기부터 시작해서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드래프트가 있고 스토브리그 등으로 이어지죠. 제가 법률가로 일하는 동안 축적되었던 지혜를 바탕으로 크고 작은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에서 희열과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KBO리그는 팬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팬의 정서 무시할 수 없어
팀과 당사자는
KBO에 의해 만들어져 있는 규약 존중.
다만 그것이 원칙에 맞게 일관되게
적용되길 바라고 있어
야구 경기의 매력…
공격과 수비까지 모든 과정 속에서
선수의 기량, 실수, 운이 조합되어 승패가 결정
김도언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