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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감정이 들어간 판결문과 공소장
유영근 지원장(남양주지원)
2023-03-06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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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독한 말들이 넘쳐난다. 출근하면서 현관 앞에 배달된 신문의 헤드라인은 되도록 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아침부터 그 사실 자체가 화나거나 과도한 표현 때문에 기분이 상하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온라인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말과 글이 거의 구별되지 않는 세상이 되다 보니 사람들이 글에다 감정을 지나치게 포함시킨다. 세상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감정이 실려서는 안 되는 글에도 자꾸 감정이 실린다.


사실과 논리로 채워져야 할 판결문과 공소장에 감정이 실렸다는 느낌이 들면 신뢰성이 확연히 떨어진다. 내가 쓴 판결 초고를 읽으면서도 왠지 마음이 불편해지는 때가 있다. 곰곰이 살펴보면 십중팔구는 내 감정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시종일관 거짓말을 하거나 억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경우에도 판결문에 주장과 판단만 건조하게 쓰는 편이 낫다. 거짓말을 즐겨하고 억지 주장을 일삼는 사람이라고 단정하는 표현을 하는 순간 반박의 여지가 생긴다.

판사가 재판을 진행하거나 판결을 선고하면서 비유적인 표현을 써서 설명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문학적 표현은 사건의 핵심이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인상적이기도 해서 언론에서도 즐겨 인용한다. 하지만 세상에 비슷한 사건은 많아도 똑같은 사건은 없다. 판결문에까지 비유적인 표현이 들어가면 받아 든 당사자는 대부분 판사가 상황을 과장하고 성급한 일반화(Hasty Generalization)의 오류를 범했다고 반발하게 된다.

논쟁이 될 만한 사건에서 보통은 이런 측면도 있고 저런 측면도 있어 고심했지만 결국 이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설득력이 있다. 판사가 그런 고뇌의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에 대한 확신이 생기다 보면 판결문에 논증을 생략하고 결론만 힘 있게 쓰는 경우가 있다. 판결문만 놓고 보면 판사가 예단을 갖거나 성의 없이 판단을 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판사에게도 억울한 일이다. 고뇌의 과정은 판결문 자체에 드러나야 한다.

검사의 공소장에도 과도한 것들이 들어가면 이른바 '공소장 일본주의(公訴狀一本主義)’ 위반이 된다. 공소장에는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 기타 물건을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하여서는 아니된다(형사소송규칙 §118②). 이를 위반하면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인 경우에 해당하므로 공소기각의 판결을 해야 한다. 권위주의 시대의 공안사건은 거의 대부분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이었고, 지금도 특수나 공안 등 주목을 받는 사건에서 종종 문제가 된다.

하지만 판사가 웬만하면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으로 판단해 재판을 끝내려 하지 않고, 명백히 예단의 여지가 있는 공소장도 공소기각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다. 재기소하면 피고인이 불편한 절차를 반복해야 하고, 명예를 중시하는 피고인은 그 문구가 오히려 공소기각의 사례로 교과서나 언론에 노출될까 봐 우려하기도 한다. 대부분 문제가 되는 표현을 삭제하는 공소장변경을 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이 과연 옳은가? 판사에게 이미 생겨버린 예단이 그 문구를 삭제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땅히 공소기각 판결을 하고, 재차 공소가 제기되면 다른 판사가 재판하는 것이 맞다. 그 사이에 공소시효라도 지나면 검사가 잘못된 기소로 피고인에게 면죄부를 주는 엄청난 결과가 된다. 사실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판사에게는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이 지적되는 경우 피고인에 대한 예단보다는 검사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더 생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 운영되는 것은 그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과 일치하지 않는다.


유영근 지원장(남양주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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