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 밀로셰비치 세 사건의 병합
방대한 사건, 마치지 못한 이야기
병합 신청과 나의 ICTY 첫 법정
검찰은 보스니아 사건을 기소한 지 닷새 만인 2001년 11월 27일 세 사건을 병합해 줄 것을 재판부에 신청했다. ICTY 소송규칙 제49조(범죄의 병합)는 "동일한 피고인에 의해서 함께 범해진 일련의 범행(series of acts committed together)들이 동일한 행위(same transaction)를 구성하는 경우에는 여러 개의 범죄들을 하나의 공소장에 병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소송규칙 제2조(정의)에서는 '행위(transaction)'라고 함은 "다수의 작위 및 부작위가 1회의 사건으로 일어나든가, 또는 여러 번에 걸쳐서 동일한 장소 또는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더라도, 하나의 공통된 책략(scheme), 전략(strategy), 또는 계획(plan)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재판부는 병합 여부에 관한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심문 기일을 열었다. 2001년 12월 11일이었다. 내가 ICTY 재판관으로 취임한 후 처음으로 법정에 들어간 날이다.
검찰은, 코소보의 경우에는 전 지역에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경우에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세르비아계가 중심이 된 국가를 이루려고 했던 것이라는 맥락에서, 세 사건은 모두 공통된 책략, 전략, 계획에 기한 동일한 행위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대(大) 세르비아(Greater Serbia)"라는 이상을 실현하려고 했던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검찰은 또한 세 사건을 병합하게 되면 증언의 중복, 상이한 재판 사이의 불일치 등을 피하고, 더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미쿠스는 밀로셰비치가 재판소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대신해 특별히 주장할 점은 없지만, 재판부가 방대한 사건 규모와 이를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지 고려하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1심 재판부의 결정
재판부는 심문을 마치고 나서, (30여 분의 휴정 후에) 구두로 "(1) 검찰의 병합 신청은 크로아티아 사건과 보스니아 사건의 두 사건을 병합하는 한도에서 허용하되, (2) 코소보 사건은 병합을 허용하지 않고, 이에 대한 재판은 2002년 2월 12일에 먼저 시작한다"는 결정을 고지했다. 자세한 결정이유를 담은 서면 결정은 이틀 후인 2001년 12월 13일에 발부했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면서, 세 사건을 통틀어 "공통된 책략, 전략 또는 계획"이 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했다:
ⅰ. 크로아티아 사건(1991-1992), 보스니아 사건(1992-1995), 코소보 사건(1999)은 서로 간에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고, 특히 보스니아 공소장의 마지막 사건들과 코소보 공소장의 첫 사건들 사이에는 3년 이상의 간격이 있다;
ⅱ. 크로아티아 사건과 보스니아 사건은 세르비아의 인접 국가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코소보 사건은 세르비아 자체 내에서 일어난 것이다;
ⅲ. 크로아티아 사건과 보스니아 사건에서 밀로셰비치는 인접 공화국인 세르비아의 대통령으로 "간접적으로" 범행에 관여했지만, 코소보 사건에서는 유고연방의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서 "직접적으로" 범행에 관여했다;
ⅳ. 코소보 공소장에는 대 세르비아(Greater Serbia)에 관한 언급이 없다.
재판부는 또한, 세 사건을 한 재판으로 진행하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므로, 두 사건으로 나누어 재판하는 것이 더 용이할 것이고, 피고인의 입장에서도 변호인 없이 서로 상황이 다른 세 사건을 동시에 방어하기에는 힘들고 불리할 것이라는 이유도 덧붙였다.
항소심의 결정
이 결정에 대해서는 검찰이 허가를 받아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2001년 2월 1일 (자세한 이유는 추후에 서면으로 밝힌다고 하면서) 세 사건은 동일한 행위를 구성한다고 판시하고, 1심 결정을 뒤집어, 검찰의 병합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밀로셰비치 사건은 IT-02-54-T라는 새로운 사건번호로 한 건으로 병합되어 재판을 시작하게 됐다. 다만 항소심의 지침에 따라, 크로아티아 사건과 보스니아 사건은 피고인에 대한 증거 교부가 마쳐질 때까지 다루지 않기로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두 달 여 후인 2002년 4월 18일자 서면 결정에서 구체적 이유를 밝혔는데, 소송규칙 제49조에 의한 병합을 위하여 코소보 사건이 반드시 크로아티아 또는 보스니아 사건과 '함께 범해질 것'을 요하지는 않으며, '공통된 책략, 전략 또는 계획'에는 장기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도 포함되는 것으로, 밀로셰비치의 경우, 장기적 목적은 세르비아계가 장악하고자 하는 지역에서 비 세르비아계 주민들을 강제적으로 몰아내고자 한 것으로, 이는 세 사건에 공통된다고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돌아보며
재판의 막바지 무렵에 밀로셰비치의 건강 문제로 절차가 지연되곤 했다. 재판부는 2005년 11월 29일 심문기일을 열어, 피고인 측 증거조사까지 거의 마무리된 코소보 사건을 분리해서 이에 대해서만 먼저 재판을 마치는 방안에 관하여 당사자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검찰과 피고인 모두 이에 적극적으로 반대했고, 결국 실행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와서 이야기하기에는 전지적 시점의 논평이거나 사후약방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경로로든 1심 재판부가 코소보 사건에 대해서 먼저 재판을 마칠 수 있었으면, 국가 원수에 대한 사상 최초의 판결을 선고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권오곤 전 재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