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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로 본 민사소송법] (2) 집행력과 기판력의 대비
이기택 석좌교수(서강대 로스쿨·전 대법관)
2023-03-2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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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재판실무에 종사하다가 로스쿨에서 민사소송에 관한 실무를 강의하게 되면서 새롭게 민사소송법 교과서를 보게 되었다. 의외로 필자의 평소 생각과 다른 부분이 적지 않아서 몇 차례로 나누어 필자의 생각을 밝혀본다. 모든 교과서는 아니라도 여러 교과서에서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면 이 부분도 대상으로 한다. 교과서의 설명이 부적절하거나 불명확하여 학생들에게 설명하기 힘들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관한 것이고, 대립되는 학설에 관한 것은 아니다. 아울러 실무계에서도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민사절차법 분야에 관한 좋은 논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1. 교과서의 설명
판결이 확정되면 그 판결의 내용에 따른 효력으로서 기판력, 집행력과 형성력 등이 생긴다. 여기에서는 기판력과 집행력의 관계에 관한 교과서의 설명에 한정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기판력은 그 판결 내용을 향후 당사자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기준으로서 적용되도록 하는 효력을 의미하고, 그 본질은 소송법적으로 후소법원을 구속하는 힘이라고 한다. 집행력은 좁은 의미로는 이행판결에서 명해진 이행의무를 강제집행절차로써 실현하는 효력을 말하고, 넓은 의미로는 강제집행 외의 방법으로 판결 내용을 실현하는 효력을 포함한다고 한다. 기판력은 후소를 전제로 하여 전소판결에서의 판단이 후소에 미친다는 것이고, 집행력은 판결주문에서의 이행명령을 실현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후소를 전제로 하지 아니한다. 양자는 그 효력의 내용과 성질에 있어서 다른 점이 적지 않고, 그 효력범위가 일치하지 아니하는 부분도 있다.

교과서에서는 기판력에 관하여 그 작용의 모습을 설명한 다음 그 시적 범위, 객관적 범위 그리고 주관적 범위에 관하여 설명한다. 집행력에 있어서는 그 효력범위에 관하여 따로 설명하지는 아니하고, 원칙적으로 집행력의 범위는 기판력의 범위와 같다고 하면서 기판력에서의 설명을 원용하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때로는 기판력이라는 제목 아래에서 집행에 관하여 함께 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틀은 우리 교과서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설명 방식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로 인하여 집행력에 관한 설명이 부정확하거나 부적절하게 된 부분은 없는지를 교과서의 기판력의 체제에 따라 차례로 살펴본다.


2. 집행력의 주관적 범위에 관하여
가. 기판력은 당사자에게만 미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일정한 경우에는 당사자 외의 사람에게 확장되는데, 여기에는 변론종결 뒤의 승계인, 제3자 소송담당에서의 권리귀속주체, 당사자 등을 위하여 청구의 목적물을 소지한 사람, 소송탈퇴자가 있고, 마지막으로 일반 제3자에게 확장되는 경우가 있다. 법률관계의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회사관계, 도산관계, 신분관계 등에서 일반 제3자에게까지 판결의 효력을 미치도록 한 것이 마지막의 경우이다. 교과서에서는 이러한 기판력에서의 설명을 집행력에 관하여 그대로 원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일반 제3자 외에는 기판력과 함께 집행력도 미치지만, 일반 제3자에 대해서는 기판력이 미치는 경우에도 집행력이 미칠 수는 없다. 판결의 당사자도 아닐 뿐만 아니라 달리 집행력의 승계에 관한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회사관계 등 법률관계에 관한 판결의 내용상 일반 제3자에게 집행을 하여야 하는 경우를 생각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현재의 설명 방식에 따르면 적어도 법리상으로는 그 제3자에게 집행력도 미치는 것으로 읽히게 될 것이다.

나. 물권적 청구권에 관한 소송에서 원고승소판결이 확정된 후에 피고측의 변론종결 뒤의 승계인에게는 원칙적으로 기판력이 미치는데, 그가 실체법상 고유의 방어방법을 갖고 있다면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지에 관한 논의가 있다. 통정허위표시에 의한 등기이전이 있음을 원인으로 하는 말소등기청구소송의 변론종결 후에 패소피고로부터 목적부동산을 양도받아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제3자가 선의인 경우가 그 예이다. 교과서에서는 이러한 설명에 이어서, 일단 그 제3자가 기판력을 받는 승계인에 해당함을 전제로 하여 집행문부여기관이 승계 여부만 심사하여 승계집행문을 부여한 다음 승계인측에서 소로써 고유의 방어방법을 주장하여 그 집행을 막을 수 있다는 견해(형식설), 그 제3자는 실질적으로 피고의 지위를 승계한 것이 아니므로 기판력을 받지 아니하며 집행문부여기관이 방어방법을 심사하여 승계집행문 부여를 거절한 것에 대하여는 원고가 그 판단의 당부에 관하여 소로써 다툴 수 있다는 견해(실질설) 등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한편 후자의 입장에 선 것으로 인용되는 대법원 1980. 11. 25. 선고 80다2217 판결은 채권적 청구권에 관한 소송이라는 이유로 기판력이 미치는 승계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것일 뿐이라고 봄이 옳을 듯하다.

승계인이 고유의 방어방법을 갖고 있는 경우에 관하여는 보통 기판력의 주관적 범위에서의 승계의 범위에 관한 특수 문제로 다루고 있으나, 시적 범위의 문제로서 그 방어방법이 변론종결 후에 발생한 새로운 사유의 한 모습이라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같은 결론에 이르는 이상 굳이 승계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 새로 발생한 사유까지 고려하는 것보다는 그 사유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체계상 간명할 것이다.

아무튼 교과서의 이 부분 설명은 기판력이 미치는 변론종결 뒤의 승계인의 범위에 관한 논의로서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고유의 방어방법을 가진 승계인에게 종국적으로 기판력이 미친다고 하는 견해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아가 집행력에 관한 설명이라고 보더라도 적절하지는 않아 보인다. 이러한 승계인에게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하면서 집행력은 미친다고 하는 견해는 생각할 수 없으므로 집행력의 범위에 관한 별도의 설명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결국 기판력도 집행력도 미치지 않는다고 하면서 민사집행법에서 다루어야 할 승계집행문 부여나 이를 다투는 절차 등에 관한 문제를 판결의 효력에 관한 설명에 포함시키고 또한 집행력을 기판력과 함께 설명하는 바람에 기판력과 집행력의 이해를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었다고 하겠다. 판결의 효력범위를 정하는 것이 먼저이고 강제집행은 그 후의 별도의 절차이다.

이 부분 외에도 기판력에 관한 설명에서 강제집행절차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부분이 있는데, 이는 집행력에 관한 설명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민사소송법 교과서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민사집행법상의 제도는 아마도 청구이의소송일 것인데, 이에 관한 설명도 따로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민사집행법 교과서에 맡기고 있기도 하다.


3. 집행력의 객관적 범위에 관하여
기판력은 주문에서 소송물인 권리의무관계에 관하여 판단한 것에만 발생하고, 예외적으로 이유에서의 판단 중에서 상계항변에 관한 것을 포함한다(민소 216조). 즉 확정판결이 담고 있는 여러 공격방어방법과 소송물에 관한 판단 중에서 어느 부분이 향후 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의 기준이 되는가의 문제이다. 당사자가 그 판단을 따르는지에 관한 다툼은 결국 후소법원의 판단에 의하여 정리될 것이므로, 기판력의 진정한 의미는 후소법원을 구속한다는 데에 있고, 따라서 그 구속의 범위가 기판력 법리의 핵심 주제가 된다.

집행력은 판결주문에서 선언한 이행명령을 그대로 실현하는 효력이다. 강제적으로 사실 상태를 변경·형성하여서 정당한 법질서를 실현하는 효력이 없다면 국가가 운영하는 민사소송 제도의 존립 근거가 사라질 것이다. 이 점에서는 집행력이 기판력보다도 더 중요한 판결의 효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여기에서 집행력의 객관적 범위라고 한다면, 예를 들어 부동산인도를 명하는 판결의 경우 주문에서 특정된 부동산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 부동산 위에 있는 동산에 관하여 어떠한 효력이 미치는지 등의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기판력과 집행력의 본질적 차이로부터 볼 때 집행력에서는 ’주문대로‘라고 하는 것 외에 특별히 법원 판단의 범위를 논의할 필요성이 없다. 판결에서의 이행명령의 의미를 이해하여 그 내용에 따른 질서를 실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집행력은 후소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와 별도로 그 객관적 범위를 따로 파악하는 작업이 요구되지 않는다. 판결주문에서의 이행명령의 내용을 확정하는 장면과 판결에서의 판단 중 향후 당사자와 후소법원을 구속하는 범위를 정하는 장면은 서로 대비되는 대상이 아니다. 하나의 이행판결을 놓고 양자를 파악하는 작업은 그 본질과 성격에 있어 어떠한 관련도 없고, 별개의 법리에 따라 접근할 문제라는 뜻이다. 한편 교과서의 설명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상계항변의 판단이 기판력의 객관적 범위에 포함된다고 하는 것이 집행력의 범위에 어떤 의미도 없음은 분명하다.

사례를 들어 비교해 본다. 기판력의 주관적 범위에 관한 법리는 바로 집행력의 효력범위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당사자 등을 위하여 청구의 목적물을 소지한 사람‘(민소 218조 1항)이 그 범위에서 제외된다면 집행력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도 변동된다. 그런데 기판력의 객관적 범위에 관하여 판결주문에서의 판단 외에 판결이유에서의 선결적 법률관계에 관한 판단 부분에도 기판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법리가 변화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집행력의 객관적 범위도 이와 같이 변화되었다고 말한다고 하더라도 집행력의 효력범위에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이행명령의 내용 그대로의 법질서를 실현하면 되는 것이고, 기판력의 객관적 범위와 같은 사항이 그 이행명령의 내용을 확정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지 못한다. 집행력과 기판력의 본질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집행력의 범위와 관련하여서는 기판력에서와 같은 객관적 범위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기판력의 객관적 범위에 관한 법리를 알지 못하더라도 집행력의 효력범위를 파악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교과서에서는 기판력의 객관적 범위에 관한 부분은 집행력과는 무관함을 명시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기판력과 집행력의 법리가 다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4. 집행력의 시적 범위에 관하여
실체법상의 권리관계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동하기 때문에 기판력으로 확정하는 것이 어느 시점의 권리관계인지가 문제된다. 이러한 기판력의 시적 범위 또는 표준시는 사실심 변론종결시이다. 전소판결에서 기판력이 발생하는 판단 부분에 관하여 그 변론종결 전에 발생한 사유를 들어 기판력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은 기판력의 시적 범위에 의하여 차단되는 차단효가 발생한다. 그 표준시 후에 발생한 사유는 차단되지 아니하므로 후소에서 이를 공격방어방법으로 제출함으로써 기판력이 발생한 과거의 법률관계와는 다른 새로운 법률관계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원고가 요구하는 판결의 형식에 따라 소의 종류를 나누어 보면 이행의 소, 확인의 소, 형성의 소가 있고, 각각의 경우에 원고승소판결과 원고패소판결이 있으므로, 편의상 확정판결에는 모두 6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기판력의 법리와 그 효력범위에 있어서 이 6가지의 판결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기판력의 시적 범위에 관한 위와 같은 법리의 적용에 있어서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면 되고 그 유형에 따라 다른 법리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여러 교과서에서 기판력의 시적 범위 부분 중 표준시 후에 발생한 사유에 관한 설명에서 청구이의소송 제도(민집 44조)를 그 장면에서 작동하는 대표적인 법리로서 강조하고 있다. 물론 집행력을 배제하기 위한 제도임을 설명하고 있지만 이 제도가 기판력의 시적 범위에 관한 법리라고 오해할 여지가 적지 않아 보인다.

청구이의소송은 원고승소의 이행판결의 경우에 한정해서 전소판결 변론종결 후에 발생한 사유에 의하여 그 집행력이 사후적으로 소멸하였음을 주장하는 소송제도로서, 6가지 확정판결 중 하나에만 해당되는 제도이고, 그것도 기판력이 아니라 집행력에 관한 것이다. 다만 모든 후소와 마찬가지로 청구이의소송 역시 전소의 기판력이 미치므로 청구이의사유에도 기판력에 의한 차단효가 적용되는 것일 뿐이다. 차단효의 예시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이행판결 후에 그 집행력을 배제하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 언제나 청구이의소송으로만 주장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원금지급을 명하는 이행판결 확정 후에 다시 그 이자의 지급을 구하는 후소가 제기되었는데 원금은 전소판결 후에 변제한 경우를 본다. 피고가 원금 지급(강제집행)을 면하려면 전소판결에 대하여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여야 하고, 이자 지급을 면하려면 이자청구의 후소에서 권리소멸의 항변으로 원금변제를 주장하면 된다. 후자는 이행판결 확정 후에 그 청구권이 소멸한 경우이지만 다른 5가지의 확정판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단지 후소에서 그 주장을 하는 것으로 충분한 모습을 보여준다.

청구이의는 기판력에 관한 제도가 아니라 집행력에 관한 것이다. 기판력의 범위에 관한 설명에서 집행력에 관한 것을 함께 설명하게 되면 청구이의제도가 마치 기판력의 시적 범위에 관한 핵심적 법리인 것으로 오해될 여지가 적지 않다. 이 문제는 집행력에 관한 설명을 기판력으로부터 분리하기만 하면 바로 해결될 것이다.


5. 문제의 정리
교과서는 그 분야에 새로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큰 권위를 갖는다. 교과서를 통하여 기본 개념을 익히는 과정에서 장래 학습의 난이도를 예측하기도 하고 때로는 평생 이어질 수도 있는 어떤 인상을 받기도 한다.

현재와 같이 기판력의 범위에 관한 설명을 집행력에서 그대로 원용하면서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기판력 부분에서 집행에 관한 것까지 함께 설명하는 방식이 간명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기판력과 집행력은 그 개념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제도적 토대도 다르다. 양자의 효력범위가 같지 않은데도 기판력의 설명을 원용한 부분에서는 부정확하게 설명하는 결과가 되고, 양자의 설명이 섞여 있는 부분에서는 더 까다로운 법리처럼 보이게 만든다. 기판력 없는 집행권원의 집행력에 관한 설명도 필요할 것이다.

특히 기판력과 집행력은 절차법적 특수성이 매우 강하게 표현된 법리이기도 하여서, 처음 민사소송법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현재의 서술 방식은 이를 더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기판력의 범위에 관한 설명 다음에 집행력의 범위에 관한 별도의 항목을 두어서 기판력의 범위와 같은 부분과 다른 부분을 구분하여 설명한다면 소송법 체계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면이 많이 늘어나지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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