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입니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새봄을 맞이하는 시기이지만, 계절의 전환이 급격하게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3월 초에는 바람 끝이 제법 매섭다가도 이내 조금씩 누그러졌는데, 이를 빗대어 “3월은 사자처럼 다가와서 양처럼 지나간다(March comes in like a lion and goes out like a lamb)”라고도 합니다.
법원에도 3월이 찾아왔습니다. 법관은 2월 말 이루어지는 정기인사에 따라 2~3년을 주기로 근무지가 변경되고, 그에 따라 사무분담도 다시 정해지므로, 사무분담이 바뀐 법관에게 3월은 새로운 재판을 준비하고 또 시작해야 하는 ‘전환기’입니다. 대개 재판기일은 사전에 정해져야 하니 재판장이 바뀐 재판부의 3월 일정은 ‘전임자’가 ‘후임자’를 위하여 미리 정하게 되고, ‘후임자’는 ‘전임자’가 정한 일정에 따라 자신이 심리할 기록을 보면서 재판을 준비하게 됩니다. 기록에 남겨진 ‘전임자의 숨결’을 느끼면서, 가끔은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옷깃을 여미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후임자’에게 3월은 ‘전임자’의 흔적을 되짚어가며, 자신의 3월과 그 이후의 시간이 순탄한 양과 같은 시간이 될지 아니면 성난 사자와 같은 시간이 될지를 가늠하는 시기입니다.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재판의 공급자인 법관의 시각입니다. 하지만 그 수요자인 당사자의 시각에서 보면, ‘후임자’에게 새로운 사건이라는 것도 이미 전부터 계속되어 ‘전임자’ 때로는 ‘전전임자’에 의해 심리되던 것이므로, 사건의 진행 정도와 맥락에 따라 ‘법원의 3월’은 재판이 늦추어지거나 법관의 교체로 인한 불확실성이 발생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최근과 같이 ‘재판의 지연’이 문제되는 상황이라면 법원의 3월이 순탄치 않을 수 있는 잠재적인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조금 넓은 시각에서 보자면, 전국 법원의 사건을 약 3000명의 법관이 주기적으로 재판부를 옮겨가며 나누어 담당하게 되므로, 큰 틀에서 ‘어제의 전임자’는 ‘오늘의 후임자’가 되고, ‘오늘의 후임자’는 ‘내일의 전임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현재의 나는 과거 선택의 결과물이고, 미래의 나는 현재 선택의 결과물”이라고 했듯이, ‘재판의 지연’도 최근 몇 년간 법관들의 선택에 의하여 누적된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고, 현재의 선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상황도 크게 달라지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법원의 3월도 양처럼 순탄하게 지나갈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겁니다. 앞으로 맞이할 법원의 3월이 모두를 위하여 순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현재 필요한 선택’에 대하여 고민할 때입니다.
민성철 부장판사(서울동부지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