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자회사를 둔 스타트업 A 기업은 최근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계좌에서 예금 인출을 못 해 자회사 직원들에게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A 기업은 자회사 대출 방식 등을 한 대형로펌에서 자문받았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하면서 스타트업을 비롯해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 가운데 일부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상황이 위축된 스타트업 시장에서 이번 사태가 어떤 여파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스타트업 등 주로 기업 고객을 둔 SVB는 고객의 예치금을 미국 국채에 투자해 큰 손실을 봤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고객들이 한꺼번에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 사태가 일어났고, 10일 파산했다. SVB의 총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2090억 달러(약 272조 원)로, 미국 내 16위 규모였다.
특히 미국에 진출한 스타트업 기업들은 예금 계좌 개설이 용이한 SVB를 주로 이용해왔다.
스타트업 기업을 주로 자문하는 한 변호사는 “미국 은행은 계좌 개설이 까다로운 데 비해 SVB는 용이해 미국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많이 이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미국 정부가 예금 지급을 보증한다고 해도 시간이 걸릴 테고, 그전까지는 대출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한 계좌 개설도 어려운 상태라 자금 경색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SVB의 파산이 국내 스타트업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정부가 발 빠르게 SVB 고객의 예금을 한도 없이 전액 보증하겠다고 발표한 데다가 한국의 스타트업 기업은 대부분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 연방예금보험공사는 12일(현지 시각) 미국 정부가 SVB에 맡긴 예금을 예금자 보호 한도와 상관없이 전액 지급을 보증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예금자 보호 한도는 계좌당 25만 달러로 한화 약 3억 3000만 원까지 보호하지만, 이번 사태가 벤처·스타트업의 자금 경색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미국 정부가 빠른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준희(49·사법연수원 29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미국 정부에서 SVB를 이용한 고객의 예금액을 보호하겠다고 해 SVB 사태가 급속도로 안정되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스타트업계의 자금경색 위험이 높아졌다는 시그널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기업공개(IPO) 시장도 위축된 상황이라 본사를 해외로 이전한 스타트업들이 많지 않고,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며 “이번 SVB 사태가 국내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전문가들은 투자 유치 어려움 등 후속 문제가 발생할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국내 기업들이 SVB와 관련된 동향을 물어오고 있다”며 “아직 자문으로 이어지진 않고, 리스크 파악을 하면서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원희(53·30기)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는 “국내 스타트업계에서는 직접적인 영향보다 간접적인 영향을 더욱 우려하는 상황”이라며 “현재 위기 상황에 놓인 은행은 주로 암호화폐, 스타트업과 같이 변동성이 큰 자산에 투자한 곳들이라 앞으로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가 더욱 신중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들어 스타트업에 예정된 투자가 지연되는 경우가 잦아졌는데, 이번 사태로 투자 유치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